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17)
본문 : 요일 2:9-11
제목 : 빛과 어두움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과거에 기독교가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기독교가 세상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학교도 세워서 문맹을 퇴치하고 병원을 세우고 고아원을 세우고 복지기관을 세워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 때는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세상보다 더 앞서갔고 더 지식적이었고 더 좋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살려고 했고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앞질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에 있는 것보다 세상에 있는 것이 더 지식적이고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더 보람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세상에 양 발을 걸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이쪽 저쪽 눈치를 보며 살거나 아예 교회를 떠나서 세상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교회나 세상이나 별로 다르지 않고 성도들이나 세상 사람들이나 별로 구별도 없고 그저 그렇게 섞여서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의 사람들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확연하게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 옛 계명과 새 계명, 생명과 죽음, 천국과 지옥,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와 사탄의 종, 선택을 받은 사람과 버림을 받은 자, 의로운 사람과 죄인, 축복의 대상과 저주의 대상.... 으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확실하게 이쪽이냐 저쪽이냐 택일하는 것이지 대강적당이 왔다가 갔다가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요한일서의 기록목적은 우리가 빛과 어두움 그 어느 쪽에 서 있는가를 테스트해보라는 것이요. 확실하게 빛 가운데 서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열거하고 그것들을 제거함으로써 확실하게 주님 편에 서서 주님과 완전한 사귐을 가짐으로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빛과 어두움으로 나누고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함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하고 잘 못된 일은 고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이 세상을 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서 서 있는가, 새 계명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천국을 향해서 가고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선택을 받은 사람인가, 의로운 사람인가, 축복의 대상인가를 구별할 수 있는 그 기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요 주님 안에 있는 온갖 은혜를 받고 사는 자입니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속에 거하는 자요 저주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여러분은 어떤 상태인지 다시 한번 점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거리는 것이 있으면 하루속히 제거를 하시고 참된 신앙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과 더 가까이 사귀는 삶을 사심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
본문 9절 말씀에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1절 말씀에도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이고 하나님의 핵심적인 명령이며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이 사랑을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소리 나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심오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사랑만 있다면 모두가 다 행복한 삶을 살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시기하고 경쟁하면서 힘들게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사랑을 하지 않고 오히려 형제를 미워하면서 사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형제를 미워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빛 가운데 있다 하지만 어두운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가 밝은 빛 가운데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늘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는 반드시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은 빛 가운데서 산다고 하지만 실상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교회에 다니면서 자신이 성도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성도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빛이 있고, 그 속에 진리가 있고, 그 속에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그 속에 새 생명이 있고, 그 속에 새 계명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사랑으로 행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원래 성질이 못돼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원래 그 성격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세상 어두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갈 곳을 알지 못하는 자
우리 성도가 가야할 목적지는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곳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지입니다.
우리 서로를 사랑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지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갈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3)어두움이 그 눈을 멀게 한 자 
세상의 어두움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립니다.
무엇이 참된 것인지를 볼 수 없도록 눈을 멀게 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돈에 눈이 멀어서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출세에 눈이 멀어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기 이익 자기 쾌락에 눈이 멀어서 참된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멀리 볼 수만 있다면 사랑을 하면서 사는 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의 어두워진 눈 때문에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면 아직 어두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이미 눈이 멀어져 버린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겉으로만 아닌 진심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나에게 악으로 대적하는 사람까지 이해의 눈으로 동정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여 어두운 세상을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2.빛 가운데 있는 자
본문 10절 말씀에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라고 했습니다.

1)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란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사랑을 아는 사람과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려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과 사랑을 해 보지 못하면서 산 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고행승이 한 작은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 고행승을 찾아와 자신이 신을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고행승이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없습니다. 나는 그런 세속적 일로 죄를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식으로 타락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진실로 나는 신을 깨닫고 싶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고행승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사랑의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 구도자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고행승이 세번째로 물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요.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사랑한 적이 없었나요? 정말 한 사람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단 말입니까?" 

대망을 품은 그 남자는 약간 짜증스런 표정과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실례지만 왜 똑같은 질문을 자꾸 물어보십니까? 나는 사랑이란 글자를 건드린 적조차 없습니다. 신의 경지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자 고행승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만약 당신 누군가를 아무라도 좋으니 사랑한 경험이 있다면, 사랑의 꼬리라도 잡아 본 적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초로 하여 당신이 귀의하도록 도와 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 친구여! 당신이 사랑한 적이 없다면 당신은 신을 향한 어떤 길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것을 저속하게 생각을 하여 거룩하게 경건하게 정의롭게 산다고 하면서 사랑이나 용서나 이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모든 일을 법대로 율법대로 규칙대로 질서있게라고 하면서 사랑의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늘 서로 싸우며 미워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엄격한 부모님 때문에 엄하게 살면서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싸우고 미워하고 다투는 것만 보면서 자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과거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많이 싸우셨는지 밥상도 집어던지고 심하게 욕도 하고 손지검도 하고 왜들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무정한 사람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 늘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라도 사랑이라는 것을 배워 보시기 바랍니다.
부부간에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부모와 자식간에 참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형제간에 진실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웃은 어떻게 사랑을 하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해서 가족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한번 더 생각하고 진정으로 그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정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사랑하는 자는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다고 했습니다.
거리낌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칸달론(σκανδαλον)이라는 말인데 지난주 누가복음을 공부하면서 배운 "실족케 하는"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저가 이 작은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당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눅17:2)라고 했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실족"이라는 말은 "남을 넘어뜨린다"는 뜻과 "감정을 상하게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신앙적으로 죄를 짓게 하여 남을 불신앙으로 넘어뜨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 속에 거리낌 즉 실족케 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족케 하는 대상이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두 가지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실족케 한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불신앙으로 넘어지게 하지 않고 주님 안에 굳건히 있게 하는 것인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거나 죄를 짓게 하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게 역사한다면 그것은 성령님께서 내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이 나에게 있는 한 나의 신앙은 식어지지 않고 점점 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게 역사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만 모든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면 나 때문에 실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 안으로 더 들어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 광성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 교회가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이 없어서 너무 차가워서 따뜻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리 자신이 세상 어두움 속에서 눈이 어두워져서 참된 사랑을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 속에는 거리낌이 없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귀한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가정의 달 오월에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더 강하게 실천해서 빛 가운데서 주님과 참된 사귐을 가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