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1.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97)
본문 : 엡 5:22-24
제목 : 아내들이여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우리는 근세에 들어와서 자유경쟁의 체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경쟁을 하여 성공하여 잘 살수 있는 사회가 참 좋은 자유의 나라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과거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다들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러나 자유의 시대가 오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을 하고 나름대로 부자도 되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도한 경쟁 사회에서 실패자가 생기고 낙오자가 생기게 되어서 반대로 못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자유경쟁 체제는 잘 사는 사람은 너무나 잘 살게 만들고 못 사는 사람은 너무나 못사는 사회가 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번 깊어진 골은 더욱 깊어져서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처럼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유경쟁사회보다는 균등분배의 시대를 요구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보다는 공산 사회주의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공산 사회주의에 대항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을 오히려 반역자로 모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비록 공산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평등한 사회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갖는 사회를 원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사회나 교회나 어디를 가든지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다 모두가 똑 같은 권리를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그런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단어가 말씀의 주제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복종"이라는 단어입니다.
평들을 부르짖고 있는 세상에 복종이라는 말은 시대에 역행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것도 요즘 한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여자분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시오' 라고 하는 말은 과히 충격적으로 들리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6장 9절 말씀까지에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상전과 종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관계 중에 약자라고 볼 수 있는 편 즉 아내와 자녀와 종들에게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복종(혹은 순종)이라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종들은 그 상전에게 순종을 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자 편에 강한 자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만은 약한 자 편에 서실 줄 알았는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만 바르게 이해를 하고 실천을 한다면 적어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아내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목을 "아내들이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라는 말씀이 오늘 설교의 요지입니다.

여자분들은 기분 나쁘다는 감정을 먼저 가지지 마시고 본문 말씀의 원리를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참된 평안과 행복을 주시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1.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본문 22절 말씀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라고 했습니다.

모든 아내들은 각각 자기 남편에게 복종을 하라고 했는데 그 방법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 복종하듯이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서 배운 말씀에 우리 성도들은 피차에 복종을 해야 되는데 그 원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듯이 아내들이 남편의 말에 복종하는 것도 그와 같은 원리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무나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복종합니까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아무나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믿지 못하고 업신여기고 비방하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왜 이렇게 주님을 믿고 따르며 그 말씀에 복종하면서 사십니까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말씀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알고 믿기 때문에 그 좋으신 우리 주님께 복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그 말씀에 복종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그것이 억울하다거나 복종은 말도 안되니 서로 평등한 관계로 살자거나 라고 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복종하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내된 자들이 그의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도 그런 원리에서 복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여자들이 모든 남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모든 여자들이 모든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했다면 이것은 성차별이고 남녀평등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내된 자가 그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남편 자기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를 선택했지만 부부간에는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선택받은 사람이며 아주 특별한 관계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 특별한 관계에 있지 않는 사람에게 복종하라고 한다면 아니꼽고 인간차별이고 하겠지만 부부 사이에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당연히 즐거운 마음으로 복종하듯이 아내된 자들도 특별한 선택을 받고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로서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차별이나 굴욕이나 수치가 아닌 정당하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말씀에 복종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주님을 떠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특별한 혜택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그의 아내된 자로서 남편의 말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의 아내의 자리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내된 자는 사랑해주는 남편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부부 사이의 아주 당연한 삶의 기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됨이라
본문 23절 말씀에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머리'라는 말의 뜻은 '지도자'나 '통치자'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이 아내에 대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분명하게 구별을 하셨습니다.
물론 남자는 사람이고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거나 남자만 특별히 대우를 하시고 여자는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여기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 같은 인간으로서 사랑을 하시고 다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다 같이 구원을 받아 영생을 갖게 하시는 데는 차별을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 각각의 역할에는 구별을 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 순서에서 구별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님이나 동생이 다 같은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두 사람을 같이 사랑하는 데는 구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난 형은 연장자인 형으로 구별을 둡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구별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먼저 만드셨고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셔서 돕는 배필인 여자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 순서에 의해서 순서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나중 나온 여자가 먼저 나온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대장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장이라고 하면 괜히 기분이 나쁘고 뒤에 서서 그 일을 함께 돕는 사람은 졸병이라고 해서 기분 나빠 하고 그런 일은 하기 싫어합니다.

특별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장이 되기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용 꼬리보다 뱀 대가리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사님들 모이는 모임에 가보면 목사님들이 다 대장 되기를 좋아하고 뒤에 서기를 싫어하니까 직책을 모두 회장으로 줍니다
대표회장 상임회장 공동회장...모두다 회장입니다.

