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1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31)
본문 : 요일 3:5-6
제목 : 우리 죄를 없애러 오신 예수님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당시의 불치병들을 많이 고쳐 주셨습니다.
문둥병이나 중풍병이나 장님이나 앉은뱅이나 귀신이 들린 사람들을 많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병으로 죽은 사람을 살려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 보임으로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하필 불치의 병들을 많이 고쳐 주셨을까요
질병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고통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건강한 것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성도들을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구하다가 어떤 때는 그저 다른 것은 어떻게 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의 이유를 찾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질병과 죄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나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없이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죄의 결과를 나타나는 질병을 치료해 주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17절 이하에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떤 중풍병자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불쌍히 여기고 예수님께 치료를 받도록 해 주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꾀를 내어서 예수님께서 계시는 그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왓장을 벗기고 지붕을 뚫고 그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침상에 누워 있는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병자를 고쳐 주시고 하시는 말씀이 "네 병이 나았으니 일어나 가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 비아냥거립니다.
"야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 참람한 말을 하는구나 자기가 누군데 죄를 사하니 마니 하느냐"라고 속으로 수근거리며 비웃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이 더 쉽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하는 말이 더 쉬워 보일지 모릅니다.
결과가 눈에 안보여도 되니까 더 쉽게 생각이 될 것입니다.
일어나 걸어가라 라는 말은 병이 깨끗하게 고침을 받고 침상에서 누워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잘 못 말했다가는 큰일이 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보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하는 말이 더 어려운 말입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고 그 결과는 병이 낫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아주 막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병이 나음을 받는 것은 죄의 결과 한 부분을 고쳐 주시는 것이라면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모든 병의 원인을 제거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어려운 말씀을 하신 것은 병 고침을 통해 죄의 의미를 알고 예수님께서 죄를 사할 수 있으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알리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러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려고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없애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1.죄를 용서받게 하려고 오심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없이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죄를 없이 하신다는 말씀에는 몇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게 해 주신다는 의미가 있고
또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게 하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죄가 가진 독소를 없애 주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죄를 용서 받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이 지은 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죄를 용서받게 해 주시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까지 오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 그냥 하늘에서 죄 용서를 선포하셔도 되실 것인데 이렇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까지 오셔야 하셨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지은 죄가 너무나 커서 도저히 그냥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죄를 우리의 몸의 병과 비교해서 생각을 해 보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병은 감기와 같이 세월만 가면 자연치유 되는 병도 있습니다.
그저 소독약만 좀 발라줘도 낫는 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병들은 아주 심각해서 간단하게 낫지 않는 병도 있습니다.
암과 같은 병들은 그냥 약좀 먹는다고 낫는 병이 아닙니다.
수술을 하든지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을 해야 낫는 중대한 병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도 어떤 죄들은 야 이놈아 그러면 안돼 이번만 용서를 해 줄 테니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라 라고 간단히 꾸짖기만 해도 되는 잘못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죄는 말만해서는 도저히 안 되는 죄가 있습니다.
감옥에 집어넣어도 다시 나와서 죄를 짓고 사형을 당하기 이전에는 도저히 용서를 받거나 개과천선할 수 없는 중대한 죄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가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죄 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이 양심대로 법대로 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한 일이 없어 나는 법을 어기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죄란 그런 죄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양심대로 산다 법대로 산다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양심이라는 것이나 그 법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별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을 흉악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들이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우리를 이렇게 모든 창조물위에 뛰어난 존재로 만들어 주시고 그 속에서 우리를 창조해주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본분입니다.

그런데 그 기본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도 않고 하나님은 없다 나는 절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나는 나다 누가 내 인생을 간섭하려고 하느냐 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삽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다른 피조물을 신이라고 섬기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람난 음탕한 여인에 비유를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퍼부었는데 그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는 부모를 배반한 죄보다 아내를 배반한 죄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죄악입니다.

몇 마디로 타일러서 될 일도 아니고 그냥 용서해 준다고 쉽게 고치고 돌아올 일도 아닙니다.
수술을 하듯이 심장폐부를 완전히 도려 내고 새 사람으로 다시 나게 하기 전에는 용서가 불가능한 흉악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렇게 흉악한 죄이기 때문에 그냥 용서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시어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주님이 오셔서 우리 죄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를 없이해 주셨습니다. 

2.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고 오심
본문 6절 말씀에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다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죄를 용서받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신 것은 죄 용서만 받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죄를 하나도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만 현저하게 흉악한 죄나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한 자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돌아와서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또 성령님은 우리가 다시 죄를 지으려고 할 때 깨닫게 해 주시고 알게 해 주셔서 범죄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1)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심
성령님은 우리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 나름대로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 양심의 잣대로 죄를 판가름합니다.
죄의 기준을 자기의 기준으로 따지면 자기는 의로운 사람이고 남은 불의한 사람이기 쉽습니다.
인터넷 신문같은 것을 보시면 그 기사 밑에 자기 의견을 다는 난이 있습니다.
아주 서로 상극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어떤 사람은 참 잘 한 일이라고 칭찬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주 잘못했다고 욕을 합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의해서 죄가 무엇인지 정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2)나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하심
죄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나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실내는 어둡기 때문에 작은 먼지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햇살이 들어오면 먼지가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고 어두움 속에서 살면 우리의 죄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 되신 하나님 앞에 서 보면 얼마나 나 자신이 흉악한 죄인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직 뭘 모르는 초보자에 불과합니다.

3)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게 하심
담배와 술이 위암과 간암의 주범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술과 담배를 많이 해서 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았다고 합시다.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그 병이 나았다면 당연히 그 병의 원인이 되었던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지은 죄가 우리를 병과 죽음으로 인도하여서 영원히 멸망의 길로 빠지게 했는데 기적적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는데 다시 또 죄를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죄라면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서 다시 그 흉악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고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다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이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죄에 노출되어 있다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곳에 가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3.죄의 결과인 사망이 없는 세상에 살게 하려고 오심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없이해 주시겠다는 것은 죄의 결과인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51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라고 했습니다.

죄가 우리를 사로잡아서 죽고 썩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우리를 허무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사함을 받은 우리들은 이제 그 영원한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홀연히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않을 육신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죽을 것이 다시는 죽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죄가 더 이상 우리를 붙잡고 있지 못할 것이고
이제 더 이상 죄의 권능이 우리를 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날이 되면 우리에게 이런 이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없이하려고 오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을 그 때는 알게 될 것입니다.
죄짓지 않고 살려고 애쓴 보람을 그 때서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벌을 받지 않고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없애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죄를 없애 주셨고
죄를 다시 짓지 않도록 도와주심으로 죄를 없애 주셨습니다
죄의 결과인 사망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해 주심으로 죄를 없애 주셨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힘을 수시는 성령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의 형벌을 받지 않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시며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