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0. 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92)
본문 : 엡 5:18
제목 :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오늘 아침에 여러분에게 퀴즈를 하나 내고 시작하겠습니다.
다음에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맞춰 보는 것입니다. 
나는 역사상 최대의 범죄자다. 
나는 세계의 모든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인명을 살해했다. 
나는 수백만의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나는 야망에 넘치는 젊은이들을 소망이 없는 기생 동물로 변태 시켰다. 
나는 슬기로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었고, 바보로 어리석은 추태를 부리게 했다.
버림받은 아내가 나를 알고 굶주린 어린아이들도 나를 안다. 
나는 이미 수백만을 죽였고 앞으로 더 많이 죽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 맞춰라! 

여기 말하는 내가 누구이겠습니까
예, 술이라는 것입니다.
기브슨'이라는 사람은 '내가 누군지 알아 맞추어 보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의 내용입니다.

술처럼 우리의 육신건강이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앞의 질문처럼 정말로 술이 우리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제일 큰 악역을 담당하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술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렇게 몸에 좋지 않은 술을 만들어서 팔도록 허가를 해 주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담배도 그렇게 몸에 해롭다고 하는데 이 담배는 아예 정부에서 만들어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20년에 헌법을 개정해서 전국에 술을 만들거나 운반하거나 수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은 못하게 하면 더 하는 버릇이 있지 않습니까 
깡패들이 그 기회를 이용해서 술을 밀조하고 밀수입하고 도시에는 무허가 술집들이 판을 치고 오히려 더 무법천지가 되어서 1933년 13년 만에 금주법을 폐기했다는 것입니다.
술은 참 안 좋은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술을 약으로 이용하라고 하기도 하고 잔치에 꼭 필요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을 금함에 있어서도 "술 취하지 말라",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딤전 3:8)",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디도서 2: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딤전 3:3)라고 하면서 술 자체를 금하는 것보다는 술에 취하고, 인이 박이고, 술의 종이 되고, 술을 즐기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비록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고 해서 성도가 되었지만 그들이 성도가 되기 전에 마셨던 술을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과거처럼 술에 취하여 사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더 적극적으로는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말하면서 별로 인식이 좋지 않는 술과 비교해서 말을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 술에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함 사이에는 유사한 것이 있으면서 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술 취함과 성령충만함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면서 본문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1.술 취함과 성령 충만의 유사점
오해하시지 않기 위해서 여기 유사점이라는 것은 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느낄 때 비슷하게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실 때 일어난 현상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아서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했는데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다 자기나라 말로 알아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조롱을 하면서 "저들이 새 술이 취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해서 방언하는 것이 마치 술이 취해서 흥얼거리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모습이 어떻게 보면 꼭 술에 취한 사람 같더라는 것입니다.

1)제정신이 아닌 것이 비슷해 보입니다.
술을 마시고 취하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술이 신경을 마비시켜서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면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그 다음에는 술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게 되면 절제하지 못하고 만취될 때까지 마시는 것은 술이 신경을 마비시켜서 제 정신으로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도 나중에 다른 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일단은 내 생각이 아닌 성령님의 영향을 받아서 내 뜻 대로가 아닌 성령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기 때문에 수준은 다르지만 자기의 정신 자기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2)용기가 생기는 것이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는 매우 순한데 술만 마시면 아주 용감한 사람으로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을 안 마셨을 때는 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는데 술만 마시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탈일 정도입니다.

할말이 있는데 용기가 나지 않을 때 꼭 술을 한잔 마시고 갑니다.
술을 한잔 마셔야만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용기가 생기고 할말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충만을 받기 전에는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셨을 때 아무도 나서서 제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이후 성령을 받고 충만한 상태가 되니까 어디서 그런 담대함과 용기가 나왔는지 아주 용감하게 잡혀 가고 감옥에 가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던 것을 봅니다.

3)기쁨을 누리는 것이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울적할 때 기분전환을 위해서 술을 마십니다.
술이 한잔 들어가면 슬프던 마음도 좀 사라지고 바보처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도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중에는 "희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즉 성령충만함의 결과는 우리 마음에 참된 기쁨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임과 그 은혜로 받은 우리의 변화된 신분과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그 영광스러운 날들을 생각나게 하고 믿게 하심으로 우리는 참된 기쁨을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기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2.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의 차이점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함과의 사이에 있는 유사점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그 유사점은 비슷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 같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완전히 현저하게 다른 모습이 있기 때문에 술 취함을 버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방탕함과 절제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그 술 취함이 방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본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방탕이란 '방종' 혹은 '돈과 육욕의 무절제한 낭비'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방탕이라는 말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보고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해 버렸다고 했습니다.

