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 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28)
본문 : 요일 2:28-29
제목 : 자녀들이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아"라고 부르시는 것은 우리 성도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진실되게 부르시는 호칭입니다.
마치 사랑이 많은 부모님이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아주 소중한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부르시는 그 부르심입니다.

"이제 그 안에 거하라"라고 하십니다. 
그 안에 거한다는 말은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그 진리 안에 거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사도요한은 진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조목 조목 설명을 들으셨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로 들으셨지만 한마디로 무엇을 말씀을 하시는지 잘 정리가 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구조가 복잡해서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질서정연하게 1장의 주제는 무엇이고 2장의주제는 무엇이며 3장은...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잘 안 되는 것이 요한일서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라는 것이 전체 주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한 사귐 충만한 기쁨"이라는 주제로 요한일서를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에 있어서 거침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그것을 제거함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그것을 제거함으로 참된 신앙생활을 하게하는 것이 요한일서의 기록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에 있어서 즉 신앙생활을 바르게 함에 있어서 꼭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안에 거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시하고 이를 통하여 성도들이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검증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바른 신앙고백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참 신자는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신 참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고 바른 신앙의 고백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윤리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바른 신앙고백을 한 자는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빛이 되시기 때문에 빛 가운데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했으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계명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앞으로 우리가 배우게 될 3장과 4,5장에서 특별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 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 거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이 말씀들을 실천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면서 살고 특별히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이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적그리스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진리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반대되는 길을 가르치고 그래서 우리를 미혹케 하여서 우리를 천국으로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도 진리가 아닌 이상한 가르침들이 들어와서 천국 가는 길보다는 이 세상의 축복을 가르치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신앙의 전부인양 가르침으로 천국을 향해서 바르게 가고 있는 우리를 비웃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길은 외롭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그 안에 거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이라는 말씀과 "그의 강림하실 때에"라고 하신 말씀은 다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때가 되면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가운데서 천군천사와 함께 영광 중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은 그 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오실 그 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상을 받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들어진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이 최후의 종말이 없다면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시지 않는다면 어차피 한번 살다가 죽는 몸 아무렇게나 즐기면서 살면 될 것입니다.

죽고 난 다음에 심판도 없고 상급도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나 잘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 고생하면서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바르게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언제 다시 오실지 그 날을 우리가 잘 모르고 우리 인간의 시간으로 오랫동안 오시지 않으시니까 혹시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절대로 그냥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 날을 대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도적들은 꼭 설마 설마 할 때에 옵니다.
설마 오늘밤에 오겠어라고 생각한 그 날에 꼭 오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그와 같습니다.
설마 지금 오시겠어라고 대비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 있을 때 이 세상의 쾌락에 젖어 있을 때 그 때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우주의 종말이 하루 하루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개인 개인이 당하는 인생의 종말이 하루 하루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이 진리 안에 이 말씀 안에 이 십자가의 복음 안에 거해야 하는 이유는 그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는 그 날이 오면 알게 될 것입니다.

2.그 날에 우리가 담대함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에 그것으로 인해서 담대함을 얻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담대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레시안'(ραρρησιαν)은 헬라 세계에서 '자기의 의견을 공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민의 권리'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즉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말을 자유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그 앞에 나아가서 자유롭게 제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합니다.
예수님을 예수가 어떻고 라고 막 먹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그러실 수가 있어라고 불평을 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내가 꼭 그렇게 순종하라는 법이 있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기도 합니다.

죄 좀 짓는다고 하늘에서 날벼락을 내리지도 않는데 슬금슬금 죄를 좀 지으면 어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으니까 사람들 마음대로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무시하고 살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당장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지 
교회에 다닌다고 밥이 나와 고기가 나와라고 비웃기도 할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적당히 다니면 되지 뭐 그렇게 열심히 뭐 그렇게 대단하게 목숨 걸고 신앙생활 한다고 난리야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말들을 하면 우리가 바보인가 우리가 혹시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을 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오면
그 영광스런 주님의 재림의 날이 오고 다시 오시는 주님의 그 화려한 영광스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런 말들이 쏙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입을 벌리고 할말을 잊을 것입니다.

그 때에 담대히 입을 벌려서 주님 어서 오십시오 기다렸습니다 반갑습니다라고 담대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주님의 말씀 안에 바르게 행하면서 살고 있던 우리는 그 날에 남들이 입을 벌리고 닫지도 못하고 있을 그 때에 담대하게 자유롭게 주님 앞에 나아가서 말을 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면 무슨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습니까
예수님 저 아시죠 저 양 아무개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늘 고백하고 살던 아무개입니다.

남들이 세상에 부자로 살려고 세상의 쾌락을 위해서 살려고 다른 길로 갈 때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고 있던 아무개입니다.

힘들어도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면서 살려고 애를 썼던 아무개입니다.
빛 가운데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저를 기억하고 아시지요

원수까지도 사랑하면서 살라고 해서 보기 싫은 사람 나를 욕하는 사람 아니꼽고 치사하게 행하는 사람 가서 주먹으로 한대 올려 버리고 싶은 사람까지 참고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애썼던 접니다.

그 안에 거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한 사람은, 십자가의 진리 안에 거한 사람은,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산 사람은, 말로만 믿습니다가 아니라 그 믿음을 실천하면서 산 사람은 이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재림하신 그 날 그 영광스러운 보좌 앞에서 담대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3.그 날에 우리가 부끄럽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해야 하는 이유를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9:26절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예수님의 말씀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면 예수님께서도 영광스럽게 재림을 하실 때에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실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면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자신도 부끄럽고 예수님도 우리를 천국에 들여놓기가 부끄럽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도 자랑스러워야 할 것이고 예수님도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바르게 살면서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교회가 모든 면에서 세상을 앞질러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저 억지로 할 수 없어서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 가면 부모님이 뭐라고 하고 아내나 남편이 뭐라고 하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다녀 주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혹시나 해서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니까 보험 드는 심정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학적인 세상에 미신을 믿는 사람처럼 챙피하게 여기면서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더 자랑스럽게 여겨야 될 일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교회에 다닌다면 주님 앞에 섰을 때 참 부끄러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잘 다니기는 하지만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 없어서 부끄러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는 줄 알았다면 이왕 신앙생활 하는 것 좀 화끈하게 할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장례식 때 부르는 이 찬송가를 늘 기억하면서 삽니다.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못다 한 일 많아 부끄럽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특별히 한 일이 없으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주님 다시 오셔서 그 영광스러운 모습 앞에 섰을 때 내가 한 일도 없이 너무나 좋은 것을 상으로 받았을 때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이왕 신앙생활 하시는 것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저것 살피며 눈치보면서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4.의를 행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8절 말씀에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른 삶을 삶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의롭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의롭게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안에 거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왕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기웃거리지 말고 남 눈치보지 말고 확실하게 그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것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진리 안에 십자가의 복음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재림하시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았노라고 담대하게 말 할 수 있도록 사시기 바랍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사시기 바랍니다.

칭찬과 상급을 받고 기쁨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