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35)
본문 : 요일 3:13
제목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요즘 자동차 타이어 선전을 하는 것 보니까 이렇게 합니다.
문짝이 없어도 차는 갑니다.
헤드라이트가 없어도 차는 갑니다.
그러나 바퀴가 없다면.....

문짝 하나 떨어져 나갔다고 차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헤드라이트가 없는 깜깜한 밤이라도 차가 가기는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퀴가 없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이어는 좋은 타이어를 써야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바퀴와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을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차를 살 때 기본 사양이 있고 옵션이 있습니다.
기본 사양은 자동차가 자동차로서 역할을 하는데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을 기본 사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없어도 되지만 좀 편하게 운전하기 위해서 돈을 좀 더 주고 여러 기능들을 추가합니다. 
에어컨이나 자동키를 달고 에어백이나 특별한 것들을 추가로 장착을 합니다.
그것을 옵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사랑이라는 것이 기본 사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옵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새벽기도를 안 해도 신앙생활은 할 수 있습니다.
주일성수를 꼭 못한다고 해도 신앙생활은 할 수 있습니다.
술 담배를 못 끊는다고 해도 신앙생활은 할 수 있습니다. 
방언을 못하고 능력있는 기도를 못해도 신앙생활은 할 수 있습니다.
충성이나 봉사나 헌신을 못해도 신앙생활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이는 신앙생활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2-3)

사랑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힘이 들고 교회 다니기가 싫어지고 기쁨이 없고 능력이 없고 성도다운 멋이 없습니다.

우리가 요즘 배우고 있는 요한일서 3장의 말씀은 이 사랑의 중요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3절 이하의 말씀은 그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짧으니까 한번 외우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 말씀을 꼭 외우시고 마음에 간직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잘 들으시고 이해하시고 실천을 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실천을 해야 할 사랑과 관련해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배운 말씀 즉 "가인같이 하지 말라"라는 말씀도 사랑과 관련하여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특별한 사람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악한자 편에 속한 가인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오늘의 말씀도 사랑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살 때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사실은 칭찬을 하고 박수를 쳐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미워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거든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1.형제들아.
요한일서는 편지형식으로 기록이 된 책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읽는 대상들을 부르는 호칭들이 가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아",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호칭을 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특별히 "형제들아"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라는 호칭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가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는 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서로 형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육신적으로 보면 할아버지와 손자 아버지와 아들정도의 나이차이가 있기도 하고 실제로 부모자식지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서로 형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 "형제들아"라는 호칭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구별을 말해줍니다.
이세상은 우 리가 형제로 지내야 할 사람들이 있고 그저 남남으로 지내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사는 사람들은 다 형제지간이 됩니다.
세상의 형제관계보다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형제들이기 때문에 더 소중한 형제지간입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아무리 친한 관계라고 해도 성도가 아닌 사람은 영적으로는 남남일 뿐입니다.
가는 길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원수같은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관계입니다. 

이 주님 안에서 한 형제는 육신의 형제관계보다 더 친하게 지내며 사랑하며 지내야 한다는 것을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친형제였지만 서로 소속이 달랐다고 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고 가인은 악한자에게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이 형제였지만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 육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그를 찾아왔을 때 그들이 진짜 형제가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참된 형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12:50)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도들 간에 부르는 호칭들이 많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선생님.....
이런 여러 호칭들 보다 우리가 정말로 정겹게 불러야 할 호칭이 "형제들아" 라는 호칭입니다.

목사나 장로나 직분을 부르는 호칭은 우리가 종으로서 일을 하는데 쓰이는 호칭입니다.
목사는 목사의 일을 하는 것이고 장로는 장로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라고 부르는 호칭은 그런 일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의 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해 주는 호칭이 형제라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면 창조주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면 주인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심판주가 되시면 이 우주만물의 심판자가 되시는 분의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시면 만왕의 왕의 왕자님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를 높여 주는 호칭입니까
최고의 호칭이 형제라는 호칭입니다.
전통상 우리가 장로님 집사님하고 부르지만 그 뜻을 안다면 형제님 하고 부르는 것이 참 좋은 호칭이 됩니다.
이런 의미를 알고 이단들이 교회에서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호칭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들이 이단이 아니고 그 의미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형제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때 진정으로 서로를 높여 주고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로는 주인 아드님 왕자님 공주님 하고 부르면서 아무렇게나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는 서로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특별한 관계요 정말 소중한 신분을 가진 자들이며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세상이.
형제들과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호칭이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라고 할 때의 이 세상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악한 자에게 소속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이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 다 악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의 세력이 이 세상을 많이 장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속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에게 소속을 시키고 악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 지옥으로 가게 만듭니다. 
그 사탄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 혹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악한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악할 뿐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교회의 교리들도 완전하게 몰랐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온지도 오래되지 않았고 목사님들도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런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성탄절 준비를 하면서 이런 노래를 배웠습니다.
"나는 세상에 유명한 음악가이에요 
익숙한 손으로 피아노를 칠 때에 티디팅딩딩 티디팅딩딩...."
우리 목사님이 이 노래를 듣고 화를 내면서 못 부르게 했습니다.
세상이라니 너희들이 이 악한 세상의 음악가란 말이냐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유명한 음악가"에서 그 "세상"이라는 말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이 얼른 가사를 고쳤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유명한 음악가이에요....."

