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30)
본문 : 요일 3:3-4
제목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

요즈음 나라가 대통령 선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큰소리를 치고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서로를 헐뜯고 싸우고 난리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모든 면에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후보자의 과거를 낱낱이 살펴서 비도덕적인 일은 없었는가를 점검을 합니다.
과거에 어떤 후보의 아들들이 병역을 기피했다는 것 때문에 참 훌륭한 사람이 아쉽게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 검증위원회도 있어서 철저하게 검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통령이 도덕을 가르치는 교사도 아니고 좀 흠이 있어도 일을 잘 할 수 있으면 되지 그까짓 것 과거에 좀 잘 못한 일 가지고 그렇게 난리를 치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양심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그가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면 그 욕심을 위해서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악한 사람이라면 악한 정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불법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가진 권력이 너무나 크고 그 영향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가 가진 기본 양심을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아동센터 아이들이 가끔 서로 싸우거나 남의 것을 슬쩍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들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게하기 위해서 이렇게 공부를 시켜 준다.
너희들은 앞으로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시장도 되고 하다못해 구월4동 동장이라도 될 사람들인데 만약에 너희들이 근본적으로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부를 못하게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남을 때리고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 동장이 되면 우리 구월4동이 깡패동이 되는 것이고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이 동장이 되면 구월4동이 도둑의 소굴이 될 것인데 그러면 큰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양심이 나쁜 사람은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착한 사람이 공부를 잘 해서 그런 자리에 올라야 우리동이 우리 나라가 바르게 설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특별히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업주 한 사람이 선한 양심을 가지면 그 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집니다.
의사 한 사람이 선한 양심을 가지면 많은 환자들이 기쁨을 얻습니다.
공무원 한 사람이 선한 양심을 가지면 그가 맡은 모든 일들이 선하게 운영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한 사람이 선한 양심을 가지면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닮아 갈 것입니다.
목사 한 사람이 선한 양심을 가지면 그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요구하는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가진 소망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소망보다 더 귀한 소망입니다.
대통령은 기껏해야 5년 동안 하는 것이고 그것도 하고 나면 욕만 잔뜩 먹고 죄인으로 나쁜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부활의 몸으로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서 왕 노릇을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가진 소망입니다.

적어도 이런 소망을 가진 자라고 한다면 우리가 대통령 후보보다 더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이런 신분을 주시고 그 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인데 그런 우리가 지저분하게 죄나 지으면서 악한 양심을 가지고 욕심이나 부리면서 남에게 피해나 주면서 그렇게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이런 귀한 신분을 가지고 소망 중에 사는 성도답게 깨끗한 삶을 살려고 애쓰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라고 하셨는데 먼저 이 소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 소망은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나타날 그 현상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배운 대로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되면 우리가 예수님과 같아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 신비한 몸과 같은 몸으로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어서 살고 있지만 지금 당장 나타나는 현상으로서는 그다지 실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놀고먹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바르게 살려고 하니까 힘이 들고 은근히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삶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 심판을 받는 피고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심판자로서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다가 소망을 두고 사십니까
이 세상의 평안과 행복에 소망을 두고 사십니까
그것도 괜찮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바른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소원이십니까
그것도 괜찮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우리의 나태한 삶을 부지런 삶으로 바뀌게 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하게함으로서 이 세상에서의 성공에도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불치의 병에 걸려서 사업의 실패로 인해서 가정의 파탄으로 인해서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거기서 탈출을 하는 것도 신앙의 힘입니다.
신앙은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더 보람된 삶을 사는 것이 소원이십니까
신앙생활은 정말로 보람된 삶을 살게 해 줍니다.
의미없이 그저 바람부는 대로 흘러가던 인생이 목표를 정하고 선한 일을 도모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며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도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만으로 끝이 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축복은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되고 아무리 보람된 일을 한다고 해도 이 세상의 일로 끝이 난다면 허무한 삶을 산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에 소망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같이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살게 되는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2.주님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죄나 흠이 없이 깨끗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을 가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정결하심을 따라서 우리도 깨끗해지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성화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아 죄 사함을 받은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 깨끗함이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는 것이 깨끗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기 전에는 우리 스스로가 깨끗해 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는 깨끗함이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깨끗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거룩한 성품으로서의 도덕적인 깨끗함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다면 뭔가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충성도 하고 좋은 일도 더 많이 하고 주님을 위해서 순교라도 할 각오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런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끗하고 선한 양심이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은 잘못된 길로 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고쳐야 되겠지만 그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을 하나 고르라면 지나친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이기주의가 되고 욕심 때문에 남을 사랑하라는 제일 큰 계명 중에 하나를 지키지 못하고 욕심 때문에 많은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평생을 주님의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을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교회의 사역들을 자기 욕심과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목사들이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불법을 행하고 자기 명예를 위해서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많은 사람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들여서 교회가 아닌 자기 왕국을 만들고 그로 인해 교회가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많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성도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사이비 이단 목사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선한 일을 한다는 사람도 속으로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끼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신 부부관계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지나친 욕심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한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항상 자신이 옳고 좋은 일을 한다고 말을 하고 다닙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야 이 사람 좋은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로 잘 대합니다.
찾아가서 인사도 하고 식사도 대접을 하고 아주 잘 대해줍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이 사람 속에 있는 이기주의가 조금씩 보여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냥 스쳐 갈 때는 잘 모르지만 조금만 가깝게 지내고 조금만 그 사람이 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아 이 사람이 참 욕심이 많구나 그 욕심을 가지고 나를 대하는구나 라고 알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주변에는 사람이 많은데 왜 제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습니까
저는 모든 사람들을 잘 대해주려고 하는데 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합니까라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말할 수가 없어서 그냥 좀 더 잘 해 봐라고 말하면서 마음은 답답합니다.

