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1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01)
본문 : 벧전 1:1-2
제목 : 더욱 많은 은혜와 평강.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하실 때 우리 인간의 언어로 말씀을 기록해 주셨고 또 인간의 지식들과 경험들과 그로인한 생각들을 통하여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기록을 해 주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인물을 뽑으라면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바울 이 세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 사람을 통하여 많은 말씀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믿음의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 그리고 베드로를 소망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바울은 많은 서신서들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믿음의 진리 즉 “이신칭의”의 교리들을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서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귀한 말씀들을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특별히 요한 서신서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주 안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해야 하는 당위성을 잘 말해 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섬겼던 제자이고 늘 앞서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지위에 비하면 비교적 많은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베드로 전서와 후서를 통해서 그가 아는 바 귀한 진리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베드로전후서에도 우리가 알아야 할 여러 가지 진리의 말씀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징을 찾으라고 한다면 3절에 있는 말씀이 특별한 주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하신 말씀 중에서 “산 소망”이 이 책의 주제로 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를 “소망의 사도”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바울서신의 로마서와 에베소서를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배웠습니다.

그리고 요한 1,2,3서를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잘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올해부터 베드로전,후서를 통해서 소망에 관한 말씀을 배우고자 합니다.

제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이렇게 기획한 것은 아닙니다.
하다가 보니까 이렇게 되었는데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체계적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신 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금년이 이 소망에 관한 말씀을 잘 들으시고 특별히 어려운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큰 위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서신을 시작하면서 통상적으로 인사의 말씀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그 인사 가운데서도 우리는 귀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2절 말씀 마지막 부분에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언어 중에서 가장 귀한 말을 뽑으라고 한다면 1, 2위가 이 은혜와 평강일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별 볼일이 없고 추하고 못난 죄인들인 우리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놀라운 사랑을 은혜라고 합니다.
평강은 그 은혜를 받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누릴 참된 행복을 말합니다. 

이렇게 귀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특별히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고 선언한 우리 광성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 귀한 은혜와 평강이 더욱 충만하게 넘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1.흩어진 나그네에게
베드로 사도는 본 서신을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에게 보내기 위해서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로마의 네로황제는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떠나서 소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바위굴 속에 숨어서 하루하루를 불안한 가운데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오로지 믿음을 지키고 살기 위해서 그들의 기본적인 삶마저도 포기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역경과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는 소아시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지금 우리 선교사님이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터키를 소아시아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 편지를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들을 가리켜서, "성도"라든지, "형제"라든지, "교회"라든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않고, "나그네"로 부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래 이 "나그네 (디아스포라: diaspora)"라는 말은, 자의로 혹은 타의로 고국을 등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사도가 쓴 편지를 받을 대상자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대부분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사도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디아스포라 즉 나그네라고 부른 것은 서신이 당국에 발견되었을 때 얼른 기독교인이라는 글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우리 모두가 나그네로서 이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의 사람들은 진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먼 이국땅으로 흩어져서 살고 있던 나그네였습니다.
고향도, 정든 집도, 친구도, 닦아놓은 터전도 다 버리고 오직 신앙만을 위하여 이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비록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그네와도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면면을 살펴보니까 인천 토박이는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부모님들이 일찍 인천에 와서 낳은 청년이나 학생은 인천이 고향인 사람도 있겠지만 다 멀리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저 부산에서 대구에서 광주에서 목포에서 저 흑산도에서 멀리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멀리들 오셨습니까?
그냥 살다보니까 여기까지 왔지만 여러분의 신앙을 위해서 여기에 온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고 정말로 교회를 중심으로 천국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나그네로 생각하고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여기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우리가 살아야 할 최종 목적지요 더 이상의 삶이 없다면 우리는 비교적 다 실패자들입니다.
만날 욕이나 먹 대통령 한번 되지 못했고 멱살 잡고 싸움이나 한다고 욕먹는 국회의원 한 번도 되어보지 못한 사람만 여기 있으니까 우리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로 가는 길목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우리가 성공을 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는지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저는 왜 예수님께서 돈 많은 부자 청년에게 그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다 나누어주라고 했는지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저는 왜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셨는지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여러분 돈이 많은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돈이 많으면 교회당도 크게 짓고 문화 시설 체육시설 으리으리하게 하고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사인 제가 이렇게 돈을 좋아하는데 우리 성도님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돈만 있으면 이 세상사는 것 문제도 없을 것 같은데 왜 돈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평가절하를 해 버렸을까요?
이 세상은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왔다가 스쳐서 지나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2박3일 여행을 가는 사람이 평생 살다가 올 것처럼 짐을 꾸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가끔 수련회 같은 여행을 갈 때마다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습니다.
가서 한 번도 입지 않을 옷이랑 뭘 자꾸 챙기기 때문입니다.
괜히 짐만 되고 쓰지도 않는 것들을 잔뜩 가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돈 많은 부자가 정말로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돈이 많으면 자연적으로 교만해지고 돈이 많으면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돈아 많으면 여기 앉아 있겠습니까?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 주일날도 쉴 틈도 없이 일해야 하고 또 시간 좀 남으면 여행도 가야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예배나 드리고 설교나 들으려고 여기 앉아있지를 못합니다.