본문 말씀에서의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에 의해서 통제를 받는 체제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도 못합니다.
악한 사탄에게 속해서 그들에게만 배우고 그들의 말만 듣고 살기 때문에 악한 마음을 가지고도 악한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3.너희를 미워하거든.
악한 세력에 속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미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들 편이 아니고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을 하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면 우리만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도 세상에게 미움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만한 일을 하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들처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면 우리를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속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면 우리가 화가 납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고 자기들보고 돈을 달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고 자기들에게 손해를 끼쳤습니까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산다는데 왜 미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자기들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심대로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처럼 살면 지옥 간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만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만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때 우리끼리는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형제끼리는 서로 하나가 되어 서로 위로를 하고 격려를 해야 합니다.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억울한데 교회에서 성도들에게까지 미움을 받는다면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여러분의 식구들이 세상에 나가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너무나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주어야 합니다.
밖에서 힘들게 전쟁을 치루고 왔는데 집에 와서 작은 일로 이러니저러니 잔소리를 하면 참 힘이 드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어른이라고 해서 성도들에게 이런 저런 잘못을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의 미움을 받으면서 이렇게 교회에 속해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물론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말씀들을 하시겠지만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도 나쁘게 말을 하면 안됩니다.

사실 우리가 서로를 비평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하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려야 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잘 보면 모든 것이 헛점투성입니다. 

나이가 들면 눈을 잘 보이지 않게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심해집니다.
다른 기능은 다 감소해도 말하는 기능은 살아납니다
보는 것마다 보고 좋은 소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듣는 사람은 잔소리이지만 말하는 사람은 구구절절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 눈을 살짝 가리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세밀하게 보고 말하려고 하지말고 눈을 지긋이 감으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예쁘게 보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미워 보입니다.
우리끼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너무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4.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는 사탄의 자녀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형제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종들을 "이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자기들처럼 악한자 편이 아니고 사탄 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저들은 우리를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할 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미워하지 말라고 왜 미워하느냐고 당당하게 따지라고 했습니까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는 말은 우리말 번역에서 좀 약하게 번역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놀라지 말라"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말라"라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진짜로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적같은 일이고 놀랄 만한 일입니다. 
우리가 착하게 산다고 바르게 산다고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산다고 우리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될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서울의 모교회에서 아프카니스탄에 봉사하러 가서 납치를 당해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다행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다 무사하게 귀환을 해서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서 말이 많고 또 우리 교회들이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선교하러 갔으면서 봉사하러 갔다고 해서 욕을 먹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볼 때 선교나 봉사나 같은 말로 씁니다
왜 봉사합니까 우리가 자기들에게 빚진 것이 있어서 우리가 그 일을 안 하면 불이익이 있어서 그렇게 합니까
선교하려고 봉사한다는 것은 우리 기본 정신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얍삽하게 봉사하는 척하고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서 봉사를 합니다. 
다만 그 사랑의 출처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을 알고 그 사랑을 받는 길이 인생의 참된 길이요 구원을 받는 길임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러 갔습니까
그들을 속이러 갔습니까
그들에게 무엇을 빼앗으러 갔습니까
목숨을 걸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나누려고 한 것이 무엇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까.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도 없이 그저 자기 배나 채우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그런 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고 욕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상한 일이 있어도 그렇게 놀라운 일이 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희교회 복지회 이름을 율로게오라고 지은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좀 잘 알려진 말이나 말하기 좋은 이름으로 고치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 뜻은 율로게오가 참 좋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이 진짜 참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인생의 참된 의미이고 참된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할 때 
이렇게 바른 길을 갈 때 
이 세상 사람들이 미워하고 방해를 하고 욕을 해도 거기 마음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꿋꿋하게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을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형제들입니다.
우리의 지위가 너무나 위대하고 거룩한 자리이기 때문에 이런 지위를 갖지 못하고 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상하게 여길 일이거나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 안에서 한 형제된 우리 성도들을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형제자매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