우리 속에 가장 추하고 못된 것 그 지나친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 죄악 속으로 빠져 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나친 이기주의 지나친 욕심과 같은 더러운 것들을 먼저 깨끗하게 정리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것 보다도 주를 위해서 순교를 하는 일 보다도 그것이 우선되어야 할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죄는 불법이라. 
본문 4절 말씀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불법'은 문자적으로 '율법을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율법'이란 용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문의 '불법'은 율법을 범한다는 의미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인간의 본성적인 불법을 의미한다고 주석을 합니다.

죄를 짓는 것은 불법을 행하는 것인데 그 불법이란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앞서서 말씀 드린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자기 속에 있는 지나친 욕망을 제거함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은 즉 불법을 행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지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는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는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과 같은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복락을 누리려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다 아 그래요 이렇게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늘 고백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러시다면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만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기본적인 것도 행하지 않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주일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일 속에는 안식일의 개념도 있습니다.
안식일의 개념은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엿새동안 창조하시고 이레되는 날에 쉬신 그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날짜가 바뀐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 계획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시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날의 아주 주요한 의미를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주일에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성도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고 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대신 죽어주시고 우리를 부활시키려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본도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거나 아직 기본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기본은 하나님께 십일조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까지 돈 이야기를 들으면 아주 기분이 상하실 것입니다.
저도 평신도 때 목사가 헌금이야기만 하면 귀를 막고 싶었습니다.
목사가 된 지금도 교회가 수익사업을 해서 헌금을 안내는 교회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헌금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로서 가장 기본적인 헌금입니다.
왜냐하면 십일조헌금의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께 십일조를 바치지 못합니다.
내 것을 아까워서 어떻게 바칩니까 그것도 소득마다 십 분의 일을 어떻게 바칠 수 있겠습니까(소득이 없는 사람은 안내도 됩니다)

십일조는 많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돈을 좋아하는 줄 알고 하나님 십일조를 천만 원 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데 사실은 자기가 일억 원씩을 벌고싶다는 이야기입니다. 

십일조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며 우리의 생사화복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어떤 분들은 감사헌금이나 다른 명목의 헌금은 하면서 십일조를 안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다른 것은 안 해도 십일조는 기본적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우리 성도의 기본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어떤 남편이 있는데 이 사람은 선물도 잘 사 오고 아이들 용돈도 잘 주는데 한가지 중요한 것을 안 합니다.
회사에서 받은 월급을 잘 안 가져다 줍니다.
그러면 아내가 아 우리 남편 용돈도 잘 주고 선물도 잘 사 줘서 훌륭하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전에 어떤 사람 있었는데 이 사람은 월급봉투를 제대로 아내에게 잘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그 정도 직장이고 그 정도 직책이고 하면 연봉이 얼마 된다는 것은 다 아는데 월급 부쳐 오는 것 보면 절반이나 보내고 겨우 생활비 할 정도만 보내고 나머지는 자기가 써 버립니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사랑한다 가족을 사랑한다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나 저의 마음도 정말 생활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에 헌금도 하지 말게 하고 오히려 교회에서 구제비로 돕고 싶습니다.
나이들어서 돈 쓸 데는 많은데 용돈 한푼 얻어 쓰기 힘든 어르신들에게는 우리가 용돈을 많이 드리고 싶습니다. 
목사가 혹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 불러다가 돈 내어 놓으라고 한다고 오해를 하시면 안 됩니다.
이 설교는 직장이 있고 사업을 하고 하는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십일조헌금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중심이 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이 믿음의 행위가 우리를 오히려 더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크고 작은 많은 소망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영원한 생명 신비한 몸으로의 부활과 완전한 나라 천국을 소망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소망을 가진 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림으로 깨끗한 양심으로 세상을 살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소망을 가진 자는 불법을 행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것이 죄요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주일을 지키면서 성도로서의 기본 의무들을 행하면서 살려고 노력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작은 노력들이 우리를 그 소망이 있는 데까지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