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0. 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94)
본문 : 엡 5:19
제목 :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소유하고 믿음생활을 한 사람과 믿음이 없이 아무렇게나 산 사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그 당첨금을 받기 전에 며칠동안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까요
그 복권이 가짜가 아니고 진짜인가 그 번호가 확실히 맞는가를 자꾸 확인해 보고 싶을 것이고 그 복권이 지금 내 수중에 잘 보관되어 있는가를 수시로 확인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을 그깟 로또복권과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믿음에 관해서 별로 확인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 해 보지도 않는 것 같고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도 별로 확인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회 내에 있는 많은 교인들이 어렸을 때 배웠던 간단한 성경지식만으로 또 그 때 알고 생활해 왔던 몇몇 경험만으로 만족해 하면서 지냅니다.
새로운 성경 지식과 더 깊은 의미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옛날 그대로 타성에 젖어서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바른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더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지 다시 점검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신앙고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그 신앙고백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끔은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바른 것인지 여러분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지 점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를 설명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된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표현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표현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장 쉽게 구별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 중에서도 공적인 예배에 잘 참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는 어느 곳에서도 드릴 수 있습니다.
집에서도 드릴 수 있고 사업장에서도 드릴 수 있고 산이나 들이나 어디에서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언제나 드릴 수 있습니다.
주일이나 평일이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어느 때에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여러 성도들이 함께 시간과 장소를 약속을 하고 드리는 공적 예배가 중요합니다.
공적인 예배는 지금 이 시간 교회에서 성도와 함께 드리는 이 주일예배가 가장 중요한 예배입니다.
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가장 먼저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이 예배에 참석해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것이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배에 몸은 참석을 했지만 마음이 딴데 가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배에 참석을 했지만 그 예배의 의미를 모르고 앉아 있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배의 요소 중에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찬송입니다.
찬송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찬송을 함에 있어서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찬송을 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성에 젖어서 아무 의미도 모르고 형식적으로 찬송을 부릅니다.
가사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거기 감정도 느낌도 없이 그냥 입만 달싹거리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찬송 모습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바르게 찬송을 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찬송의 성공이 예배의 성공이요 예배의 성공이 신앙생활의 성공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습니다.
예배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찬송이라고 했는데 그 찬송은 우리 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송함에 있어서 "노래하며 찬송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노래와 찬송을 확실하게 구별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노래하며"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도(αδω)라는 말도 노래한다는 뜻이고
"찬송하라"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살로(ψαλλω)라는 말도 노래하라 찬송하라 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찬송하라는 말로 번역된 "프살로"라는 말의 어원이 "악기를 연주하다"라는 말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아마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것이 찬송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드림에 있어서 때로는 목소리로만 찬송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악기가 없었을 때나 악기가 있어도 마음대로 연주할 수 없었을 때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기가 많이 있고 마음대로 연주를 할 수 있을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악기들을 동원해서 화려하게 찬송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든지 악기를 동원을해서 찬송을 하든지 주님께 아름다운 노래로 영광을 돌려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1.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본문 말씀에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했는데 그 노래와 찬송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도 뚜렷하게 구별하기가 곤란한 것들입니다.
시도 찬송이고 찬미도 찬송이고 신령한 노래도 찬송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꼭 어떤 것만을 가지고 찬송을 하라 라는 것보다는 그것이 시가 되었든지 찬미가 되었든지 신령한 노래가 되었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면 된다는 말씀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꼭 구분을 한다면 약간의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는 시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노래를 말합니다.
시편을 보시면 많은 부분들이 어떤 악기에 어떤 노래 형태에 맞춘 노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편을 노래로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편을 노래로 부를 때 그 노래는 어떤 노래였을까요
아마도 멜로디만 가지고 부른 노래였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옛날 노래도 그랬습니다.
"청산리 백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옛날에 우리 할머니 교회에 가서 찬송을 하면 무슨 찬송이나 곡이 똑같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저 뵈는 천국 집 날마다 가까와..."

아주 옛날에는 교회에서 찬송을 부를 때 시편으로 된 노래를 그것도 멜로디만으로 불렀습니다.
그것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그렇게 불러왔습니다. 

찬미는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노래를 말합니다.
"찬미는 초대 교회에서는 당시에 초대 교회 내에서 작성되기 시작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영광송(doxology)을 가리킨다"라고 주석을 합니다.
우리가 가진 찬송가에 1장에 있는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 그 영광송입니다.

넓게는 찬송가에 있는 것과 같은 노래들을 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가에 있는 노래들은 대부분 합창단이 부를 수 있도록 4부로 화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자분들이 부르는 높은 음 소프라노 그리고 여자분들의 낮은 음 엘토 남자들이 부르는 높은 음 테너 그리고 남자들이 부르는 낮은 음 베이스 이렇게 사부 화음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찬송가는 회중 음악이라기보다는 합창단 같은 전문인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실 노래를 참 잘 부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찬송가만 부르면 돼지 멱따는 소리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 내가 마이크 잡고 유행가를 부르면 하루종일 불러도 재미기 있고 듣는 사람도 오빠 오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찬송가는 왜 이렇게 못 부를까 혹시 내가 목사체질이 아니고 세속노래나 부르는 저질인가 하고 고민도 좀 했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없을 때 반주기를 틀어 놓고 연습을 해 보았습니다.
찬송가를 유행가처럼 못있게 재미있게 부를 수 없을까라고 혼자 연구를 한 것입니다.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궁금하시죠
음을 대여섯 음을 낮추니까 유행가처럼 불러졌습니다.
제가 목소리는 가늘어도 저음대가 나오면 매력이 있는데 세상에 여자들 그것도 높은 소리내는 여자들이 부르는 음역을 가지고 부르려고 하니까 힘이 들고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났던 것입니다. 

