2010. 9.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23)
본문 : 벧후 3:8-10
제목 :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먼저 꼭 알아야 할 일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말씀들이 다 중요한 말씀이지만 그 말씀 중에도 이것만은 꼭 알아야 될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되고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최후의 심판에서 지은 죄 값을 받고 멸망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재림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재림의 신앙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재림을 기다리거나 재림을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도 재림에 관한 설교는 별로 없습니다.
우선 살아가면서 급한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재림에 관해서는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멀쩡한데 재림이 무슨 말이냐 재림의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승천하신지가 2천년이나 되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으시니까 재림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약속이 있으니까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아예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가끔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일어나서 몇 년 몇 월 며칠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온갖 증거들을 다 들먹이면서 사람들을 미혹했기 때문에 
이제 재림은 이단들이나 들먹이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알고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살아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약속이며 이 재림이 구원의 완성이며 이 재림이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의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재림을 부인하지만 그러나 늦어진다고 재림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약속하신지가 2천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안 오신다는 것을 이유로 재림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약속하실 당시에 금방 오실 것처럼 약속을 하셨는데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이니까 그 약속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시간개념과 우리의 시간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의 시간은 우리가 하루라고 생각하는 시간을 천년처럼 쓰시기도 하시고 우리가 천년이라고 생각하는 시간을 하루처럼 보내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모세의 유일한 시가 기록된 시편 90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 90:1-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생의 시간을 대조해서 노래한 시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 우주만물이 생기기 전부터 하나님은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하나님은 계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하나님이 누구시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티끌에 불과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천년 세월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세월이 흐른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께는 밤의 한 순간을 지난 것 같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티끌 같은 존재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풀꽃 같은 존재가 느끼는 세월과 영원한 하나님께서 느끼는 세월과 비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 능력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비교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에 우리가 천년을 해야 할 수 있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엿새 동안 그 일을 어떻게 하시느냐? 아마 그 엿새는 우리가 말하는 해가 뜨고 지는 그 하루를 말하는 육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육일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잘 모르니까 그렇게 믿지만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온전한 뜻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이론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기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하루는 우리의 천년의 세월동안 할 일을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천년이나 걸려야 만들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은 단 하루만에도 생성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천년동안 지나온 모든 세월동안 이루어 놓은 것들이 하나님 보실 때는 하루에 할 일거리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구 스스로라면 수천 년이 걸려서 이룰 수 있는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룻밤에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과학자들이 지구가 수천만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루어졌는데 성경의 역사는 6천여 년 밖에 안 된다고 비웃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천만 년에 걸쳐서야 되는 일을 하루만에도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심을 믿는다면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라고 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며 시간이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시간의 개념이나 능력이 우리와 다르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주님께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 말씀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더디 오시기 때문에 여태 안 오시니까 약속이 깨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주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서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언뜻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를 기다리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회개하도록 기다리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라고 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가지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옹졸하게 인간을 차별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다 사랑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들만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아직 이 세상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 숫자가 얼마나 될 것인지 그 날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만 알고 같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 회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할 사람들이 아직 회개하지 않고 교만하게 앉아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대 사람들이야 그 때 가서 알아서 하겠지만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회개하고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가 죽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느끼는 것처럼 천년이 하루 같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죽으면 하룻밤 같은 그 시간에 주님이 재림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후세 사람들은 이야기 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로 완전히 돌아와서 멸망에 이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아직도 내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죄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 좀 낫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다시 점검을 해보아야 합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그렇게 주를 위해서 평생을 그 모진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던 바울 같은 사람도 그가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 자신의 육신 속에 선보다는 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선을 원하고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원하는 바 선은 행하여지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자신 안에 있는 악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악을 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고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면서도 진정한 십자가의 복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죄를 발견하고 그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공로 앞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잘 아는 목사님 위임식에 갔더니 목사님 한분이 축사를 하면서 교회는 십자가를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제가 깜작 놀라서 야 여기 이런 목사님이 다 계시네 하고 귀를 기울이고 축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금방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분이 말하는 십자가는 우리가 말하는 십자가하고 조금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말하는 십자가은 위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고 좌우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의미로의 십자가를 말한 것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십자가가 그런 의미로 설명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처럼 들은 십자가의 복음이 그쪽으로 흘러버려서 많이 실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말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의 회개와 죄 사함의 능력이 말해지지 않는다면 무슨 말을 해도 그 의미가 완전히 말해지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죄 문제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가 그 십자가를 의지해서 다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멸망에 이르지 않기를 기다라고 계십니다.

3.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임한다는 말씀 속에는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임을 강조하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 같지만 더디다고 그 약속을 믿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짐으로 그들에게 도둑 같이 임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이 갑자기 임하신다는 뜻입니다. 
도둑은 예상하지 않은 때에 예고편 없이 갑자가 들어옵니다.
만약에 도둑이 올 줄 알고 대비하는 사람은 도둑을 얼마든지 방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둑은 방심 할 때 모르게 오는 것이 특징입니다.

도둑은 우리 모두가 잠들었을 때에 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지 않고 신앙의 잠을 자고 있을 때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잠을 깨고 재림을 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동센터는 국가에서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수시로 점검이 있습니다.
위생검열도 있고 구청 복지과에서 오는 수시 점검도 있습니다.
공동모금회의 사업도 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점검도 있습니다.

항상 잘 하다가 점검 올 때 못하면 늘 못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점검에 지적을 받은 사람들이 점검을 받고 말합니다.
아이고 재수가 없어서 꼭 그럴 때만 와서 걸린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점검을 받을 때나 점검을 받지 않을 때나 늘 바르게 잘 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평소에 잘못하면서 점검 받을 때만 잘 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광성은 왜 한 번도 안 걸리고 점검 받을 때마다 잘하냐고 묻습니다. 
그 이유는 재수가 좋아서가 아니라 평소에 늘 잘하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살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도둑같이 재수 없는 사람이 당하는 것처럼 그렇게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언제나 늘 바른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언제 오신다고 해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과 쾌락을 버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살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 모습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망하는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최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물질이 다 풀어져서 없어져버릴 것입니다.
다시 복구할 수 없는 폐허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불타서 없어지면 모든 과장된 것들이 없어지고 알몸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숨겨진 모든 것들도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가시적인 것들 외형작인 것들 다 드러나고 진실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약속은 너무나 확실한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약속이 조금 더디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회계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날을 기다리면서 악인들의 최후의 모습을 생각하시고 언제나 늘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