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주제2)
본문 : 엡 5:18
제목 : 성령님의 역사가 넘치는 교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오늘 본문 말씀은 에베소서 강해설교를 통해서 이미 배운 말씀이라 익숙하실 것입니다.
또 가끔 한잔씩 하시는 분들은 이 말씀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또 합리화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고 합리화 한다는 것은 취하지 말라고 했지 먹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술을 먹지 말라거나 취하지 말라거나 하는 것을 주제로 한 말씀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물론 술은 성령님의 충만함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먹지 말아야 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당시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비록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고 해서 성도가 되었지만 그들이 성도가 되기 전에 마셨던 술을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과거처럼 술에 취하여 사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더 적극적으로는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말하면서 별로 인식이 좋지 않는 술과 비교해서 말을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 술에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함 사이에는 유사한 것이 있으면서 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사한 점은(같다는 말이 아니고 그 느낌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제정신이 아닌 것이 유사합니다.
술을 마신 사람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도 그것을 처음 본 사람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할 정도로 좀 비슷해 보였습니다.

초대교회 때 처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방언을 했는데 방언을 하는 것이 마치 술 취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또 용기가 생기는 것에서 유사점을 발견합니다.
술을 먹으면 용기가 없던 사람들도 용기가 생겨서 자신감을 가지고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평소에 하지 못한 말을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도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서 담대하게 복음을 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기쁨을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마음에 기쁨을 얻게 됩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가 있는 사람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술은 일시적이고 거짓된 용기와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참된 용기와 참된 기쁨을 영원토록 누리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금년도 표어를 “말씀과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그 실천 목표를 
1.말씀을 신앙과 생활의 원리로 삼는 교회
2.성령의 역사가 넘치는 교회
3.이웃을 섬기는 교회
이렇게 세 가지로 정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성령님의 역사가 넘치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 이 삼위 즉 세분이 계십니다.
이 세분이 하나로 한 본질로 존재하신다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분의 역사가 다 중요합니다.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자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성부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참으로 중요한 사랑입니다.

그 뜻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그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은혜도 우리의 신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그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계획을 하시고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시켜주시는 성령님의 역사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 구원을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나누어주시고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주시는 일을 성령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우리 장로교 고신에 속한 성도들은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적게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신앙이 냉랭하고 형식적이고 힘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내 머리로 내 생각으로 내 힘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 성령님의 역사에 여러분을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한번 살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좀 뜨겁고 좀 힘이 있고 뭔가 다른 그런 삶을 살아보시기를 바랍니다.

1.성령세례가 넘치는 교회
성령님을 받는다고 할 때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이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말과 성령 충만을 받는다는 말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성령 받아라. 성령 받아라. 라고 할 때 그 말의 뜻은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을 받는 것은 우리가 받고 싶어서 받고 받으라고 권해주어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모셔오거나 기도를 많이 해서 받거나 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하고, 회계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칭함을 받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게 하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해 주십니다.

이런 과정들을 위해서 성령님이 그 마음에 오셔서 역사를 하시는 것을 성령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가 넘친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 넘친다는 말로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미 성령님을 받고 즉 성령세례를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실감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아직도 옛날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에 있어서 거지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지 사탄의 종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게 삽니다.

나 자신이 버림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선택이 된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 진노의 대상에서 축복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 자신이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 자신이 죽은 자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산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 자신이 영원한 지옥 불에서 형벌을 받을 자리에서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사십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기쁨도 없이 힘도 없이 그렇게 사십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감사도 없이 원망과 불평으로 사십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사십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주의일 하자고 하면 그렇게 하기가 싫습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힘없이 찬송하고 아무렇게나 예배드리고 그럽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아직도 하나님 앞에 자존심세우고 교만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그렇게 사십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를 오래 다니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설교를 천번만번 듣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내 속에 오셔서 이루어놓으신 이 구원의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그것을 믿지 못하면 그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면 거기에 감격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날 구원해 주셨음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와 그 사랑이 너무나 커서 내 생명 다해서 내 온 몸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기는 그런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성령 충만이 가득한 교회
성령세례는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께 잘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고 성령세례를 이미 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성령세례를 받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이 성령 충만을 받는 일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세례와 달리 우리가 받기 위해서 늘 기도하고 또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일은 차에다가 연료를 넣고 불을 붙이는 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좋은 차를 한 대 사 주셨는데 어떤 사람은 이 차가 얼마짜리야 얼마나 비싸고 좋은 찬데 자랑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타지 않아도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잘 가지고 있으면 고장도 나지 않고 나중에 팔아도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라는 것은 남에게 자랑하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편리하게 타고 다녀야 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믿음이라는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이 믿음은 천국으로 향하는 차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도 두고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유익하게 사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에 연료를 넣고 불을 지르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불과 같은 성령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 믿음에 불을 질러서 뜨겁게 능력 있게 살게 해 주시는 분이 우리 성령님이시고 그 능력을 받아서 능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앞서서 성령님의 충만함과 술을 취한 점의 유사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술 취함과 성령님의 역사 속에는 아주 대조되는 것이 있습니다.

