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 2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40)
본문 : 요일 3:19-20
제목 : 주님 앞에서 평안을 누리는 방법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일로 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학교를 들어갈 때도 시험을 치르고 회사에 들어갈 때도 시험을 칩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회사에 들어가서도 수많은 시험을 치르게 되고 거기에 따른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런 공적인 시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수시로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거기에 따른 대우를 받으면서 살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어린 아이에게 제일 잘 하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얘 너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부모들은 서로 아이에게 잘 보여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부모들도 아이에게 이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아동복지시설도 이번 주에 지도점검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구청에서 담당 직원들이 나아와서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점검을 받는 것입니다. 
재정분야 안전분야 프로그램분야 등등 두어 시간 동안 점검을 받았습니다.
미리 다 알고 준비를 했고 또 저희 시설은 모범시설로 알려져 있어서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점검을 받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이렇게 우리의 삶 전반에 대해서 하나님께 점검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에게 받는 점검도 미리 다 준비하고 자신 있게 받는 점검도 이렇게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물어보시고 점검하실지도 모른 상태에서 또 완벽하게 준비를 하기는커녕 건성건성 세상을 살다가 간 우리로서는 참 견디기가 어려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했습니다.

내 자신도 내 양심을 보면 책망할 것도 많은데 하나님께서 우리 양심을 들여다보신다면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신데 그 하나님 앞에 어떻게 자신있게 서서 점검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점검을 받을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까?
자신 있게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서실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오늘 설교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점검을 잘 받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시설에 점검을 나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전화가 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무엇을 준비하면 됩니까라고 문의를 해 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은 한번도 저에게 문의를 해 오지 않습니다.
점검이 없다고 확실히 믿어서 그러는 것인지 점검을 해도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에게 그런 것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고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부들부들 떨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굳세게 하리로다'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의 '페이소멘'(πεισομεν)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번역하기가 곤란한 말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단어의 의미보다는 앞뒤의 말의 흐름을 보고 해석을 해야 될 말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이 말을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먼저 이 말을 '확신케 하다'라는 말로 해석을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을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또 하나의 해석은 '안심시키다'라는 말로 해석을 합니다.
이 의미로 해석할 경우 '우리 마음의 두려움과 염려'라는 목적어가 생략된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염려와 두려움에서 안심을 시킨다는 말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쉬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하나님 앞에서도 평안할 수 있게 됩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나 평안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나 그 뜻은 같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주 앞에서 굳세게 된다.
우리 마음이 주 앞에서 확신을 갖게 된다.
우리 마음이 주 앞에서 평안을 갖게 된다.
어떻게 번역을 하더라도 그 뜻은 같은 뜻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조금 이해를 쉽게 하기위해서 평안을 갖게 된다는 말로 해석을 하고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제목을 "주님 앞에서 평안을 누리는 방법"이라고 정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즉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려고 하면 이 방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려면 이 방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비단 꼭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은 이 원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고 있다는 확신한 미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참된 평안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1.나 자신의 선한 양심으로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혹시 우리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라고 했고 '쉬운 성경'에서는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책망하는데"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혹시 우리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라는 말은 점잖은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꽤 수준 높은 도덕의 경지에 올라간 사람들이 자신있게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보다는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책망하는데 라고 번역한 쉬운 성경의 번역이 옳은 번역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말성경의 번역처럼 나는 양심대로 잘 사는데 혹시 조금 잘못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강하게 설교를 했더니 어떤 성도가 아주 서럽게 통곡을 하면서 울며 기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다가가서 성도님 그만 우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도님의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죄를 지으셨기에 그렇게 통곡을 하면서 회개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성도가 하는 말이 예 저는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우리교회 성도들의 죄가 생각나서 웁니다 그들이 너무 불쌍합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생각보다 교만한 사람이 많이 있어서 자신의 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생각보다 죄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많아서 자신의 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생각보다 기본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심각하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십자가를 지셨다고 해도 그것을 별로 신통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직도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을 하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할수록,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성경말씀을 많이 읽고 알수록, 신앙의 깊이가 깊어 갈수록, 우리의 삶이 고상해질수록, 내 삶의 열매가 많아질수록, 새롭게 새롭게 발견되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내 양심입니다.

