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27)
본문 : 벧전 2:24
제목 :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오늘 본문 말씀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평범하게 읽으면 우리가 다 잘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나무”라고 표현한 말은 여러 가지의 의미들이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달리신 그 십자가를 말하는 것임이 분명하고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가 지은 죄 때문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을 잘 읽어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그 사실 외에 강조하고 싶은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친히”라는 단어와 “그 몸으로”라는 단어가 특별히 기록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뒤에 나오는 말 즉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특별히 쓴 단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몸을 희생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별일이 아닌 것 같으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인 것 같으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으셨을 것이고 직접 그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친히 몸소 그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일,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몸을 희생하여야만 하셨던 그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그 일입니다.
우리가 성도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다른 일은 다 몰라도 이 일만큼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 일이 무엇이며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시고 죄에 대해선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사는 참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죄의 길 의의 길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확실하게 구별이 되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한 길은 죄의 길이고 한 길은 의의 길입니다.
한 길은 죄인으로 사는 길이고 한 길은 의인으로 사는 길입니다.

이 두 길 중에 어떤 길로 가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이 두길 중에 어떤 길로 행하면서 사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이 두 길이 가는 목적지가 너무나 확실하게 엄청나게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1)죄의 길이 있습니다.
죄의 길은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의 모든 인생들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빼고 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것 그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몸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사탄에게서 받은 악한 심성들이 다 죄입니다.
교만하고, 욕심이 많고, 남의 것을 탐내고, 화를 잘 내고, 게으르고, 낭비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고, 큰 소리로 자랑하고, 자신만만하고, 잔인하고…….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죄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룰을 정하고 그 룰 안에서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다 그 기준이 자기가 세운 기준에 의한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대학만 가면 공부만 잘하면 다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만 많이 벌고 출세만 하고 성공만 하면 다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덕적으로 살고 양심적으로 살면 다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한 사업을 많이 하면 그 사람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의의 기준에 의한 것일 뿐입니다.
사람이 세운 의의 기준은 수시로 바뀝니다.
세월에 따라 바뀌고 가치관에 따라 바뀌고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바뀌고 누구편인가에 따라서 바뀝니다.

그 훌륭한 이순신 장군도 우리나라 사람이 보면 의인이지만 일본 사람들이 보면 적군이요 원수일 뿐입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독재자여 나쁜 사람이지만 이북 사람들이 보면 존경하는 지도자 동지이요 하나님 같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요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죄의 길에 서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살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나는 성공을 하고 출세를 했어 나는 양심적으로 살고 나는 선한 일에 기부도 많이 하고 괜찮게 살았어, 나만큼 바르게 산 사람 있으면 나와 봐! 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도 그런 것만 가지고는 죄인으로 죄인의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주일도 잘 지키고 율법도 잘 지키고 십일조도 꼬박꼬박하고 새벽기도도 잘 나가고 봉사도 헌신도 많이 하고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충성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런 것만 가지고는 역시 죄인의 길을 갈 뿐입니다.

이 세상에 부정모혈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의 길에 행하면서 살다가 죄인이 받는 형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2)의의 길이 있습니다. 
죄의 길이 사탄을 따르는 길이라면 의의 길은 하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께로 와야 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의 기준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세운 의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기준을 새우고 아무리 똑바로 기 기준대로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의롭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의로 여기시느냐는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들 우리가 행하여야 할 선한 일들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기준대로 살면 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 계명들을 다 지키고 그 계명에 있는 정신들을 다 이해하고 그 뜻을 따르면 의로운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쉽지를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살면 의인이 되는데 그렇게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람의 눈에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면 된다고 하면 한번 쯤 도전을 해 볼만 한 일입니다.
그러나 밤에나 낮에나 집에서나 밖에서나 심지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크게 구별이 되는 두 길이 있는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로 물든 마음을 가지고 죄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의의 길로 가고자 해도 의의 기준도 잘 모르고 의의 기준을 알고 그 길을 가고자 해도 타락한 우리의 심성으로서는 도저히 그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죄의 길로 가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몸소 십자가에 그 몸을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의의 길로 가게 하셨습니다.