1)방탕하게 살지 말고 절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그 술 취함이 방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술 하면 생각나는 것은 허랑방탕한 삶입니다.
탕자가 자기 재산을 다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멀리 가서 자기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취하고 무절제하게 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허랑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도 무절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직자라고 하면서도 호화로운 차에 으리으리한 저택에 자기 욕심껏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란 무질서와 허랑 방탕에서 질서 있고 절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내 마음을 다스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2)마비시키지 않고 각성시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술 취함이나 성령 충만함은 각각 우리의 신경계통을 자극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술은 우리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성령님은 우리의 신경을 각성시키는 것입니다. 

술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우리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킨다는 것입니다.
중추신경은 우리의 몸을 최적의 상태 최선의 상태에서 일하도록 해 줍니다.
중추신경은 사람들에게 지혜력, 이해력, 판단력, 균형을 잡는 일을 해줍니다.

중추신경과 반대되는 말로 말초신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추신경이 고등한 것이라고 하면 말초신경은 하등한 것입니다.
중추신경은 건전한 판단과 지혜를 조정한다면 말초신경은 동물적인 감각과육체적인 욕망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술은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행동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가 각성하도록 해 주십니다.
깨어 정신을 차리게 하고 깨달아 알게 하고 지혜를 얻게 하고 바른 판단력을 가지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모습을 되찾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3)비겁함을 버리고 용기 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술은 얌전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어서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말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용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겁함입니다.
자기의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자신감 있게 용기 있게 제 정신으로 바르게 말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술의 힘을 빌려 횡설수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우리에게 참된 용기를 줍니다.
참된 힘과 능력을 주셔서 자신감 있게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을 마치 술의 힘을 빌려서 사는 사람처럼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만 의지하여 무엇을 하려는 어린아이처럼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은 나는 비겁하게 숨어 있고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해 주시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고 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시고 그래서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힘 있게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비된 정신을 각성시키셔서 용기 있는 힘 있는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4)거짓된 기쁨을 버리고 참된 기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순간적으로 모든 일들을 잊게 하고 그래서 순간 기쁨을 느끼게 하지만 깨고 나면 다시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참된 기쁨입니다.
진리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변화된 신분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에 관하여 알게 하심으로 언제나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억울한 일을 당하고, 슬픈 일을 당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였다고 하더라도 웃을 수 있는 참된 기쁨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가 뭐라고 하던지 우리의 형편이 어떠한 처지가 되던지 상관이 없는 참된 기쁨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술 취함과 비교해서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의 전부가 아닙니다.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성령님께서 개입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지 말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아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3.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교회
성령의 은사란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서 성도들에게 부여된 성령의 특별한 은총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은사가 있습니다.
예언이나 방언이나 영분별이나 신유은사 등이 여기에 속하는 은사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은사들이 지금도 계속이 되는지 초대교회의 특별한 시기에 끝이 났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제라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면 이런 은사는 계속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은사들은 우리가 마음대로 받을 수 있거나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조심성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보편적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임하는 특별한 은총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나,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특별히 사랑의 은사가 여기에 속한 은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들에게 이런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그 받은 재능들을 잘 살리는 것이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의 은사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하면서도 모든 은사들 중에 가장 귀한 은사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의 은사에 관해서는 다음 주에 “이웃을 섬기는 교회”를 설명하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역사가 넘치는 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세례가 넘치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이 가득한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성도가 되도록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개발하여서 주님의 교회가 부흥하는 일에 쓰임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