교회를 개혁했던 루터같은 사람도 그렇게 수도원에 들어가서 양심적으로 살면서 매일같이 무릎으로 성전계단을 오르며 회개를 해도 매일 매일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죄를 없앨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노력으로 개인의 경건생활로 죄에서 해방이 되어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붙들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십니까
스스로 경건을 쌓아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하십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이 되는 사람이 아직도 있습니까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서도 양심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직도 나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나는 무지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 앞에서면 더욱 평안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조금은 교만해서 혹은 무지해서 내 자신은 좀 다른 사람들 보다 낫다라고 생각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서로 비교가 되니까 그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 자신이 볼 때 나 자신은 좋은 편으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보고 다른 사람은 나쁜 편으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보기 때문에 그런 차이는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좁은 마음으로 편견을 가지고 보면 나 스스로는 다른 사람들 보다 좀 나아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크신 하나님 앞에서 보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보면우리가 참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나타난 것만 보고 지금 현재의 모습만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까지 보시며 우리의 과거 모든 삶을 다 보시기 때문에 별별 지저분한 것까지 다 보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연예인들을 참 좋아합니다.
무대 위에서의 모습 무대 위에서의 말하는 것 겉으로 들어난 모습만 보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우리와 똑 같고 오히려 더 지저분하고 더 좋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얼마나 화장을 잘 하고 얼마나 위장을 잘하고 얼마나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해서 자기를 포장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는 하지만 실제로 본래의 모습대로 본다면 참 왜 우리가 그들에게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는지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그 크기나 깊이나 넓이나 정확도나 선명도가 너무나 다르십니다.
이 세상에 사는 인생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정확하신 불꽃같으신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두려워서 떨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평안은 우리가 진리 안에 속한 줄을 알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될 때, 그런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이 평안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잘못된 것이나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수시로 변합니다.
사람들이 만든 법칙은 세월이 흐르면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지고 변한다고 할지라도 변함이 없는 없어지지 않는 말씀이기에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인 성경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 앞에서 참된 평안을 누립니다.
사람들은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평안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말이 맞는 말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도를 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깨달아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남을 미워하고, 기도하면서도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기도하면서도 말씀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세상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기도하면서도 세상 쾌락을 버리지 못하고, 기도하면서도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는 많이 하지만 응답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정말로 진리의 말씀대로 산다면 하나님과의 평안뿐만 아니라 성도들간에도 참된 평안을 누리며 나 자신도 평안한 마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실 기도해서 병든 사람을 벌떡 일어나게 한 경험도 없고 기도해서 갑자기 부자가 되어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복을 받아 잘 됩니다라는 설교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기도하고 진리를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으로 끝이 나면 안됩니다.
기도하면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실천을 해야 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성경에서 부자가 되는 법이 무엇인지를 배워서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살고 싶으면 지혜를 배워서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교회가 이런 복지의 일을 잘 하는 것을 보고 머리를 잘 썼구나 정치를 잘 했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아시는 대로 저는 정말로 머리가 좋거나 잔꾀를 잘 부릴 줄 알거나 정치하는 사람을 잘 알거나 안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이용을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만 제 가슴에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생기기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고자 하고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마음이 조금은 생겼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노력들 그런 작은 희생들 그런 작은 봉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삶이었으며 우리가 복을 받는 원동력이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참된 평안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실천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날 때 복을 받지 못하고 평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씀하는 진리란 조금 더 좁은 의미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진리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하여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진리 안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확실하게 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고 오히려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4.그러므로 참된 평안은 형제를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 자신의 선한 양심으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믿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형편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위선적인 행동으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할 때, 우리가 진리의 말씀대로 살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과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진리 안에 속한 줄 안다고 했는데 이로써가 무엇을 가리키는 말씀입니까.
여기 "이로써"라는 말씀은 앞서 배운 10절에서 18절의 말씀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반복해서 배운 형제사랑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이로서 우리가 진리 안에 속한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서라도 형제를 사랑할 때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임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말로서 만이 아니라 행동에 옮길 때 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요 
그 행동에 진실함이 있을 때 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을 나누어줌으로 형제를 사랑하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목숨을 버려서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로 확실하게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바른 양심에 의지하여 의로운 사람이 되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한 사람도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을 때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형제사랑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면서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