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25. 광성교회 주일낮(성탄감사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
본문 : 마 18:32-35
제목 : 상처 이제 여기 다 버리고 갑시다 

요즘 텔레비전은 유선으로 연결이 되어서 많은 방송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리모콘이라는 것이 있어서 간단하게 채널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방송을 볼 수가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텔레비전을 보면서 마치 채널이 고정된 옛날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 같이 꼭 좋지 않는 프로그램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멜로물을 좋아해서 맨날 울고불고 짜고 싸우고 하는 그런 연속극이나 영화만 좋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 맞춰서 찾아가면서 그런 것만 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화를 내고 울고 하면서도 또 그것을 봅니다.

울고불고 화나게 하고 하는 그런 장면이 나오면 사정없이 채널을 바꿔 버리면 될 텐데 왜 거기 고정시키고 보고 또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대부분의 프로그램 속에 나오는 집이나 입은 옷이나 등장 인물들은 너무나 화려합니다.
나이 젊은 아이들도 사장으로 나오고 박사로 나오고 멋있는 차를 타고 다니고 집도 으리으리하게 생겼고 얼굴은 왜 그렇게들 다 잘생겼는지...

그런 화려한 장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까요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일까 왜 우리 남편을 저렇게 멋있게 살게 해 주지 못할까 왜 우리 아내는 저렇게 예쁘고 날씬하지 못할까 이런 불평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슬프게 하고 화가 나게 하고 불평 불만이 쌓이게 하는 텔레비전을 왜 보는지 그것도 그런 프로그램만 왜 찾아다니면서 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리모콘으로 사정없이 바꾸어 버릴 수도 있을 텐데 왜 거기에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을 삶에 있어서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마음만 조금 바꾸어 먹으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것 하나 할 줄 몰라서 늘 고통 속에 슬픔 속에 원망하면서 불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늘 과거의 불행한 일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자꾸 자꾸 기억하면서 슬퍼하고 고통을 당하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왜 나에게 일어났던 이해할 수 없는 불행한 일들만을 기억하면서 원망하며 사느냐는 것입니다.
왜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아직도 분노하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일에 얽매여 새로운 축복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금년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면서 특별히 성탄절 감사예배를 함께 드리면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중대한 제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설교제목대로 "상처 이제 여기에다 다 버리고 갑시다"라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한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치고 어느 한 사람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신의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왜 나 자신이 이렇게 못났을까
왜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상처를 줄까
왜 내가 살아가는 인생 길에 이렇게 험난한 일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살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신분 삶의 목적 삶의 방법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뜻 깊은 성탄절을 맞이해서 그런 바뀐 우리 신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을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성탄절을 맞이해서 여러분의 신생이 바뀌시기를 축원합니다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고 모든 것이 바뀌는 귀하고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죄악의 짐들을 버리고 갑시다.(탕감받은 자임을 기억하라) 
본문 32절 말씀에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빚진 자의 비유라는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1만 달란트를 빚졌다고 합니다.
1만 달란트가 오늘날 화폐가치로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노동자가 일당을 받아 그 돈을 모으려면 20만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고 하니까 그냥 하늘만큼 땅만큼 많은 엄청난 돈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것도 나라의 임금님에게 빚을 졌습니다.
사람에게 진 빚이면 배짱이라도 내밀고 도망이라도 다니면서 살겠지만 임금님에게 진 빚이라 안 갚고 떠먹을 수도 없고 도망을 다닐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도망 다니다가 뛰어야 벼룩이지 결국 잡혀 왔습니다.
임금님의 벼락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네 몸도 팔고 처자식도 팔고 모든 소유도 다 팔아서 얼른 빚을 갚으라는 임금님의 불호령같은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손을 비비면서 아 조금만 더 참아 주시면 제가 꼭 갚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임금님께서 그 사람을 보니까 불쌍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많은 빚을 지고 쫓겨 다니면서 사는 모습이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 탕감을 해 주어 버렸습니다.
그까짓 것 내가 그 돈 없어서 못 사는 사람도 아니니까 땡전 한푼도 안 갚아도 되도록 완전히 탕감을 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 기쁨 그 감격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이요 은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니까 이 종은 별로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큰 은혜를 받고도 별로 감사해 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가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을 진 동관 한 사람을 만났는데 
100 데나리온도 노동자가 석달 열흘을 일을 해야 버는 돈이니까 아주 작은 돈은 아니지만 일만달란트에 비하면 껌 하나 값도 안 되는 작은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일만달란트를 탕감 받았으면서 100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고발을 해서 감옥에 넣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못된 사람에게 임금님이 하시는 말씀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임금님이 그 소식을 듣고 그자를 다시 불러다가 호통을 칩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아주 못된 놈입니다.
그렇게 당해도 당연한 아주 고약한 놈입니다.
세상에 인간이라면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아주 못 돼도 아주 못된 아주 인간 이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사람이 바로 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께 엄청난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었고 우리 성도들은 그 빚을 다 탕감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엄청난 빚을 지고 산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지 빚은 죄라는 말과 같이 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고 그 은혜로 살고 있는데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산 것이 죄입니다.