또 이것저것 많이 사서 쌓아놓으니까 이 세상 떠나기가 싫어지고 어떻게 하든지 오래 여기 살아보려고 하지 천국에 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 몰래 나의 궁전을 차려놓고 내 마음 대로 즐겁게 살려고 하지 하나님 앞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시인을 하든지 부인을 하든지 상관이 없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나그네로서 살고 있습니다.

나그네 인생인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을 돈의 왕국 쾌락의 왕국으로 생각하고 살다가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요
나그네일 줄 알고 사는 사람은 지혜롭게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나그네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돈도 아니요, 세상의 권력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그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가 필요합니다.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고 계시는 성도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더 많은 은혜 더 많은 평강이 여러분의 인생길에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인생길에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2.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본문 2절 말씀에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로마황제의 박해를 피해서 흩어져서 사는 나그네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만 믿음생활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만 믿음을 위해서 그렇게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더욱 많은 은혜와 평강을 빌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교 목사들은 이런 성경구절만 얼른 눈에 뜨입니다.
뭐 눈에는 뭣만 보이고, 뭐 눈에는 뭣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제가 예정론을 믿는 장로교 목사이니까 그렇겠지만 저는 이 선택받았다는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특별하게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받은 일이 별로 없습니다.
좋은 학교에서 우리 학교가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학교에 오십시오. 라고 부름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또 좋은 회사에서 우리가 당신을 선택했으니 출근하십시오. 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로또 복권이 아니리 그 흔한 행운상 하나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좋은 일에는 선택을 받아보지 못한 그저 버림을 받은 사람,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는 외로운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누구든지 저를 선택해 주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불러주심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다는 말은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감격스럽고,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지명하여서 불러주셨다는 이 말씀은 너무나 고마운 말씀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은 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을 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방법과 이유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으로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여기 '미리 아심'이란 말은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로서 택하셨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과 같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뭘 잘 모르고 선택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심에는 실패도 후회하심도 변경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어찌 나 같은 것을 선택하셨을까? 혹시 실수하신 것은 아니실까? 혹시 중간에 변경하시는 것은 아니실까?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잘 아시고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2)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멸망당할 사람들 가운데서 구별해서 불러내서 따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흙속에서 보석을 골라내듯이 따로 선별해서 따로 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을 사람은 따로 구별해 놓은 거룩한 백성이어야 합니다.
그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택하심만 받아도 그것이 우리에게는 황공할 일입니다.
그런데 제일 좋은 자리에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제일 좋은 일, 제일 보람된 일을 하다가 제일 좋은 상급을 받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택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3)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구별해서 불러냈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할만한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지은 죄들이 있고 또 타락한 인간의 습성상 늘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은 죄를 범하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은 과거와는 다르게 현저하게 악한 죄를 짓는다든지 같은 죄를 계속해서 짓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늘 부족하고 늘 더럽고 추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고 싶은 선은 행하여지지 않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악한 일만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사람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라고 했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기 우해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장치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함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피를 믿는 자들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깨끗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도 짓는 죄들도 다 용서를 받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구별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성별하심에 따라 거룩한 백성 깨끗한 백성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들어서 사람들에게 선택을 더러 받습니다.
구청에서 전세자금을 주려고 하는데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공동모금회에서 야간사업을 하려는데 당신센터가 합격했습니다.
차를 한 대 주려고 하는데 당신이 선택되었습니다…….
나를 이렇게 좋은 일에 선택해 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르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기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별 볼 일이 없던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못난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지저분한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미련하고 게으르고 원망만 하고 불평만 하던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 그저 세월가는대로 살다가 영원한 멸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렇게 우리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 주님 앞에 섰을 때
야 이놈아 나는 너를 선택하여 이렇게 귀한 자리에 불러 주었는데 너는 뭐하고 세상 살았느냐고 물으실 때 뭐라도 할 말이 있게 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지만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서 깨끗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 줄 믿습니다.
충만하게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