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종합4)
본문 : 요일 4:4-6
제목 : 하나님께 속한 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즘 불교계에서 종교차별을 하지 말라고 연일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서 인기 설교가인 장경동 목사가 중들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예수님 믿어라”고 말해서 불교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교 자유가 있으니까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고 종교끼리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를 인정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눈으로 보면 절에 다니는 불교인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종교를 가진다고 하면서 참된 종교와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참 신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저들은 우리 하나님의 눈에는 진노의 대상이고 멸망당할 불쌍한 인생일 뿐입니다.

우리가 배운 요한일서 4장에는 이 세상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두 종류로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사탄에게 속한 사람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구별은 너무나 차이가 극심하기 때문에 서로 동등하게 여긴다거나, 대강 적당히 서로 건너뛴다거나, 우열을 가르기 힘이 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차이가 아니라 아주 엄격한 차이요, 서로 비교도 할 필요도 없는 현저한 차이요, 엄청나게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차별하지마라, 우리가 똑같다, 같은 종교인이다, 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 말처럼 어리석은 말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요한일서 4장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세상을 이긴 자들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4절 말씀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있고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과 싸워서 이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면 그 말을 듣고 따른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옳은 말로 듣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옳은 말을 합니다.
종교는 다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할 때 옳은 말입니다.
서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옳은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동조하고 우리 기독교를 비웃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그 말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론을 이미 뛰어넘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사상을 그들의 지식을 그들의 가치관을 그들의 목적을 이미 뛰어넘어서 더 높은 사상과 더 높은 지식과 더 높은 가치관과 더 귀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시시하게 그들의 말에 동조하거나 그들의 말을 따르거나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속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들의 주장이 참으로 어리석어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세상에 속한 사람들처럼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진리를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산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인들 중에서 불교나 천주교로 개종을 한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불교인이나 천주교인의 사람들이 수는 늘어났고 기독교인의 수는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닌 사람은 절대로 불교나 기독교로 개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진 진리의 말씀이 그렇게 시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종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면 목사들의 책임이 큽니다.
어떻게 가르쳤길래 무엇을 가르쳤기에 이 귀한 말씀을 두고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 곳으로 간다는 말입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세상의 축복이나 세상사는 윤리나 도덕을 가르치는 어리석은 목사들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서 떠나 세상으로 절로 천주교로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도덕을 가르치는 종교라면 착하게 살게 하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가 천주교나 불교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산속 절간에서 도를 닦고 있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삶의 목적을 선한 일에 두고 천국에 가려면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실천하는 천주교를 우리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게 하고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이미 세상에 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더 잘 살기 때문입니다.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 잘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인들이 더 멋있게 잘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복음이 없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이미 실패자요 낙오자일 뿐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지금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고리타분한 것 같고 지금 우리의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 진리가 우리를 최후의 승리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많은 유혹들을 받습니다.
기복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 잘하고 기도를 많이 해서 복을 받고 출세를 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십자가만 붙들고 이렇게 고생만한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가진 신앙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만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우쭐거리는 것을 보면 우리가 혹 잘못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고 특별한 일이 있다고 하고 하면서 신비한 이야기들을 하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많은 유혹이 있지만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고 있는 우리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에 동조하거나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이나 그들의 목표보다 훨씬 고상한 가치관과 목표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영원한 생명이 우리이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사랑을 알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 이하에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의 특징을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의 특징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 사랑을 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할 줄도 모릅니다.

10절 말씀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시고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화목제물로 보내주셨고.
그의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듣는 말이라 별로 실감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 두 마디만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신을 강요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로 주시는 사랑 거저 주시는 사랑을 받아 누리라는 것입니다.

2)우리는 그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
11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도 자동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사랑이 하나님 안에 속한자의 증거이다.
12절 말씀에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아느냐 하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야 이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구나. 라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이 있다 없다는 판단할 때 기도를 많이 하느냐 헌금을 많이 하느냐 율법을 잘 지키느냐 이런 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물론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도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속에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말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제일 두드러진 특징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알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15절 말씀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기 위한 제일 큰 조건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가 하나님께 속했는가를 결정지어 주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되 바르게 믿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바르게 믿음을 고백해야 됩니다.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을 어떤 예수님으로 믿어야 하는가를 몇 가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앞서 인용한 15절 말씀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못 마땅해 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그렇게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으셨음을 믿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2절 말씀에는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에 대신 죽음을 당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했고 그 사실을 믿는 것이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구주로 오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14절 말씀에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간증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단순히 도덕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병이나 고쳐주시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나 되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해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 인생을 구원하셔서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4.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자입니다.
17절 말씀에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반드시 그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이 세상 사람들도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사람들은 어느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재수도 없고 다시 만회할 기회도 없는 것이 최후의 심판입니다.
여기서 한번 불합격 하면 다시 회생을 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냥 그 판결대로 처분을 받을 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 심판의 날에 심판대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는 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자신 있게 두려움이나 떨림이 없이 심판을 받으러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알고 우리의 삶 속에 실천하는 것이 심판 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목사가 지옥이 있다 심판이 있다. 라고 말씀을 전하면 아이고 목사가 또 공갈을 치네. 라고 합니다.
있는 줄 알기는 아는데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잘한다, 복 받으라, 그런 축복만 하시지 지옥이니 심판이니 그런 기분 나쁜 소리는 하지 마시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런 말 한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최후의 심판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겁을 주려고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에게 참된 평안을 주기 위해서 이런 설교를 합니다.

만일 이런 설교를 듣지 않고 막상 죽어서 또는 종말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섰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오장육보가 떨려서 부들부들 떠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 때 오늘 이 설교를 들은 사람은 아 하나님께서 우리가 심판대 앞에 담대함을 가지게 해 주시려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사랑을 행하면서 살게 하셨구나. 라고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아 나는 믿음을 가지긴 했지만 사랑을 행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을 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조금 부족해도 우리의 사랑은 온전히 다 이루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하심이 나의 삶에 온전히 임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 됩니다.
그 사랑을 알고 아주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 하면서 살려고 한 작은 우리의 노력이 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심판대 앞에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