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종합2)
본문 : 요일 2:1
제목 :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의 전체의 주제는 ‘완전한 사귐 충만한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이거나 율법으로 우리를 얽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엄한 얼굴을 하시고 몽둥이를 하나들고 우리가 잘못하기를 기다렸다가 벌을 주시는 분으로 오해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기쁨이 없고 힘이 들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안하면 지옥에 가고 벌을 받는다고 하니까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신앙생활이 그다지 즐겁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신앙생활이란 그런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귄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됨으로 하나님께 있는 온갖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격조 높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신앙생활이 즐겁고, 참된 기쁨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2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2장에 들어서면 또 그렇게 오해를 할 만한 말씀이 나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지금 이 글을 기록하고 있는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썼다고 했는데 이것은 요한일서 전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성경전체의 기록목적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이란 성경의 계명들을 잘 지켜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2장의 말씀은 이 죄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는 말씀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죄는 우리를 멸망시키는 악한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보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킬 수도 없고 죄를 짓지 않고 살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사람이라고 했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정리를 해 보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는 것이요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라고 했고 율법을 다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차피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죄를 지은 대가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이왕 죽고 없질 운명이라면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자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에 관한 문제를 바르게 이해를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이 죄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면서 사는 것이 옳은 일인 줄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를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1)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알자
성도라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우리의 노력으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큰 죄는 우리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죄입니다.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더 큰 죄입니다.

2)계명들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임을 알자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계명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계명들은 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지킴으로 우리가 좋아지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가 없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사람이(대중잡지 '에스콰이어'의 편집인인 A.J 제이콥스) 1년 동안 성경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체험담을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원제 The Year of Living Biblically)이라는 책을 냈다고 합니다.

성경을 따라 살다 보니 수염을 길렀고 돼지고기로 만들어진 베이컨도 먹지 않아야 했다고 합니다. 
특히 '우상을 부수라'거나 '마술사를 죽이라' 또는 '황소를 제물로 바치라'는 대목을 문자 그대로 따르자면 현행법도 어겨야 하더라는 것입니다.

시행 첫 날 새치기한 사람을 보고 '노하기를 더디하라'는 가르침을 깨우쳐 화를 참았고 길거리 빌딩에 걸린 야한 광고를 보지 않으려 머리를 숙인 채 걸었으며 두 가지 실로 짠 옷을 입어서는 안 되기에 회사에서 지급한 혼방 티셔츠를 옷장에서 치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의 말씀들이 지키면 좋은 것도 있고 지키기에 불가능한 것도 있고 때로는 그 같은 가르침이 생긴 배경을 알고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성경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통행증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계명의 중요한 의미는 그것을 다 지키게 하기 위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알고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3)용서받을 길이 있음을 알자
죄를 안 지으려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살면 몰라도 이 복잡한 세상 이 험한 세상 이 죄가 많은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기란 정말 불가능할 것입니다.
죄를 안 지으면 우리에게 좋고 우리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락한 우리의 습성으로는 죄를 짓지 않고 살기란 정말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죄를 범하고 사는 우리들을 위해서 오늘 말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우리가 사는 삶의 원리가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죄를 지었을 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에게 대언 자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대언 자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여러 가지로 반응을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죄를 은폐하고 죄를 짓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죄는 죄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행한 부득이한 것이지 죄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그것이 죄인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나는 죽어야 돼 나는 저주받을 인간이야 라고 하면서 자책을 하고 스스로를 더 죄 가운데로 몰고 가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옳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용서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본문이 말씀을 하기를 "우리에게 대언 자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고 용서받게 해 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대언 자에게 가면 깨끗하게 용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언 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s)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남을 돕기 위해 불려 온 자", "변호 자", "중재자",라는 뜻을 가진 말이고 요한복음에서는 성령님을 말할 때 쓴 "보혜사"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정죄를 하고 우리 곁을 떠납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우리 편에 서서 우리의 사정을 이해시켜주고 변호해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곁으로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위로해 주고 우리를 변호해 주고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벌을 받고 지옥으로 가는 것을 막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범했을 때도 매를 들고 벌을 주시려고 하시지 않고 오히려 더 이해를 해 주시고 변호를 해 주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지쳐서 쓰러질 때
우리가 힘이 들어서 넘어질 때
누군가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할 때
그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아멘