그런 빚진 자인 우리에게 그런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것이 모든 빚의 탕감입니다. 모든 죄의 사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빚을 탕감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뜻 깊은 성탄절을 지내면서 아직도 내 하나님께 빚진 자였으며 그 빚을 깨끗하게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진정 성탄의 의미를 모르는 자입니다.

이사야서 53:5절에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우리의 상한 심령이 나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셨습니까
혹 왜 나는 이렇게 못났을까 왜 나는 성질이 이렇게 못됐을까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일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이 시간을 통해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완전히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빚 모든 죄악을 완전히 탕감받은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 속에는 엄청난 축복이 들어 있다는 것도 기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연히 탕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선택하셨고 우리의 지을 죄를 위해서 미리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게 하셨고 
그리고 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성령님께서 나에게 오셨고 진리를 깨닫게 하셨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고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천국으로 향해서 가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 자신의 자신감결여에서 오는 것이 많습니다.
저 자식이 나를 깔본다는 것입니다.
저 녀석이 나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있는 우리들은 남에게 무시나 당하고 사는 그런 시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모든 빚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영원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 영생복락을 누릴 사람입니다. 
그런 나를 감히 무시하거나 깔 볼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2.원망하는 마음들을 버리고 갑시다(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라)
본문 33,34절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께 탕감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 같이 우리도 우리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기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 길에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 보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도대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나쁜 짓을 나에게 하고 태연한 척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녀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떠납니까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라는 사람이 어떻게 한 몸과도 같은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느냐는 것입니다.

왜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형제자매들이 서로에게 함부로 대해서 상처를 주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왜 내 돈을 빌려 가서 안 주고 왜 나에게 은혜를 받고서도 감사하지 않고 왜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외면하고 왜 내가 외로울 때 함께 해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저처럼 세상을 많이 원망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할까
왜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그 흔한 학비한번 대주시지 못했을까
왜 우리 친척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왜 내 주변에는 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을까
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까
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을까...
이런 원망과 불평들을 하면서 많은 세월들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모릅니다.
나보다 못한 환경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하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좋은 젊은 시절을 원망과 불평만 하면서 산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요즘 보고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셨을까
왜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대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그 깊은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고 그 깊은 상처 때문에 결국은 친구도 없어지고 혼자 쓸쓸히 고통스럽게 산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컴퓨터처럼 파일을 하나 만들어서(보따리나 상자를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다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꼼꼼히 따져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 파일에 집어넣으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들의 이름도 그들에 대한 기억도 이 파일 속에 넣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파일 삭제를 해 버리고 휴지통도 들어가서 깨끗하게 비워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찾아 볼 수 없도록 없애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불쌍한 눈으로 동정의 눈으로 이해하는 눈으로 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같이 우리가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불쌍히 여기라는 것은 거지처럼 깔보고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리 인생은 다 서로가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잘 못을 저질렀을 때 이해하는 눈으로 그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죄도 짓고 때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도 하고 마는 연약한 인생들입니다.
그런 인생들을 완전하기를 기대하고 바라보면 늘 실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완전하지 못함을 선언하십시오

어설프게 완전한 사람 흉내내고 사는 것 참 힘이 드는 일입니다.
나도 다른 사람도 다 완전하지 못한 불쌍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오늘 이 뜻 깊은 성탄절에 우리의 모든 죄가 탕감을 받게 된 이 날에 서로에게 가졌던 원망하는 마음들을 다 버리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이해하고 동정해 줄줄 아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을 버리고 갑시다(탕감해줄 일들을 만들라)
본문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탕감을 받은 우리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용서를 취소하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그 은혜를 알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자로서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사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는 일 즉 다른 사람이 나에게 빚진 것을 탕감해 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용서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람들에게 잘 못한 것들은 이미 용서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사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고 더 나아가서 은혜를 베풀고 탕감해주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탕감을 해 주려고 하니까 평생 남에게 돈을 빌려 준 일이 있어야 탕감을 해 주지요...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탕감해 줄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삶을 살았더라는 것입니다.

저도 인생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산 사람은 아닙니다
몹시도 열심히 나부대면서 나름대로 산다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놓고 보니까 참 못 다한 일이 많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뭔가 좀 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뭔가 남에게 베푼 것이 있어야 탕감을 해 주지 않겠습니까

저희 교회가 작고 부족하지만 작은 일들 몇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터키에 선교사님 한 분도 파송을 했습니다.
사랑나눔 운동을 통하여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해서 아동복지 시설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한지 올해 10년이 되었습니다. 

토요일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사랑의 점심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평균 50분 정도 오시는데 이 일을 한지도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왜 힘들게 이런 일들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다고 전도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알아주는 일도 아닌데 왜 그런 고생을 하느냐고 그럽니다.

그 때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탕감해 줄 일 만들려고
그것 좀 해 주고 생색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은혜를 좀 베풀어야 중심으로 용서해 줄 일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좋은 일 선한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서 은혜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탕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뜻 깊은 성탄절이고 올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제가 오늘 아주 중요한 제안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상처들을 오늘 여기에 버리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탕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죄악의 짐들을 여기 버리시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도 여기에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만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들을 여기에 다 버리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도 여기에 다 버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다 용서하고 다 탕감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탕감해 주기 위해서 선한 일 좋은 일들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