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05)
본문 : 벧전 1:6-7
제목 :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나, 못하는 사람이나, 아예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 사람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들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시련도 고민도 없이 이 세상을 아주 편안하게 잘 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죽겠다, 못 살겠다, 누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 라고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더러는 우울증에 빠져서 삶을 포기하고 더 타락한 삶을 살고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똑 같은 어려운 시련을 당하면서 살지만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 오히려 더 크게 기뻐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지만 기뻐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과 그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뻐하는 도다.”라고 번역이 된 말은 때에 따라서 조금씩 그 의미를 달리 생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지금 성도들이 어려운 가운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고 있다고 서술을 하는 말일 수도 있고, 반대로 힘을 잃고 슬퍼하는 성도들에게 기뻐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면서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 기쁨이 지금 현재의 기쁨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미래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기뻐할 것이라고 하는 미래의 기쁨일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이 될 때는 모든 경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서 기쁨을 모르고 슬픔 가운데 사시는 분들에게는 우리가 이렇게 살지만 우리의 신분이 기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기뻐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장래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장래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설명하면서 염려하지 말고 기뻐하면서 살라고 권면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참된 신앙 참된 진리를 알고 기뻐하면서 사시는 성도님들에게는 정 말 그렇게 기뻐하며 사는 것이 귀한 것임을 말씀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기뻐하면서 사시는 분들은 더욱 큰 기쁨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서 낙심 가운데 계시는 분들은 이 말씀을 들으시고 기쁨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받게 될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오히려 크게 기뻐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잠깐 근심 큰 기쁨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련 때문에 근심하게 되지만 그 근심은 잠깐이지만 오히려 그 근심 때문에 크게 기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시험이라고 번역된 말은 말 그대로 테스트 즉 어떤 자격을 얻기 위하여 보는 시험을 말씀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유혹이라는 말로 번역이 되기도 하는 말이며 그리고 시련이라는 말로 번역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신다.“라고 할 때의 시험은 유혹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처럼 죄를 짓나 안 짓나 보려고 함정을 파놓고 유혹을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자신의 욕심 때문이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유혹을 해서 우리가 죄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강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단련을 시키시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졌는가. 테스트를 해 보시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의 대부분은 우리가 판단을 잘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갔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고통들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허락하시는 고통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훈련을 받지 않으면 시합에 나가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사람을 보면 야 대단하다 나도 저런 선수가 되어야 되겠다. 아니면 우리 아들이라도 저런 선수가 되게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되는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만큼 노력을 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의 신앙도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통해서 신앙이 연단을 받으면 훈련을 잘 한 선수처럼 강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때로는 테스트를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테스트까지 받고나서 비로소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테스트에 합격을 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훈련시켰음을 봅니다.

성경에서 귀한 일을 당당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훈련을 받고 시험에 합격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귀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연단을 받아야 하고 시험에 합격을 해야 합니다.
시험에 낙오하지 않도록 시험에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시련은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늘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도 합니다.
혹시 한평생을 고통 속에서 보낸다고 해도 우리가 기뻐하며 즐거워할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8절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 제일이겠지만 그래도 가끔 어려운 일들을 만나시면 더 강한 믿음을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리 이 세상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장차 우리가 받은 기쁨과 행복에 비하면 짧고 작은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고 하면 따르는 고통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들처럼 술이라도 한잔 마실 수도 없고 재미있게 놀지도 못하고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니까 손해를 볼 때가 많습니다.

