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3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20)
본문 : 벧전 2:10
제목 :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아주 뚜렷하게 양분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신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사는 이방나라 사람들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을 받고 사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선민인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택함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소나 개나 돼지 같은 짐승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사람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이런 자부심 속에서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이제는 우리가 그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개나 소나 돼지 같은 짐승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이제는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나 이 땅 사람들이나 섞여서 살기 때문에 그 차이를 실감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알게 된다면 너무나 기뻐서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이 세상 사람들도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를 알면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억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모르니까 저렇게 태평스럽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 본대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해 주셔서 몰라도 될 비밀스러운 말씀까지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너희들은 택한 백성이다.
너희들은 왕이요 제사장이다.
너희들은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이렇게 우리의 귀한 신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긍휼을 얻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셨음을 다시 한 번 생각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기를 다시 한 번 각오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본문 말씀에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에는 “전에는” 이라는 말과 “이제는” 이라는 말이 대조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를 크게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로 그 역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과 십자가를 지신 이후로 역사를 크게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로마서 3장 21-22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에는 율법을 통해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라 인정을 받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율법을 통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겼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과거의 율법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이 백성이 되었습니다. 

1)하나님 나라의 중요성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라고 반문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은 아직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사람은 그런 질문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5)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그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선포의 말씀이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첫 설교인 산상보훈의 첫 말씀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복음“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복된 소식, 가장 기쁜 소식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뭐가 가장 기쁘고 뭐가 가장 복된 소식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으로 끝이 나는 것이 우리 인생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억울한 일도 많고 고통스러운 이런 세상의 나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시는 참된 평안이 있는 나라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는 있다고 해도 우리 같은 죄인들은 들어갈 엄두도 못내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아주 쉽게 그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복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복된 소식을 완성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책을 복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녔다고 해도 이 하나님나라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면 잘못 다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들을 구하기 이전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하나님 나라의 의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자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게 이 세상에 세워지는 나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지는 나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1:6)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이후까지도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지는 나라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도 이미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를 하셨을 때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것도 이미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그런 뜻으로 이 세상에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에 주권을 빼앗기고 살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다시 이 세상에 이스라엘나라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세워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을 다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세워지는 영원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다스리시는 그 나라 천국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법
고린도전서 6:9-11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9,10)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11)라고 했습니다.

앞의 9-10절만 읽으면 우리 중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음행을 하는 자, 우상숭배 자, 간음하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서 빼앗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다행이다 그 정도라면 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 라고 생각이 되는 사람이 혹 있습니까?

그럼요 저는 아직 음행을 하거나 간음을 해 본 일도 없고요 술은 입에 대 본 일도 없습니다. 남을 욕하거나 남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일도 없으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외형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지만 예수님께서 판단하시는 것은 마음속의 생각까지 판단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한 자라고 했습니다.
네 눈이 힐끔힐끔 여자를 보면 그 눈을 뽑아 버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살인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욕을 하거나 미련하다고 놀려도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해서도 안 되고요 
오른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대야 하고요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어야 하고요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같이 가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도 다 하셨어요?
아이고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또 하나 더 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얼른 가서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오십시오.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까지 해 보시겠습니까?
얼른 그만 포기하시지요.
포기하고 손을 드시면 제가 쉬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잘난 척 그만하고 제가 어쩔 수 없는 죄인입니다. 제 스스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라고 시인하면 아주 쉬운 길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 방법이 아까 인용한 말씀 11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11)라고 하신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손을 들고 나오시라는 것입니다.
날 위해 흘리신 그 보혈 앞으로 나오시라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그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이 되는 방법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쉽고 간단합니다.

우리가 전에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 우리가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늘 기억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2.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불쌍히 여긴다는 말 보다 한 수 위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동정의 여지가 있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면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동정을 받을만한 여지가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없었다고 한다면 우리 중에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만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불쌍히 여길만한 이유도 없는 즉 동정의 여지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잘 표현한 이야기를 많이 만납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빚을 다 탕감하여 주었던 왕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먼 외국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던 베드로를 동정의 눈길로 보시던 그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실수를 하고 넘어지면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고 정죄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실패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잘 됐다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아니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 나는 이해한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다시 일어나라.

나는 이미 다 용서했다.
네가 그렇게 실수 할 줄 알고 네가 그렇게 넘어질 줄 알고 네가 그렇게 죄를 지을 줄 알고 내가 미리 그 죄 값을 다 지불해 두었다.

우리가 과거에는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특별히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이런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공의로 법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정사정도 없이 냉정하게 지은 죄대로 그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없이 깊고 넓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다 용서를 받고 하나님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자가 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할 일은 우리도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일입니다.

야고보서 2:13절 말씀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 세상을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더 높은 마음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처럼 서로에게 긍휼을 베풀 수만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을 못났다고 하지 말고 긍휼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나 서로에게 그런 동정의 눈을 가지고 볼 수만 있다면 세상은 너무나 행복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긍휼히 여기심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못난 것들을 이해하시고 이미 다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를 동정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사랑과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하시고 우리도 그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아주시는 그 긍휼히 여기시는 눈으로 형제자매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성도님들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