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55)
본문 : 엡 4:2-3
제목 : 합당한 삶의 원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죄악된 세상에서 나아와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삶의 원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살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는 것이 삶의 원리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서로 용납해야 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서로 용납함
2절 말씀에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말에 "용납(容納)"이라는 말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이나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에서는 이 말을 "견디는 마음이나 참는 마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 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참고 견디면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부당한 대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해도 그것을 참고 받아들이는 것을 용납이라는 말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교회들을 살펴보면 서로 용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절실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교회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이방인들은 이방인들대로 그들이 섬기던 이방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용납하기가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 당시의 교회에는 노예들과 노예를 부리는 주인들이 함께 있었고 부자와 가난한 자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고국이 다르고 섬기던 신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지위가 다르고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고향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자란 환경이 다르고 처해 있는 처지가 각각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받아 드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배운 지식과 자기가 경험한 것들 자기가 보고자란 환경을 통해서 정해놓은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원칙과 모든 사람이 같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용납하지 못하고 정죄하려는 것이 사람들의 습성입니다.

그래서 그 원칙을 고수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세운 그 원칙을 따라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다투고 분열이 되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이 옳은 것 같기 때문에 그 싸움은 끝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용납이란 그런 자신이 세운 원칙을 버리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받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으로 우리의 주인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 드릴 때 예수님만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다 받아 드려야 진정한 영접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도 함께 영접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만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배척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잘났든지 못났든지 좋은 생각을 가졌든지 나쁜 생각을 가졌든지 나와는 너무 다른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서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나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참으로 훌륭한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밉고 싫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것은 아직 진리를 다 알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말에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을 보고 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아내가 가진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좋으면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좋아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가 미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서로를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여시고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저의 신앙과 목회관을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고백적인 글로 책을 한 권 써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제목을 생각했는데 그 제목을 미리 말씀을 드리면 "목사님 목사님 만나서 참 행복했습니다"라고 제목을 잡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미리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나 제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여러분 모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도록 목회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못된 목사 하나 만나서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고생만 실컷 했네 라고 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못된 남편 만나서 못된 아내 만나서 못된 부모 만나서 못된 자식 만나서 한평생 고생했네 라고 하면 얼마나 불행한 사람일까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품어 줌으로서 서로에게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보 당신 만나서 참 행복했소
아버지 아버지 만나서 난 참 행복하게 삽니다
자식아 너를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 주셔서 난 참 행복했다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 여러분 때문에 나는 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됨
3절 말씀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용납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받아 드리는 나 자신의 노력이라고 한다면 여기 하나됨은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이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조건 상대방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용납하라고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나를 쉽게 용납할 수 있도록 힘써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하면서 나는 내가 세운 원칙을 고수하면서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용납하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용납하여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됨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무조건 아무나 하나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 하나되라는 말씀을 가지고 교회일치 운동을 벌리고 있습니다.
서로 분열하고 싸우는 것 보다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벌리고 있는 이 일치 운동들은 참으로 위험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되라고 한다고 진리가 다른 이단들과 하나가 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하나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이 일치 운동이 아주 나쁜 사탄의 도구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치 운동에 있어서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개개인이 가진 고집들을 내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됨의 원칙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에 명시된 것만 몇 가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1)사랑으로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사랑으로 서로 하나가 되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다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정신에 입각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우리가 부름을 받은 자로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원칙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오래 참는 것,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 겸손함, 성내지 아니하면서도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온유함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용납하는 정신이 여기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2)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는 또 하나의 원칙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의 제물이 되게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고 화해를 시키고 하나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 희생적인 사랑의 정신으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하나가 됨에 있어서 이런 자기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주장 다 내세우고 내 이익 다 챙기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다하면서 서로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성령님의 능력으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가 되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성령님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역사는 말씀을 통한 역사입니다.
제자들에게 특별한 사람들에게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셔서 성경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그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게 하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하라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오늘날의 잘못된 일치운동은 진리와 비진리가 하나가 되게하는 운동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우상종교가 하나되게 하는 운동입니다.
거기에다가 이 하나되게 하심을 같다가 붙이는 것은 참 어리석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거리입니다.

우리도 신을 믿고 불교도 신을 믿고 이슬람도 신을 믿으니까 같은 종교인으로 서로 힘을 합하여 잘 해 봅시다 라고 하는 사람은 진짜 바보입니다.
성경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천치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우상숭배입니다. 
이방의 종교들은 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것이 아니라 대적하고 물리쳐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종교활동이 아닌 다른 분야라고 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잘난 척하고 중들하고 손잡고 희희낙락거리는 목사를 보거들랑 정신 나간 녀석 하나 있네 라고 욕을 해야 합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달았다고 해도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과 배척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라고 해서 다 같은 교회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나는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를 크게 우익과 좌익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우익과 좌익으로 나누어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익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좌익은 공산주의 사화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공산당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동포들이 공산당 치하에서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은 공산당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고 많은 북한의 성도들이 지하에서 엄청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공산당으로 몰려 고통을 당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마치 민주주의는 나쁘고 공산당이 좋은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교회를 없애 버리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저 공산주의를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도 우익과 좌익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좌익은 인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익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존재하며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좌익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도 믿지 않고 천국도 믿지 않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인간들끼리 서로 한 마음이 되어서 서로 돕고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어디에 서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멸망당할 죄악된 세상에 속해 있다면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로 함께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이방 종교에 속해 있다고 한다면 거기서 아무리 성공적인 종교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과 함께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간판으로 보고 들어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예수님도 믿지 않고 십자가의 보혈도 믿지 않고 천국도 믿지 않는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장담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은 분명하고 결국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참으로 감사하게도 저와 여러분은 우익 그것도 제일 오른편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알고 여기에 온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연히 왔지만 와서 알고 보니 우리가 있는 자라기 구원 받기에 가장 좋고 안전한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왕에 신앙생활 할 바에는 확실한 곳에 있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우익과 좌익의 중간지점에서 서성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당장 좌측으로 쏠려 갈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측 그것도 최고의 우측에 있기 때문에 그 곳까지 갈려면 한참 걸립니다.

성령으로 하나가 되라고 하시는 것은 이 우익끼리 하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의지하고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 이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판단할 능력을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 성도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 능력으로 하나가 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서 충만한 사람을 살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합당한 삶을 사는 원칙을 지난 시간과 오늘 두 시간에 걸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원칙을 마음에 두고 실천을 하심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에 참고 견디며 서로를 용납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 때에 사랑과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