그런데 대장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두가 대장이 될 수 없습니다.
부득불 어떤 모임이든지 대장을 한 명 정하고 그가 리더로서 역할을 하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단체가 원활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도 부득불 대장을 한 명 정했는데 매일 서로 대장하려고 싸우면 안되니까 하나님께서 질서의 법칙에 의해서 남편을 대장 즉 머리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그 남편을 돕는 배필로 정해 주신 것입니다.

앞에 서서 일을 해 보시면 대장처럼 힘든 직책도 없습니다.
모든 일을 경정하고 추진해 나가고 책임을 지고 하는 일은 참 피곤합니다.
남편이 그런 피곤한 일을 하기 때문에 아내는 돕는 배필로 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병중에 골치 아픈 병이 중풍입니다.
사지가 혹은 반신이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머리가 생각하면 손발이 그렇게 움직여 주어야 하는데 손발이 말을 듣지 않으면 누워서 대소변 받아 주어야 하고 참 힘이 드는 병입니다.

아내가 머리되는 남편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가정은 이렇게 중풍병자처럼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불복하여서 똑똑한 척 하고 잘난 척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3.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해야 될 또 하나의 이유를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그가 친히 몸의 구주가 되신다는 말은 첫째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와 같이 남편이 아내의 구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교회의 구주가 되신다는 뜻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그 구주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교회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주가 되시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구주라고 하셨을 때는 그 의미와 조금 다른 뜻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구주라는 것은 보호자 양육자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 즉 성도들을 구원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구원하신 그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양육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몸 된 아내의 구주가 된다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별개가 아닌 한 몸입니다
남편은 한 몸이 되는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보호하고 양육하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철저하게 아내와 그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또 보호하기 위해서 평생동안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해 주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져서 남편이나 아내다 다 같이 땀을 흘리며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가정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아내나 동등하게 가정에서 일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집에서 하루종일 놀던 아내가 가정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땀 흘려 일하며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당신이나 그 보호 아래서 잘 사는 내가 동등해야 된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공평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즘은 어디에서나 이런 동등함이 너무 강조가 되어서 오히려 서로가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회사의 사장들이 인건비를 작게 주고 착취하여서 자기만 부자가 되고 직원들은 고생만 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모를 하고 사주들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일에 제동을 걸게 되었습니다.

사장이나 사원이나 동등하다 동등하게 살자 라고 외치는 말은 참 좋은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다가 보니까 사장들이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고 고용을 줄이고 자동화 공장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힘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고 하지 않고 명령에 복종할 테니까 제발 일만 좀 하게 해 달라고 사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도 여성 상위시대다 영성의 인권신장이다 해서 남편이나 아내나 동등하다라고 주장을 하고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결과 남편들은 힘을 잃게 되고 일할 의욕을 잃게 되고 함께 동등하게 가난해지고 만 것입니다.

칭찬해 주고 박수 쳐주고 존경해 주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무시하고 같잖게 여기고 말대꾸나 하고 슬슬 기어오르기만 한다면 남편이 가정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더 이상 희생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은 나보다 먼저다 남편은 나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희생한다라고 생각하면 나를 위해 사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4.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본문 24절에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범사라고 하는 말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해석을 해야 하는 말입니다.
아내된 자라고 해서 무조건 남편의 말에 복종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남편이 아내에게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것을 강요한다면 거기에 복종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즉 법사의 범위가 신앙의 양심을 저해하는 범위까지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양심을 어기는 일이 아닌 모든 일에는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지 말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때로는 여러 가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부부간에 서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간에 서로 의견의 차이가 있어서 한 가지로 통일이 되지 않을 때 그것이 신앙의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면 남편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끝까지 자기 주장을 내 세우다가 보면 결론은 뻔합니다 
처음에는 부부싸움이고 나중에는 제 갈 길로 가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정하는 일들이 다 옳지는 않습니다.
지금인 이 길이 좋아 보이고 반드시 이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이 되지만 나중에 보면 그 길이 틀린 길이고 후회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내일 일은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마음 맞춰서 같이 가라는 것입니다.
대장인 남편이 가자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한 마음이 되어서 같이 가면 잘 못 되어도 힘이 덜 들고 원망하고 싸우면서 가면 좋은 길도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위반하는 일이 아니면 신앙양심을 어기는 일이 아니면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아내된 자 여러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것처럼 하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복종은 아내된 자가 자기 남편에게만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복종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에 의한 것입니다.
복종은 나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보호하고 양육해 주는 남편에 대한 도리입니다.
범사에 즉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모든 일에 신앙양심에 저촉되지 않는 모든 일에 복종함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