대부분 성도님들이 교회에 와서 찬송을 잘 부르지 못하는 것은 음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음도 높고 유행도 지난 옛날곡조가지고 부르려고 하니까 힘도 들고 하기도 싫고 형식적으로 입만 들썩들썩 하는 것입니다.

군대에 가 보신 분은 잘 알겠지만 군가를 부르면 큰소리로 악을 쓰면서 부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은 노래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흥에 겨워서 춤을 추며 재미있게 부르는 것이 노래의 특징입니다. 
억지로 재미없게 힘들게 부르는 것은 노래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런 의미도 모르고 무조건 찬송가니까 억지로라도 불러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억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찬송을 노래로 부르지 못하고 힘들어 하거나 아예 부르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신령한 노래는 세속적인 노래와는 달리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만든 노래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있는 것이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이기에 그 형식에 관계없이 부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흑인들이 부르는 노래는 참 감동적입니다.
흑인영가로 된 찬송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들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적인 노래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의 노래의 특징은 멜로디나 화음보다는 리듬을 주로 하는 노래입니다.
타악기 같은 것에 맞추어서 춤을 추며 노래하는 모습은 참 열광적입니다.
멜로디와 별 상관없이 화음에 신경 쓰지 않고 리듬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면 정말로 진지하게 온 몸으로 찬송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노래라는 소중한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쁨 우리의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키며 살도록 선물로 주셨습니다.
특히 그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도구로 사용하도록 주셨습니다. 

그 노래가 멜로디만을 주로 하는 동양 음악이든지 화음을 맞춘 서양음악이든지 리듬으로 하는 아프리카 음악이든지 그 장르와 상관이 없이 어떠한 것이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찬송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 노래가 좀더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 뜨거운 감정을 가지게 하고 기쁘게 노래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지 않겠는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 이상 시편이어야만 한다 화음을 넣어서 부르는 합창곡이어야 한다 이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기쁨으로 진심으로 노래할 수 있는 참된 찬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서로 화답하며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했는데 "서로 화답하며"하라고 했습니다.
화답(和答)이란 "시(詩)나 노래에 응하여 대답함."이라고 했습니다.
원어에서는 서로 서로에게 말을 하면서 노래하라는 뜻으로 사용을 했습니다.

우리가 성시교독 시간에 주로 시편을 저와 여러분이 교독을 합니다.
찬송도 이와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부르는 노래나 찬송은 술 취한 사람들이 술을 먹고 정신이 없이 부르는 것처럼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은 그 노래의 의미도 모르고 그냥 정신없이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나 찬송은 그 의미를 분명히 알고 서로에게 그 진리를 이야기하면서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들 어렸을 때는 팝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가사는 어떻게 해서 따라는 부르지만 그 뜻은 잘 몰랐습니다.
그냥 팝송을 부르면 유식해 보이니까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면서도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아무런 생각없이 뜻도 모르고 부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을 노래하면서도 마음에 별 느낌이 없이 그냥 부르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기쁜 내용인지 슬픈 내용인지 전혀 관심이 없이 그냥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부르는 노래나 찬송이 그렇게 내용을 모르고 내용과 상관이 없이 불려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그 내용을 알고 서로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내용에 서로 동의하고 그 내용으로 서로 한마음이 되어서 부르는 노래가 서로 화답하며 주께 드리는 노래요 찬송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드리는 노래나 찬송은 "우리의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외형적인 것보다는 우리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고 보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보기에는 그 음악이 아름답고 듣기에 좋고 그 부르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면 되겠지만 주님의 관점은 그것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장을 갖추고 웃는 얼굴을 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여러 가지 악기를 동원하는 것은 거기에 진정한 우리의 마음을 담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입니까
좋은 음악으로 새로운 노래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동원해서 멋있게 부를 때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오고 정말 기쁨으로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준비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을 노래에 담아 부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함께 하지 않는 노래나 찬송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옛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교문화에 젖어서 살았습니다.
유교문화는 양반문화입니다.
양반은 자기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주 교양이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뻐도 그 감정을 감춥니다.
슬퍼도 슬픈 체를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달려가지 않고 비가와도 피하려고 빨리 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익숙하지를 못합니다.
점잖게 감정을 감추고 노래만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런 유교문화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이방 종교문화를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천진 난만하게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면서 그 찬송에 마음을 감정을 담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찬송을 부르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런 잘못된 일을 고쳐 나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주의라고 생각을 합니다.
전통이니 관습이니 해서 고집만 부릴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노래하고 찬송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된 가장 확실한 증거 중에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찬송을 아직도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입술로만 부르고 있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음악의 장르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의 마음을 담고 감정을 담고 성령님이 충만함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노래요 찬송일 것입니다.

시로 찬미로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참된 고백으로 마음껏 노래하며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악기를 동원하고 춤을 추며 기쁘게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