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18)
본문 : 요일 2:12-14
제목 : 자녀들과 청년들과 아비들에게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우리가 대화를 나누어 보면 어떤 사람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몇 마디 더 길게 나가면 바로 싸움이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중심에 가지고 있는 사상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반대되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이야기를 하면 싸움만 날 뿐입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과 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서로 한 마음이 되어서 같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상의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서로 만나면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아도 참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성경공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봉사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냐 고난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 예수님도 고난을 받으셨는데 우리가 잘 살면 되느냐 아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부자로 살았고 다윗도 엄청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고 솔로몬도 엄청 호화롭게 살았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서로 토론을 한다면 끝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기 때문에 누구 주장이 옳다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다투지 않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신앙의 근본이 되는 사상이 같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아주 신앙의 깊은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우리가 배우고 있는 내용들은 참으로 신앙의 깊은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로 나아와야 하고 빛 되신 하나님과 사귀어야 하고 계명을 지켜야 하고 그것도 형식적인 것이 아닌 진심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어두움 속에서 눈이 먼 장님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 다음의 말씀인 15절 이하를 보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교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야 꿈같은 이야기다 그것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지 실제로 누가 그렇게 살수가 있겠느냐고 반문을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명예를 위해서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마라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라고 하면 아멘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요한은 문득 오늘 본문의 말씀을 앞뒤가 연결이 되지 않는 말씀을 삽입해서 특별히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신앙의 기본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줌으로 성도들이 자신이 하는 말에 공감을 가지고 따르게 하기 위해서 특별히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의 기본을 바르게 가지게 되면 이런 심오한 말씀들도 이해를 하게 되고 공감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깊이가 있는 말씀은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이 말씀이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가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늘 중심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1.자녀(아이)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에는 세 시대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녀들 혹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청년들에게, 그리고 아비들에게 각각 다른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아이 청년 아비는 실제로 그 연령층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연륜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이와 같이 아직 초보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리고 왕성한 힘을 가진 한참 강력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과 그리고 이제 힘은 없지만 아주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초보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2절에는 "자녀들아"라고 호칭을 했고 14절에는 "아이들아"라고 호칭을 했습니다. 
이 두 호칭은 약간의 다른 의미는 있지만 같은 의미로 생각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나 자녀들이나 다 아직 연약한 신앙의 상태를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1)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12)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초는 우리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 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초라고 해서 시시한 것이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기초라고 해도 반드시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를 통과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신앙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알아 알아 나 그 이야기 골백번도 더 들었어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을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정죄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잘 하는 쪽으로만 생각을 하고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쪽은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무서 다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세금을 안내는 사람이 가장 큰 죄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의 눈에는 은행돈 빌리고 안 갚는 사람이 죄인이라고 할 것입니다.
교통경찰의 눈에는 교통법규 안 지키는 사람이 죄인이고
학교 선생님의 눈으로 보면 공부 안하고 도망 다니는 학생이 죄인이고
부모님의 눈으로 보면 효도 안 하는 사람이 죄인이고
자식의 눈으로 보면 재산 많이 안 물려준 부모가 죄인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은 사람이 다 죄인이고
돈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열심히 일해서 잘 살지 못하고 남의 도움이나 바라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 두 가지는 잘할 수 있겠지만 모든 일에 다 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잘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떳떳할 수 없는 연약하고 악한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정되지 않고 그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은 헛일입니다.
아직 어린아이의 신앙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었으며 그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할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만 확실히 알고 믿는다면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라면 지킬 것이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면 할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라고 해도 버릴 것입니다.
그런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2)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14)
인간의 가장 근본은 부모님을 알고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님도 몰라본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닐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신앙인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신 분임을 아는 것이 신앙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면 마땅히 효도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섬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부모님에게 효도를 한다고 하지만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하지만 그 은혜에 다 보답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심을 안다면 마땅히 그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며 마땅히 그 명령에 순종을 할 것이며 마땅히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갈 것입니다.