이 화려한 세상에서 이 재미난 세상에서 그런 것들을 다 외면하고 사는 것이 참 참기가 힘이 드는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시험들을 이겨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이긴 후에 큰 영광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금보다 더 귀한 믿음의 확실함
본문 7절 말씀에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소중한 믿음을 가졌지만 시련을 통하여 그 믿음을 단련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확실한 믿음이 되어야 하고 믿음의 확실함은 금보다 귀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똑 같은 믿음을 선물로 받고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믿음이 훈련도 되지 않고 연단도 받지 않아서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희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훈련을 많이 받고 연단을 많이 받아서 아 저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믿음 자체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믿음만 있으면 대단한 것이지만 그 믿음이 순결하고 확실할 때 더 귀한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금과 비교할 수 없지만 금도 나름대로 참 귀한 것입니다.
금을 캐내는 과정을 보면 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일전에 서울의 어떤 아파트 현장에서 아파트 터파기를 하다가 금이 들어 있는 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짓지 말고 금광을 만들어서 금을 캐내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금을 캐내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공사도 늦어져서 오히려 빨리 아파트를 짓는 것만 못하다고 해서 그냥 아파트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 때 금을 캐내는 과정을 보니까 땅 속에 금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돌 1톤을 가져다가 부수고 골라내고 해서 금을 가려내는데 돌 1톤을 가져가서 작업을 하면 거기 금이 15 그램 정도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보통 광산에서도 그 정도의 비율로 나온다고 하니까 금 10여 그램 만들기 위해서 1톤이 되는 큰 돌을 깨고 부수고 녹이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금이 아주 순도 높은 금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뜨거운 불로 모든 불순물들을 완전히 태우고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런 제련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순수한 금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엄청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금도 결국은 세월이 지나면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금처럼 그렇게 연단이 되지 않아도 조금만 연단을 받아서 조금만 확실해지면 금의 값어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귀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믿음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너무나 크고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받게 될 축복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값지고 위대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는 유일한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깨끗하게 용서받게 하여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해줍니다. 
믿음은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 줍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게 해 줍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줍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격하게 해줍니다.
믿음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해 줍니다.
믿음은 우리를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해줍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부자가 부럽지 않습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이 부럽지 않습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권력 있는 사람이 부럽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이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최고의 권력가요 최고의 부자요 최고로 똑똑한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좋은 믿음이 좀 더 확실해지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귀한 믿음을 좀 더 귀한 것으로 여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3.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함
본문 7절 말씀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연단을 받아 더 확실한 믿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잠깐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리가 가진 믿음이 금보다 더 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믿음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생각하면서 더 힘차게 믿음으로 전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즉 이 세상이 끝이 나고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그 때 비로소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우리 주님께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칭찬은 사람에게 들어도 참 좋은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칭찬은 좋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기분 좋게 하려고 맘에 없는 말로 칭찬을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칭찬은 기분을 좋게 합니다.

사람들이 칭찬을 하는 말도 듣기에 좋고 사실이 아닌 말로 칭찬을 해도 기분이 좋은데 예수님께 칭찬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도 보통 예수님이 아닌 최후의 심판자로 천군천사와 함께 재림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칭찬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칭찬은 진짜 칭찬이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십자가의 복음을 그대로 바르게 전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이지만 사람들이 별로 알아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엔 우리 교회가 최고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광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시고 그냥 가시기만 해도 우리는 참으로 기쁘겠지만 칭찬도 하시고 사람들 앞에서 영광도 받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자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칭찬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칭찬하심으로 우리의 얼굴이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 세상을 살면서 평생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최고로 생각하고 찬송을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헌신한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찬송들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나를 그 때는 알게 될 것입니다.
입을 크게 열고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온 맘을 다해서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뭐가 그리 못 마땅한 것처럼 그렇게 뚱하게 있지 말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또 존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칭찬도 해 주시고 영광도 받게 해 주시고 또 존 귀히 여김도 받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거기서 천하게 되던 귀하게 되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문지기만 되어도 이 세상의 왕궁에 사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천하게 취급을 하시지 않으시고 귀한자로 대우해 주시고 존귀한 사람이 받는 대접을 받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가끔 모임에 가보면 어떤 모임은 높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나 같은 사람은 저 구석에서 자리나 채우고 있다가 올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아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니까 섭섭합니다.

천국이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 좀 섭섭할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살펴보면 천덕꾸러기 취급을 한다고 해도 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공을 세우고 천국에 들어 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천하게 여기시지 않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대우를 해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뭘 보고 우리를 그렇게 대우해 주실 까요
뭘 보고 우리를 칭찬하시고 영광을 받게 하시고 존귀히 여김을 받게 해 주실까요
예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믿음이 있음을 보시고 우리를 그렇게 선대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시련을 당하여 근심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되게 해서 우리에게 큰 이익을 주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주신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