2.사랑은 계명의 완성이다.
죄를 짓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계명의 완성이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것이 계명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2장 7절 이하에는 사랑의 새 계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새 계명은 전혀 새로운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구약의 모든 계명들이 그 계명의 원리는 사랑이었습니다.
모든 계명들은 다 이 원리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 안에 모든 계명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랑의 정신을 빼고 형식적으로만 계명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이 사랑의 계명을 몰랐을 뿐이지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계명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랑하라는 그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것이 모든 계명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이 사랑을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소리 나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심오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사랑만 있다면 모두가 다 행복한 삶을 살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시기하고 경쟁하면서 힘들게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사랑을 아는 사람과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려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과 사랑을 해 보지 못하면서 산 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고행 승이 한 작은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 고행 승을 찾아와 자신이 신을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고행 승이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없습니다. 나는 그런 세속적 일로 죄를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타락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진실로 나는 신을 깨닫고 싶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고행 승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사랑의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 구도자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고행 승이 세 번째로 물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사랑한 적이 없었나요? 정말 한 사람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단 말입니까?" 

대망을 품은 그 남자는 약간 짜증스런 표정과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실례지만 왜 똑같은 질문을 자꾸 물어보십니까? 
나는 사랑이란 글자를 건드린 적조차 없습니다. 
신의 경지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자 고행 승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만약 당신 누군가를 아무라도 좋으니 사랑한 경험이 있다면, 사랑의 꼬리라도 잡아 본 적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초로 하여 당신이 귀의하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 
친구여! 당신이 사랑한 경험이 없다면 당신은 신을 향한 어떤 길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것을 저속하게 생각을 하여 거룩하게 경건하게 정의롭게 산다고 하면서 사랑이나 용서나 이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모든 일을 법대로 율법대로 규칙대로 질서 있게 라고 하면서 사랑의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늘 서로 싸우며 미워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엄격한 부모님 때문에 엄하게 살면서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싸우고 미워하고 다투는 것만 보면서 자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과거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많이 싸우셨는지 밥상도 집어던지고 심하게 욕도 하고 손찌검도 하고 왜들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무정한 사람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 늘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라도 사랑이라는 것을 배워 보시기 바랍니다.
부부간에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부모와 자식 간에 참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형제간에 진실 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웃은 어떻게 사랑을 하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3.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2장 15절 이하에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를 경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한 세상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이란 말을 잘못 이해하여 아예 이 세상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기독교도 중들처럼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속에다가 수도원을 만들고 거기서 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이라는 말을 잘 못 이해하여 가족들을 버리고 부부관계도 단절을 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정치나 문화나 삶조차도 세속적인 것이라고 하여 오직 종교생활만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 해서 다 악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어떨 때 악하다고 하는 것인지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세상 자연의 모든 만물들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작품이요 선하고 아름답고 신비롭고 조화롭고 질서가 있고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너무나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식물이나 다른 동물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너무 귀한 존재로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도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것입니다.
부부관계 부모나 자식 간의 관계 형제관계 그리고 성도들과의 관계 이웃과의 모든 관계나 그 질서들이 다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것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타락해서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도 죄를 범하여 타락하여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 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이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세상이 있습니다.
이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몰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는데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여 대항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대항해서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 하나님을 믿느냐 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반대되는 길을 가려고 하고 구원의 손길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하고 아름다운 천국에 대해서 비웃고 이 세상에다가 자기의 왕국을 세우고자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악한 시대의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대상이고 우리가 미워해야 할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가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십자가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하나님의 명령인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는 데 자기는 원수를 사랑한다고 그들을 용납하는 사람들은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를 가로막는 가장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우리의 힘으로 완전하게 계명을 지킬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우리의 연약함을 발견하시고 십자가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세상을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나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죄를 짓지 않는 방법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