2.청년들에게
청년의 특징은 강인함입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적과 싸워서이기는 힘을 가진 시절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청년기는 왕성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1)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13)
여기 악한 자란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것도 사실은 죄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악한 자를 이기었다라는 말은 죄를 더 지을 수 있는 사탄이 유혹이 많이 있었지만 그것을 참고 이겼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초보는 죄인임을 자백하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죄를 범하기도 하고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해지는 청년기가 되면 스스로 죄를 짓는 일까지도 삼가 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은 과거의 죄나 현재의 죄나 미래의 모든 죄까지 이미 용서를 받은 것이지만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범죄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힘써 싸우면서 승리를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여기 악한 자란 이단의 무리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도 이미 교회 내에 많은 이단 사상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이단을 구별하고 그들과 대항하여 이겨서 그 세력을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 이단의 무리가 교회 내에서 많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말씀을 알아도 분별할 수 있는 이단에서부터 우리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분별을 할 수 없는 이단까지 다양합니다.
공적으로 이단으로 구별이 된 집단부터 정통의 가면을 쓰고 사실 이단의 길을 가는 집단들도 많이 있습니다.
왕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이단 이런 비진리를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외부의 적인 타종교 보다는 내부의 적인 교회내의 이단이 더 심각합니다.
교회를 따나지 않은 것처럼 위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속아넘어가기 때문입니다.

2)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그런 죄의 유혹들과 이단의 위협으로부터 강하게 우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25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은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들은 없어지고 사라지고 불완전하고 연약한 것들이며 죽은 지식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있고 영원하고 살아 있어서 강한 힘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할 때 죄가 무엇인지 죄가 얼마나 흉칙한 결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지를 알게 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이단의 세력이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는지 그 위력이 어떠한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마땅히 싸워서 나갈 바를 알게 합니다.
말씀은 성령님의 검으로서 우리가 그 악한 세력들과 싸워 이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지금 우리 속에 거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역사하시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말씀에 사로잡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진리를 알기를 사모하며 십자가의 복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악한 죄에서 악한 이단의 세력에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3.아비들에게
"아비들이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13절)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14절)라고 했습니다.

13절과 14절의 내용은 같습니다 다만 과거형과 현재형을 썼다는 것만 다릅니다.
아비들은 즉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라는 말씀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이 태초부터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한 인간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로 예수님은 실제로 사람의 몸을 입지 않은 분 즉 사람으로 오심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주 심오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랑으로 오셨음을 알고 믿었습니다.
이 부분은 사람들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사람이 하나님이시며 그것도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분이 하나님이 되실 수 있으며 만약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무엇이 답답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소위 많은 지식인들이 이런 부분을 믿지 않으려고 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람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단순히 희생정신을 발휘한 참 사랑 정도로만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아비들과 같이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진리를 알고 십자가의 복음을 깊이 묵상하고 그 주님과 가까이 나가는 삶을 삽니다.

나이가 들고 신앙의 연조가 깊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깊이있게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의 예수님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에 대해서 심도있게 알아야 합니다.
여기 안다는 말씀도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속속들이 다 알고 함께 사는 것처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이 들어가면 우리는 주님을 깊이 아는 일에 더욱 힘을 써야 합니다.
수박 겉핧기식의 앎이 아니라 깊이 있는 앎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교제를 해야 합니다.
함께 동행을 해야 합니다.

젊어서는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알려고 합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상급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우리 각 사람에게 천사가 파송되어 있는데 그 천사의 수효는 몇 명일까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까 예수님이 오실 때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천년왕국은 언제 이루어질까 666이 뭘까 14만 4천명은 무슨 뜻일까 이런 지식들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신앙이 깊어지면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오직 우리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예수님과 더 깊은 사귐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기본이 되는 세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더 깊은 교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이지만 없어서는 안될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