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삼 02)
본문 : 요삼 1:3-4
제목 : 진리 안에서 행하는 기쁨.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6.25 전쟁 때 다른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 참전국 중에 네덜란드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그 네덜란드 군이 북한군 및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다 후퇴하여 강원도 횡성교회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때 네덜란드 장병들은 국군 복장을 한 북한군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전투태세를 갖추지 않고 있던 네덜란드군은 나무판자로 만든 예배당 안에서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하고 전사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린나라 군인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옷까지 똑같이 입고 오니까 당연히 우리 한국군인줄 알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북괴군들이 우리나라 군인 옷으로 위장을 하고 왔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아군 복장으로 접근하여 예배당을 무차별 사격한 것은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대적한 야만적인 행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때의 전사자들을 포함한 117명의 네덜란드군은 지금 부산 대연동의 U.N. 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누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로 교회역사(횡성교회 90년사)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그 고통스럽던 6.25전쟁은 끝이 났고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또 다른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생존경쟁을 하면서 힘든 전투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전투적인 삶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의 편이 되어주는 사랑이 누구인가 반대로 나를 해치려고 하고 내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구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척 하고 나를 이용이나 하고 나에게 있는 것을 빼앗아 가려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나쁜 사람들이 좋은 사람처럼 위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영적인 전투라고 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우리를 천국에 가지 못하게 하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시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참된 진리를 선포하는 목사가 누구인가 나를 바른 신앙의 길로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구별하여 그들을 가까이 하고 그들을 따르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고 나쁜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들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지 않는 나쁜 사람들이 사탄의 세력들이 착한 사람 선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으로 위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목사로 위장을 하고 아주 실력 있는 목사로 위장을 하고 아주 능력이 많은 목사로 위장을 하고 죽은 사람도 살려내고 우리를 금방 부자로 만들어 주는 대단한 사람으로 위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해서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이교회 저 교회 다녀 보았는데 어떤 교회로 가니까 목사님 얼굴이 진짜 아주 천사처럼 순하게 생기시고 기도하는 모습이나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얼마나 다정하든지 아! 바로 이교회다. 라고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얼굴 뒤에 숨겨진 다른 모습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챙기고 욕심을 부리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아주 나쁜 행동을 해서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서 외형적으로 보이는 면만 보고 판단을 하고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나에게 좋은 말만 해 주는 사람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리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를 바르게 선포하고 그 진리를 따라 사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서신서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그런 부분입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그들과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고 그 진리를 선포하지 않는 자에게 저주를 하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아보여도 따르지 말라고 거듭 거듭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런 맥락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사도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가 진리를 바르게 알고 있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고 전해주는 말을 듣고 심히 기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자기의 자녀들 즉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믿음의 자녀들이 계속해서 진리 안에서 행한다하는 말을 듣는 것 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강조해야 할 일이 이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도들이 진리를 바르게 알고 있는가.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바르게 행동하면서 살고 있는가.
정말로 천국을 향해서 바르게 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렇게 할 때 더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오늘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내가 진리 안에서 바르게 가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진리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은 진리입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심히 기쁘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진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알레데이아'라고 합니다. 이 뜻은 '참됨' '실체' '본질'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와 반대되는 개념은, 참되지 않은 거짓이며,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상상하는 허구이며, 또한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거짓되거나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닌 진짜로 정말로 확실한 사실을 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거짓된 이 세상 사람들과 달리 거룩하신 하나님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성경말씀만이 진리라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는 그런 넓은 의미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고 행하여야 할 가장 핵심적인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서에서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함께해야할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특별히 잘 알고 추구해야 할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신구약 66권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핵심을 따라 사는 것이 진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 핵심진리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은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핵심은 그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입니다.
구원의 핵심은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입니다.
그 길을 따라 사는 것이 진리를 따라 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막연하게 하나님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믿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진리 따라 사는 것이고 선을 행하면서 사는 것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진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리란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여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예수님의 사역이 진리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복음이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보면서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를 보았을 때 나는 무능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진리를 깨닫는 첫걸음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깨달은 지리를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이익에만 급급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떠날 때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8)라고 했습니다.

후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를 다시 찾아 주셨을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말씀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21:17).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 속에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를 발견합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제가 비록 목숨이 아까워서 겁이 나서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했지만 그러나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런 고백들이 진리를 아는 사람의 고백이요 진리 따라 행하는 사람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사도바울의 고백 속에서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진리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5-11)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6-8)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 부활과 영생의 복음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깨닫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진리와 함께 행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진리 안에 행하는 기쁨
진리 따라 사는 길은 좁은 길이요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고통의 길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외로운 길이요 이 세상에 행복한 모습을 하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보이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고 나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1)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는 거짓이 아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온갖 거짓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실상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진짜로 알았던 많은 것들이 거짓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건강하려고 먹었던 보약이 오히려 나를 해치게 하는 것들이고
좋다고 먹었던 음식들이 나를 늙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해결될 줄 알고 목숨을 걸고 돈을 모았는데 그 돈도 쓸모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할 때도 있습니다.
권력이면 뭐든지 해결되고 출세하면 행복이 보장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건강한 몸 하나 있으면 된다고 살았는데 그 건강이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엇하나 믿고 살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일입니다.
무엇하나 우리를 영원히 지켜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거짓된 세상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만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입니다.
이 진리와 함께 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기쁨입니다.

2)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는 언제나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약속도 변하고 지식도 변합니다.
변함이 없이 언제나 한결같으면 참 좋겠는데 어찌 그리 잘들 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난리를 치더니, 나 없으면 못살겠다고 결혼만 해주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고 장담하더니 어떻게 그렇게 변해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쉬울 때나 어려울 때나, 성공을 했을 때나 실패를 했을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언제나 거기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약속을 한번하면 틀림없이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그 마음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핑계들이 많은지 어떻게 그렇게 이유들이 많은지 어떻게 그렇게 쉽게들 약속을 버리고 떠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천지는 변하여도 절대로 변함이 없는 유일한 약속이 여기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통한 진리의 말씀은 절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 조건 그대로 거기에 서 있습니다.

나는 조석으로 변하고, 나는 수천 번 변하고, 나는 수시로 변하지만 주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좋을 때만 찾아오고 나는 잘 해줄 때만 찾아오지만 우리 주님은 언제나 나에게 오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이 거기에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3)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하는 일들은 불가능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을 위해서 해주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지만 아내가 필요한 것 남편이 필요한 것 다 채워주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선하게 산다고 해도 그 선함이 나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노력을 해도 그 노력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를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같지만 가다가 보면 잘못된 길로 갈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에 거하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노력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고행을 하고 선행을 하고 머리가 아프도록 공부를 하고 깨달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거기 있으면 됩니다.
돈이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힘이 없어도, 지식이 없어도, 젊음이 없어도, 잘나지 못해도, 육신이 불구자라고 해도,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범죄자라고 해도, 성질이 괴팍하고 남에게 칭찬한번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십자가를 붙들면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 안에 있습니다. 

4)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오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별 볼일이 없는 나를 하찮은 벌레와도 같은 나를 그분께서 사랑하십니다.

내가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가 날 때신 죽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진리를 따라 사십니까?
이 진리를 더욱 사모하고 더욱 귀하게 여기시고 더욱 그 안에서 행하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의 진리 안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요 우리의 기쁨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