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39)
본문 : 벧전 4:1-3
제목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신앙생활 좀 한다는 성도님들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따르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애를 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온의 이야기를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기드온에게 전쟁에 나가서 미디안을 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 사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정말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표징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둘 것이니까 그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게 하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한 번 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주변에는 이슬이 내리게 하고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판결흉패라는 것을 가슴에 달고 있었는데 그 안에 우림과 둠빔이라는 주사위 같은 것을 넣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데 사용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이런 방법들을 사용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러나 오늘날의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사는 길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자고 다짐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이방인의 뜻을 따라 사는 것
과거에 이방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우리 모두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이방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만 감격하고 기뻐했지만 정작 그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무리가 되었다면 반드시 이방인들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되며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방인을 따라서 사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했습니다.

1)음란과 정욕
음란과 정욕은 지나친 정욕으로 인한 부도덕한 성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性)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자신의 쾌락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을 합니다.
바른 관계 속에서 바르게 사용을 하지 않고 부정하게 사용을 합니다.

성경에서는 육신의 정조를 지키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비유를 할 정도로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성생활은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여서 서로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고 가정을 유지하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함으로 귀한 가정도 깨어지게 하고 삶도 추한 삶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이들이 무조건 어른들의 뜻에 반항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주 대단히 잘 하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와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질서에 무조건 반항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롭게 잘 사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2)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 
술과 관계된 죄악을 말합니다.
술이 때로는 육신이 연약한 사람에게 약이 되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좋은 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작은 장점 때문에 술로 인해서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너무나 큰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로 인해서 죄를 짓게 되고 어떤 사람은 술로 인해서 건강을 잃게 되고 어떤 사람은 술로 인해서 가정을 잃게 되고 어떤 사람은 술로 인해서 일평생을 쌓아온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술 속에 들어 있는 그 독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너무나 큰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조심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술 취함은 방탕으로 연결이 되고 방탕은 향락 즉 그 술에 모든 인생을 맡기고 즐기다가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아주 나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중들이 한참동안 데모를 했습니다.
왜 종교를 탄압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불교를 탄압하고 기독교만 위해주느냐고 항의를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장관이면 장관, 비서관이면 비서관 이 대통령이 등용해서 쓰는 사람들은 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도들도 등용을 해야지 왜 너희 기독교인들끼리 다 해먹으려고 하느냐고 데모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중들을 찾아가서 해명을 했습니다.
내가 기독교인들을 쓰려고 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그 분야에 최고의 전문가를 등용해서 그 자리에 앉히고 보면 기독교인이더라는 것입니다.
진짜로 어떤 분야이든지 머리가 좋아서 그 분야에 최고를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이 사실이더랍니다.

그래서 연구를 해 보았는데 물론 기독교인들이 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그 분야에 최고의 사람들이 되었겠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의 눈으로 연구를 해 보니까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장점이 하나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기독교인들은 술 담배를 안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술 담배를 안 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에 엄청난 장점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술이 취하도록 헌 번 마시면 삼일동안 사람의 뇌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삼일동안을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게 만드는 것이 술이라고 합니다.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서 이 세상을 사는 사람하고 항상 맑은 정신으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하고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이 세상을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그 좋지도 않는 머리에다가 술로 담배로 뒤집어씌우면 어떻게 세상을 앞서서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즘 여자들이 머리로 싸우는 일은 남자들을 이깁니다.
초등학고 선생님 80% 이상이 여자이고 중고등학교도 거의 그런 수준에 육박을 하고 있고 대학교수나 법관들도 여자 숫자가 더 많아지기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여자가 무슨 공부 그래서 공부를 안 해서 그랬지만 요즘은 같이 공부를 시키니까 여자들이 더 머리가 좋아서 시험을 잘 보니까 남자들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술 담배라고 합니다.
물론 요즘은 여자도 술 담배를 잘 하지만 남자들보다는 안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여자들은 술 담배를 안 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를 이긴다고 합니다.

3) 무법한 우상 숭배
이방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무신론자들이라고 우기지만 결국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이 이방인들의 삶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한 생각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 이런 것들이 다 사탄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우상숭배는 음주와 음란이 섞인 가증스러운 것으로 죄를 짓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우상숭배 때문에 타락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쾌락을 위해서 향락을 위해서 살고 싶은 그런 마음들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그것이 우상이 되고 맙니다.

교회 내에도 신앙생활이 아닌 이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을 자기의 향락을 위해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서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편하고 좀 더 재미있게 사는가를 연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본문 1절 말씀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약간의 서로 다른 주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서 죽으심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이 세상을 사실 때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라는 말씀도 고난을 받은 자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 성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죄를 그치는 것도 예수님께서 죄의 효력을 정지시키셨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성도들이 고난을 통해서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인지 서로 상반된 주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가지의 의미들이 다 나름대로의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던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가 우리에게 더 이상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도록 막으심으로서 우리를 정죄할 자가 없고 우리는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를 따라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세상을 살게 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가장 귀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으십니까?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나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나에게는 구속자가 필요합니다. 
나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나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필요합니다. 라고 고백을 하십시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실 때는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살면 죄짓는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 화려한 삶을 사시려고 하시지 않고 머리들 곳도 없이 고생을 하시면서 사셨는데 우리가 뭐 잘났다고 화려하게 살려고 하겠습니까?

화려한 삶에는 반드시 죄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죄짓지 않고는 화려한 삶을 살수도 없고 화려한 삶에는 죄가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정직하게 바르게 살면 돈이 벌어집니까?
부당하게 착취하고 남의 것을 더 많이 빼앗아 와야 부자로 살게 되고 화려한 삶을 살게 됩니다.
돈 많이 가지고 바르게 사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편안하고 화려한 삶 보다는 고생스럽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죄를 덜 짓고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까?
우리 주님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가난하게 사십시오. 고생하면서 사십시오.
비록 세상에서는 그것이 초라해 보이고 고통스럽게 보여도 천국을 향한 가장 확실한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남은 육체의 때를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본문 3절 말씀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이방인들을 따라 산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이 방황하고 죄짓고 나쁘게 하나님의 뜻과 반대편에서 살았으면 이제 그만 바르게 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 이제 막 자라는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이것저것 도전도 해 보고 경험이 없으니까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기웃거려보고 무엇이 보람된 일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 더 알아보고 연구해 봐야 될 것입니다. 
남들이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듣는 것이 인간들의 습성이기 때문에 좋은 말 해 보았자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하도 그러니까 생겨난 우리나라 속담이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지“ 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든 성도님들은 살만큼 살아보고 알만큼 알고 경험도 많이 해 보셨지 않습니까?
또 우리 인생이 이제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습니까?

뭘 더 알아보고 더 경험해보시고 결정하시려고 합니까?
이제 그런 쓸데 업는 짓 그만하시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시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더 이상 술 먹고 담배피우고 향락에 빠지고 그런 것 하지 말고 
더 이상 어떻게 하든지 쾌락을 누리면서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본받아 주님을 따르면서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 보시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가난하게 살려고 하고 오히려 더 고난을 받으려고 해보고 희생하고 헌신하고 남을 위해서 살려고 마음을 먹으면 거기에 참된 평화 거기에 참된 행복이 넘칠 줄 믿습니다.

비록 그 길에 행복이 없다고 해도 우리가 영원한 행복 참된 행복을 누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그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이 세상은 이방인의 생각대로 사탄의 뜻대로 방탕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도 이런 무리들이 들어와서 마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쾌락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살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상 사람들 그런 이방인들의 뒤를 따라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희생과 헌신 고난의 길을 걸음으로 참된 인생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