방탕은 허랑 방탕과 같은 말입니다.
앞 뒤 가리지 않고 무엇이 선한지 악한지 가리지 않고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하는 것이 술 취함의 결과 즉 허랑 방탕입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왜 위험하게 차를 몰고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위험한 음주운전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술 취했으면 차 놔두고 가던지 대리운전사를 쓰든지 하면 될 것인데 꼭 자기차를 몰고 가려고 합니다.
술이 취했으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제 정신이 아니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생각없이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또 하나의 열매는 "절제"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은 허랑방탕함과는 오히려 반대로 그런 허랑 방탕한 생각을 절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남의 간섭 받지 않고 남에게 신경 쓰지 않고 나만 좋으면 되고 아무 일이나 거침없이 해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그런 허랑방탕한 생각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에 절제가 있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절제를 하지 못하면 나쁜 것이 됩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 몸에 좋은 것을 먹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절제함이 있고 적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좋지 않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2)마비와 각성
술 취함이나 성령 충만함은 각각 우리의 신경계통을 자극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술은 우리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성령님은 우리의 신경을 각성시킵니다. 

술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우리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킨다는 것입니다.
중추신경은 사람들에게 지혜력, 이해력, 판단력, 균형을 잡는 일, 모든 일을 가늠하는 일을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중추신경이 우리의 몸을 최적의 상태 최선의 상태에서 일하도록 해 줍니다.
술은 이러한 중추신경을 마비시켜버림으로 지혜나 이해나 판단력이 마비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중추신경과 반대되는 말로 말초신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추신경이 고등한 것이라고 하면 말초신경은 하등한 것입니다.
중추신경은 건전한 판단과 지혜를 조정한다면 말초신경은 동물적인 감각 육체적인 욕망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술은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행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가 각성하도록 해 주십니다.
깨어 정신을 차리게 하고 깨달아 알게 하고 지혜를 얻게 하고 바른 판단력을 가지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모습을 되찾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3)비겁과 용기
술은 얌전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어서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말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용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겁함입니다.
자기의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자신감 있게 용기 있게 제 정신으로 바르게 말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술의 힘을 빌려 횡설수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우리에게 참된 용기를 줍니다.
참된 힘과 능력을 주셔서 자신감 있게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을 마치 술의 힘을 빌려서 사는 사람처럼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만 의지하여 무엇을 하려는 어린아이처럼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은 나는 비겁하게 숨어 있고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해 주시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고 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시고 그래서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힘 있게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비된 정신을 각성시키셔서 용기 있는 힘 있는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4)참된 기쁨과 거짓 기쁨
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순간적으로 모든 일들을 잊게 하고 그래서 순간 기쁨을 느끼게 하지만 깨고 나면 다시 우울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참된 기쁨입니다.
진리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변화된 신분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에 관하여 알게 하심으로 언제나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억울한 일을 당하고, 슬픈 일을 당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였다고 하더라도 웃을 수 있는 참된 기쁨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가 뭐라고 하던지 우리의 형편이 어떠한 처지가 되던지 상관이 없는 참된 기쁨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입니다. 


3.성령 충만한 삶을 살라
오늘 본문의 이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는 것 때문에 참 많은 오해들이 있습니다.

1)성령을 받는 것과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는 것과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도 다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제가 믿음이라는 말을 설명하면서 두 가지로 생각을 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하나는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만 내가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일이나 성령충만을 받는 일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 믿음 생활을 하듯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한 분이신데 그냥 받는 것이 다르고 충만함을 받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이 신비한 기적을 바라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서 만든 말장난에 불과한 것입니다.

2)또 성령을 받는 것이나 충만을 받는 방법에 대한 오해도 있습니다.
받는 것이 주는 사람이 주가 되는 것인지 받는 사람이 주가 되는 것인지를 조금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을 받는 것은 우리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택한 백성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찾아오시는 성령님을 나는 수동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내게 오시지 않는 성령님을 모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뭐 한가하시다고 인간의 말을 듣고 오시라고 하면 오시고 오지지 말라고 하면 돌아가시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성령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는 우리가 뭐라고 해도 반드시 오십니다 거부해도 불가항력적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미 저와 여러분은 성령을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지 우리 마음에는 이미 성령님께서 오셔서 좌정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그 성령님을 느끼고 의지하고 사느냐 그렇지 않고 무시하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을 알고 느끼고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서 그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말씀의 깨달음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3)성령 충만한 삶을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사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정신없이 중얼거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중얼거리고 이리저리 넘어지고 입신을 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되고 신비한 기적이 일어나고 하는 것을 성령충만이라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을 바르게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오는 현상입니다.(성령 충만함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말하는지 다음 시간에 한번 더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을 세가지로 구별을 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을 무책임하게 허랑방탕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에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능력에 한계가 있고 지식에 한계가 있고 틈만 있으면 죄악으로 달려가는 그 알량한 자신만을 믿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내에 있으면서도 성령님을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면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에 의지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각성과 절제로 참된 지혜자가 되시고 참된 용기를 가지고 참된 기쁨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