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48)
본문 : 요일 4:7-8
제목 :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완전한 사귐, 충만한 기쁨”이라는 주제로 요한 일서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나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1년 동안 많은 사귐을 가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과 좀 더 친밀해 지셨고 성도들과 좀 더 친밀해 지셨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사귐 그리고 성도들과의 사귐이 더 완전해지고 친밀해질수록 더욱 충만한 기쁨을 누린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의 주제를 사귐 즉 교제와 하나님의 자녀 됨이라고 보았을 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한일서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말씀하고자 하는 실제적인 교훈은 앞의 6절 말씀으로 이미 끝이 났고 뒤에 계속되는 말씀은 앞의 내용들을 다시 요약 정리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의 결론은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모든 기독교 교리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서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한 교훈과 기독교의 진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배우는 것은 이 사랑의 중요성을 알고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 그리고 성도들을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을 실천하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말씀들 교리들을 말씀해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거리가 먼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로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로 진실한 바른 사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미움이라는 사랑과 반대되는 마음을 가지게 했지만 더 적극적으로 거짓된 사랑을 가지게 함으로서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살게 함으로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실한 사랑이란 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희생적인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간에 사랑 친구 간에 사랑 가족 간에 사랑 이런 사랑도 원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것이 변질이 되어서 바르게 행하여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그런 사랑 자체가 나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랑이 그것이 원래의 모습으로 실천될 때 그 사랑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따라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확실한 증거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많이 할수록 더 좋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2)사랑은 거듭난 사람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로 나서“라고 하는 것은 거듭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3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엄마 배에서 한번 태어났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엄마 배속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을 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물 즉 말씀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을 살아있는 영혼으로 거듭나데 해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성도가 되었고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듭난 사람은 중생을 받은 사람은 특징이 있는데 그 특징 중에 가장 뚜렷한 특징은 사랑을 하느냐 사랑을 하지 않느냐로 구별이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백성으로 즉 새로운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거듭나지 못했던 시절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삶이 같으면 안 됩니다.
거듭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즉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어린아이 신앙이라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월이 흐르고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서 점점 더 그 특징이 나타나야 정상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한번 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3)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로서 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거듭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코미디 프로에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웃기려고 하는 이야기지만 저는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이 그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아는 사람이 그래…….
천국의 영생을 아는 사람이 그래…….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이 그래…….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핵심인 십자가의 복음을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천국을 알고 영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행동을 하면서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없는 일들을,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하지 않고 삽니다.
꼭 해야 할 일을 그냥 넘어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그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 난자 즉 거듭난 사람의 특징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사랑을 하는 방법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이라는 것도 사탄이 가져다 준 거짓 사랑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행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대부분 참된 사랑은 못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됩니다.
거기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먼 훗날 즐거움을 갖도록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지금 당장 좋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비록 오늘은 별 볼일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이지만 먼 훗날의 변화된 모습, 성장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참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래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지금 당장은 섭섭하신 일이 많으셔도 지금 당장 혼낼 일이 있어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서로도 당장 지금 눈앞에 별 볼 일이 없거나 오히려 나쁘게 하는 일이 있어도 바르게 설 때까지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성내지 아니하며 온유(친절)합니다.
온유함이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선을 행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참는 것이 나에게 섭섭하게 대하고 악을 행하는 자를 참아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온유는 나를 가해한 사람에게 오히려 선을 베풀어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이란 오래 참는 것과 비교할 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강력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에 대하여 참아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조롱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오히려 그들의 사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오히려 기도해 주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3)투기(시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성공하거나 잘 되는 것을 기뻐해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가 하면, 분을 내거나 훼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투기는 상대방의 성공을 시기하는 데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인류 사회에 최초의 살인 사건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형 가인이 아벨을 죽인 원인도 결국 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는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잘 되어도 배가 아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되도록 복을 빌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4)자랑이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투기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고 드러내기 싫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랑은 자신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고 드러내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인 인간들의 속성입니다. 다른 사람 잘 되는 것이 드러나면 싫어하고, 자신이 잘 되는 것은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이율배반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자랑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랑할 만한 일을 해 놓고도 그것을 마땅히 할 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 전력이 대단하여도, 자신의 업적이 대단하여도, 자신의 선행이 아무리 탁월하여도 그것을 드러내 말하지 않으며, 그것을 감추는 것입니다.
교만이라는 말은 자기 자랑이 지나쳐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을 자꾸 하다가 보면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익은 곡식일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깊은 물일수록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흐른다고 했습니다.
전능하시며, 전지하시며,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더욱 겸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5)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무례하다”는 말은 상대방을 무시하여 함부로 대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랑을 자꾸 하다가 보면 교만하게 되고, 교만해지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생겨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합니다.
밖에 나가서 남에게 잘 하는 사람이 집에 들어와서 가족에게는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의를 잘 갖추고 행동을 하지만 집에 와서는 예의를 갖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최대한도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6)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자본주의의 세상에 살면서 내 것 네 것을 구별하면서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내가 더 많이 가지고 내가 더 많이 누리면서 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내 것 만을 챙기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내 것보다는 남의 것을 더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고 그것이 참된 성공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능력으로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를 포기하신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7)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이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은 곧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정확하게 어디를 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악한 것이거나 불의한 것이면 취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법이 아니면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바른 길로 정도로 가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많은 것을 양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가 아니고 불의한 길로 가는 것이라면 양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8)모든 것을 믿고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게 한다."고 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이 취하는 최후의 방법은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익 앞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소용이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불신의 세상에 살지만 믿어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또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게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막연하게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기대하는 것마다 100%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성입니다.

9)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합니다.
여기 “견딘다. 는 말은 참는다는 말과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여기 견딘다는 말은 "현재 당면한 고통이 우리를 죽음의 순간으로 몰아갈 때까지 변절치 않고 버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고통이 온다고 할지라도 변함이 없이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입니다.
조금 기분 나쁘다고 포기하고 가 버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끝까지 인내함으로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사랑이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시고 참된 사랑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진정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