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종전3)
본문 : 벧전 3:8-9
제목 : 고난 가운데서의 선행.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 

여러 가지로 어렵고 복잡하고 분주한 가운데서도 이 귀한 주님의 날을 기억하고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좋은 자리에 함께 해주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넘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우리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너무나 귀한 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고난 중의 소망”이라고 합니다.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산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서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기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1장에의 핵심은 “고난 중에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되어야 할 만큼 우리의 소망은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2장에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무나 귀한 신분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3장은 그런 산 소망을 가진 우리 성도들이 그런 귀한 신분을 가진 성도들이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악을 행하면서 산다고 해도 우리는 산 소망을 가졌기에, 귀한 신분을 가졌기에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선을 행하면서 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3장을 “선을 행함으로 오는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고난을 당하면서 살더라도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든지 고난 가운데서라도 선을 행하라는 것이든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는 삶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런 삶은 우리가 비록 고난을 당하면서 산다고 해도 또 이 일을 함으로서 더 큰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3장의 핵심인 “고난 가운데서의 선행”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미 빛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고난을 받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더라도 선한 일을 하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손해를 보는 일 같지만 복을 이어받게 하는 귀한 일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선을 행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1.고난을 당해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라.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바꾸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악으로 타락하여 오염된 우리의 마음상태입니다.
그것도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면 더러는 선을 행하면서 그렇게 살겠지만 사는 것이 힘이 들고 짜증이 나고 고통스럽다고 한다면 선을 행할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마음을 같이하라 
어렵고 힘이 들 때 마음을 같이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습니다.
특별히 우리처럼 진리의 말씀을 따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외롭습니다.
세상의 축복을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그 숫자가 많고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소망을 두고 십자가를 따라 사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외로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 이방종교들이 또 이단들이 그리고 거짓선생들이 교회에 판을 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바르게 가는 우리가 서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세상에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다양한 마음과 다양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같아야 하고 우리의 소망이 같아야 하고 우리의 사랑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에서만큼은 천국을 향해서 가는 것만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한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2)동정하며
함께 고통을 당한다. 함께 고난을 당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고 함께 슬퍼해 줄줄 아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기쁘면 슬퍼하고 남이 슬퍼하면 속으로 기뻐합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봐줍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 가서 말할 데가 없습니다.
잘 된 이야기 하면 입을 삐죽이면서 시기하고 질투를 하고 괴로운 일을 이야기 하면 속으로 잘됐다고 쾌재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기쁨을 함께 나누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괴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3)형제를 사랑하며 
여기 형제는 주 안에서 한 형제 된 우리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한 형제 된 성도는 육신의 형제보다 더 친밀한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은 목적지인 천국을 향해서 함께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를 도와주며 함께 힘을 합하고 천국까지 손잡고 함께 가는 형제자매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4)불쌍히 여기며 
예나 지금이나 힘이 있고 강한 사람이 잘 살고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은 늘 어려움을 당하고 삽니다.
우리 주변이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또는 원치 않는 삶의 실패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모든 인생은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죄로 인해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죄를 또 짓고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강하게 살고 싶지만 흐르는 세월은 막지 못하고 하루 하루 늙어가고 죽어가는 불쌍한 인생들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겸손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저 한 줌의 흙일뿐이고 피조물일 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그저 비슷한 모래알처럼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똑같은 죄인이고 연약한 인생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겸손하게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평안하게 살 때 조금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지만 어려움을 당하면 고난을 당하면 악한 마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럴 때일수록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에 마음을 같이 하고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형제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불쌍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악한 자에게도 선한 말을 하면서 살라.
본문 9절 말씀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선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도 좋은 마음을 가지고 대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복을 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이유는 다 상대방이 먼저 잘못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애들이 싸우는 이유를 물으면 모두가 다 상대방이 욕을 했다든지 상대방이 시비를 걸었다든지 상대방이 쳐다보고 놀렸다든지 다 상대의 잘못에 자기의 잘못을 합리화시키려고 합니다.

사실은 성경에서도 상대방이 행한 대로 갚아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출애굽기 21:23절 이하에 보면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5:38,39)라고 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유명한 말씀이면서도 가장 잘 지키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너무 어렵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아예 지키지 못할 상징적인 말씀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저도 목사지만 이렇게 살지 못합니다. 
이렇게 살려고 마음도 먹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나에게 악을 대하는 사람이 없기만을 바랄뿐이고 나를 욕하는 사람이 없기만을 바랄뿐입니다.
나를 좋다는 사람도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도 다 좋아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데 나를 나쁘다고 욕하고 나에게 악을 행하는 자를 어떻게 잘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하시니 우리가 이 말씀을 모른척하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죽으라면 죽는 흉내라도 낸다고 하듯이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 뭘 가져다 주라거나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냥 같이 악으로 대하지 말고 같이 욕하지 말면 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악하게 하고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참고 피하면 됩니다.
같이 악하게 하고 같이 욕하면 큰 싸움이 됩니다.
평생 서로 잘못한 것 가지고 싸우면 자신들만 피곤할 뿐입니다.
그냥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하고 내가 더 잘못했겠지 하고 겸손하게 생각하면서 살면 됩니다.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 자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잊어버리시면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여기 복을 빌라는 말은 좋게 말하라는 뜻입니다.
악을 행하고 욕을 하는 사람에게 뭐가 예쁘다고 진짜 축복을 하겠습니까?
같이 악한 말로 저주하지 말고 같이 욕을 하지 말고 좋은 말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우리도 진리를 알지 못했다면 
우리도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했다면 
그들과 같이 악한 말을 하고 욕을 하면서 살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들도 우리처럼 은혜 받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3.고난 가운데서의 선행이 복을 이어받게 하는 것이다.
본문 9절 하반절 말씀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앞 절의 말씀처럼 좋은 마음을 가지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말로 대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렇게 행하여야 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복을 받을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삶을 살아야 된다. 라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은 우리가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은혜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와 사랑을 받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 속에는 우리가 앞의 말씀들을 행함으로 자연적으로 복을 받는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의 말씀처럼 사는 것이 자연적으로 복을 받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23절 이하에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한 마음이 되려고 할 때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동정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동정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을 받게 되고 불쌍히 여기면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겸손하게 행동하면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빌면 나에게 큰 상급과 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주면 오히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복을 받도록 설계를 하셨습니다.
남에게 악을 행하고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오히려 선을 행하고 나누어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이어받도록 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을 받고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와 여러분을 창세전에 선택을 하시고 이렇게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백성을 삼아주신 것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법으로 살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모두 한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 우리가 복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