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70)
본문 : 요일 5:20
제목 : 진리를 아는 것이 행복입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간혹 시장에서 물건을 사 보면 살 때는 분명히 좋아보였는데 집에 와서 그 물건을 다시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물건이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싼 물건 같으면 그런대로 쓰지만 그 액수가 비싼 물건이라면 마음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런 정도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약을 먹으면 몸무게도 줄어들고 뱃살도 줄고 건강에 최고입니다. 라고 해서 마음먹고 큰돈을 주고 샀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몸에 좋지 않은 가짜 일 때 사기꾼들에게 속았을 때 그 기분은 대단히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나쁜 사람들이 시기를 칠 것이 따로 있지 사람 건강을 담보로 사기를 쳐 아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말기 암 환자같이 죽음만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만 찾아가서 특효약이 있다고 고칠 수 있다고 하면서 돈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죽기 전에 큰 맘 먹고 그렇게 해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이 별 효력이 없는 것인 줄 알았을 때 참 억울할 것입니다.

옛날엔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월세 방으로 시작을 해서 전세방이 되고 전세가 점점 많은 집으로 옮겨 살다가 드디어 내 집을 살만한 돈을 마련해서 드디어 집을 사고 계약을 하고 이사를 하는데 세상에 그 집을 이중삼중으로 팔아먹는 사기꾼 때문에 평생 모은 돈을 날려버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세 잘못 들어가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바람에 전세금 잃고 길거리로 나앉는 사람은 많이 있었습니다.

진실을 알지 못하고 거짓에 속아서 건강을 잃고 전 재산을 잃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진실을 안다는 것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실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많은 피해를 당하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역사에 있어서 진실을 알지 못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던 사건이 어떤 사건일까요
노아 홍수시대일 것입니다.

노아라는 사람이 배를 만듭니다.
아마 높은 산꼭대기에다가 배를 만든 것 같습니다.
120년 동안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왜 120년 동안이나 그렇게 천천히 배를 만들게 했을까요?
물론 당시에는 그런 기술자들이 없었을 것이고 배의 규모가 너무 커서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120년 동안은 너무나 긴 세월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120년 동안이나 깨달을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진리를 알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노아에게도 가족 말고 친척이 있었을 것입니다.
친구도 있었을 것이고 이웃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었을 때가 노아의 나이 대충 500세가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땅에서 500년을 살았는데 그를 아는 사람이 그와 관계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와서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본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그의 가족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물에 빠져서 죽으면서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요?
아이고 내 친구가 배를 만들었는데 가서 물어나 볼걸.
노아가 내 사촌인데 나도 미리 부탁만 했으면 저 방주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정신없이 살다가 이렇게 죽는구나! 
엄청난 후회들을 하면서 죽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4:3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노아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눈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특별히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진리를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무엇이며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또 아는 것은”이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짐작하거나 대강 아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하게 확실하게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우리 성도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녔어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알고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진리를 우리가 알게 된 것이 참 행복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이 행복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1.참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행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라고 했습니다.

여기 “참된 자“는 우리가 섬기는 우리 성부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참 행복입니다.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다른 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도 아닌 그냥 인간만도 못한 피조물들을 신이라고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쥐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상한 나무나 이상한 돌이나 달이나 태양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3절에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지만 미련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저 인간의 도덕을 가르친 공자도 신으로 섬기고,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길을 모른다고 했던 석가도 신으로 섬기고, 시대의 사기꾼 같은 사람도 속아서 신으로, 교주로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엉뚱하게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속아서 진리를 모르고 사이비 이단에 빠져서 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만 따라야 영생이 있다. 자기들 하는 대로 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진리도 아닌 것을 엉터리로 가르치면서 돈만 착취해가는 사이비 집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건전한 교단의 목사들 중에도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참된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자기 유리한 것만 가르쳐서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사유화 하고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못된 목사들도 더러 있습니다.

오늘날 설교라고 행하여지는 많은 것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설명하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주장을 앞세워 놓고 성경을 자기주장을 설명하고 합리화 하는데 사용을 하는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참된 하나님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이 귀한 은혜를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1)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그 몸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중요한 의미는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 인간의 의 생각으로 우리 인간의 환경으로 우리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참된 모습을 우리에게 알리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쓰셨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시면서 그것을 보고 그 작품을 만드신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미술이나 음악을 감상할 때 그 작품을 통하여 그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우주만물을 보고 그가 얼마나 섬세하시고 그가 얼마나 선하시며 그가 얼마나 웅장하시고 위대하신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삽니다.
자세히 보고 잘 생각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인데 타락한 인생들이 짐짓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보면서도 못 본 척,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기적적인 사건도 보여주시면서 어떤 신비한 일들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에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오해를 하기도 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모습을 하나님 나라의 참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를 알게 하시고 어떻게 구원받는가를 알게 하시고 그 길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참 모습을 알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를 알게 된 것이 축복입니다. 
그 진리의 하나님을 만난 것이 행복입니다.

2)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지각이란 진리를 더욱 깊게 더욱 분명하게 붙잡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우리가 참된 진리를 더욱 깊게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해서 꼭 진리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각을 주신 자만 즉 성령 충만함을 받게 해 주신 자만 이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을 보니 우리 속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것이 행복입니다. 
본문 말씀에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된 것이 큰 행복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된 것도 참된 행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말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그 말씀에 바르게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슈바이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의사가 되어서 적도 아프리카 콩고(지금의 가봉)로 가서 의료사업을 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의료봉사를 해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신학박사요 목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신학박사였지만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를 많이 했지만 정작 꼭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영생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지 못했습니다.
바르게 알지 못하고 바르게 믿지 못한 그의 봉사는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봉사일 뿐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바르게 믿지 못합니다.
그들이 하는 수많은 행위들은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해도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지 못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게 된 것이 행복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게 된 것이 큰 행복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참된 진리를 알게 된 것이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 진리를 소중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또한 행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처럼 더 큰 혜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나쁜 것들은 다 없어지고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새로운 인생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을 해서 어떻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연구한다고 아까운 세월 다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예수님 밖에 있을 때와 예수님 안에 있을 때의 그 가치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 있었을 때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 대하여 진노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 진노의 대상입니다.
지금까지는 참고 계시지만 그 진노가 임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인으로 인정을 받아버렸기 때문에 진노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정죄를 받아야 마땅할 우리가 의인이 되어서 이렇게 가슴을 펴고 사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예수님 밖에 있었을 때에는 율법의 속박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에 억눌려서 그것을 다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도 지켜보려고 애를 쓰면서 다 지키지도 못하면서 지키는척하는 위선자가 되어서 괴로워하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구원과는 멀리 떨어져서 있었던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되고 배척을 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온갖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이 좋은 것들을 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참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3.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아들 되심은 우리와 같은 아들이 아닙니다.
참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것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천하를 얻고도 우리의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내가 있어야 내 생명이 보존이 되어야 무엇을 봐도 보고 무엇을 느껴도 느끼지 내가 없어져 버리는 이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인생의 의미가 주어진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7:2-3절 말씀에 영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 아들 되시는 예수님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는데 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들 즉,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진리의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그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것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안에 있는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참된 행복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행복을 누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