2.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의에 대하여는 산 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산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산 자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몸소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가지고 오셔서 그 몸을 십자가에 대속의 재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1)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는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못 이해하면 하나님의 뜻을 반대로 생각하기 쉬운 조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말은 언뜻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처럼 아주 조금도 죄를 지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죄를 지을 생각이 조금도 없으십니까?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안 아프고 다른 사람이 나를 흉보고 다닌다고 해도 화가 나지 않고 나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 있어도 용서가 되십니까?

너무 고차원적인 것을 물어봤습니까?
그럼 조금 낮추어서 마음은 그렇다고 해도 행동에 옮기지는 않으시지요?
인간인지라 죄질 생각 죄악 된 생각은 때로는 있어도 실지적으로 나쁜 일은 하지 않으시지요? 
사실 우리는 수시로 죄악 된 생각을 하고 때때로 죄를 지으면서 삽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아닙니다.

사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라고 해도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처럼 무 반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이 전적으로 죄에 반응이 없이 죽은 사람처럼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또 이 말을 그렇게 무반응을 하는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은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나의 의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은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죄 때문에 몸소 친히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가 다시 그 죄를 짓는다는 것은 안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마저도 쉽게 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죄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죄의 결과나 죄로 인한 책임이나 죄로 인한 형벌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의 습성을 가지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몸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죄의 무서움을 알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쳐보지만 어쩔 수 없이 때로는 마음으로 때로는 몸으로 죄를 지으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 죄 때문에 심판을 받고 정죄를 받고 형벌을 받을 일은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하여서 지시고 사형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는 이미 함께 사형을 받고 형벌을 받아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형벌과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려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는 관계가 없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2)우리는 의에 대하여 산 자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들이요 의에 대해서는 산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우리 성도들이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새롭게 의의 기준을 세워주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말씀대로 선을 행할 때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 주셨지만 이제는 그 율법을 지킴으로 받게 되는 의가 아닌 새로운 한 의의 기준을 세워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의의 기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의의 기준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과거처럼 옛날 구약시대처럼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기준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에 의해서는 그 누구도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이신칭의“라는 새로운 의의 기준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보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신다고 했는데 사실 이 믿음을 갖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입으로만 믿습니다. 믿습니다.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만 믿음을 가질 자격이 주어집니다.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님을 받아서 성령님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이 믿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고백하는 것도 그저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한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이었나를 깨닫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나 내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고난을 당하고 가난해졌을 때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사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믿음을 가질 수도 고백할 수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가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보일 뿐입니다.

사실 택함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이 믿음을 선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의의 기준에 의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이렇게 의에 대해서 산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의에 대하여 산 사람이 된 것은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의에 대해서 살았다는 것은 단순히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깊은 뜻이 있습니다. 

(1)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의에 대하여 산 자가 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옛날의 모습들을 다 벗어 버리고 사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새 생명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3)우리는 죄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죄의 노예로서 죄에 얽매여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일부러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이제 죄를 짓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도둑질 하던 사람들이 감옥에 갔다가 와서 새 사람이 되려고 해도 그 버릇을 끊지 못해서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은 죄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끊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사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죄가 억지로 우리를 끌고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의 굴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4)우리는 확실한 미래와 새로운 목적을 향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의에 대해서 산 사람이란 확실한 미래가 보장이 되어 있다는 것이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매래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목표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목적도 있고 확실한 미래도 가진 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5)우리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죄는 삯입니다. 그 대가라는 것입니다.
죄는 그 삯 즉 그 행함에 의해서 사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의는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은사로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 제가 아는 어떤 선교사님이 나와서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간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제가 아는 그 때의 그 사람은 목사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부끄러운 사람이 뭘 자랑할 것이 있다고 텔레비전에까지 나와서 잘났다고 간증을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가 잘난 사람일까?
단 한 가지 잘난 것은 그에게도 우리가 가진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못나고 못난 짓을 했다고 해도 못난 것은 덮어지고 좋은 것 선한 것만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그런 취급을 받습니다.
너희 같은 것들이 뭐가 잘나서 의인이냐 너처럼 지저분하고 못난 사람이 천국에 간다면 나는 만국에 가겠다. 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말을 들을 만합니다.
제 자신을 둘러봐도 참 잘난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의로운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가 아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그 선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그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의로움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 있고 그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의에 대해서 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요 의에 대해서 산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서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로인하여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었고 의에 대해서는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의로운 사람답게 새로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