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3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57)
본문 : 엡 4:5
제목 : 주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세상에 살아가면서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일 것입니다.
나보다 예쁜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쁘고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쁩니다. 나보다 잘나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 앞에서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모든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또 모든 사람과 한편이 되지 못하고 서로 갈라지고 서로 싸우고 다툴 때 인생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과 한편이 되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서글픈 것입니다. 자살을 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행복하다고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서로 동질감을 느낄 때일 것입니다.
우월하지도 않고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그런 세상에서 산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또 서로 다른 편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울 필요가 없는 그런 세상이라면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한편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에베소서 4장의 주제는 "영적연합"이라고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고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 앞에 서면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 없이 모두가 동일하다는 동질감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성령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그리고 성부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한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우리가 서로 같은 편이요 차별이 없는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주도 하나이요"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서로가 다 같은 차별이 없는 동등한 사람들이며 서로 나뉠 수 없는 한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발견하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오직 한 분이신 주님
오늘 본문 말씀에 "주도 하나이요"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이라고 할 때 두 가지의 의미로 쓰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부를 때도 이 주님이라는 말을 씁니다.
천지 만물을 장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 성자예수님을 부를 때도 이 주님이라는 호칭을 씁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님을 부를 때 이 주님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진정 하나님으로 믿고 부르는 호칭도 이 주님이라는 말로 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께 특별한 능력을 보고서부터 바로 주님이라고 호칭을 바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것은 게네사렛 호수에서였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시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선생이여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라고 하고 그물을 내렸는데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 무릎 앞에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생님이 아니라 주님이셨습니다.
이런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은 무슨 기술을 가진 선생님 정도가 아니라 자연만물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늘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후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서슴치 않고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이 되시는 것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예언하자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물러갔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라고 하셨을 때도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06:68)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록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주님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유일하신 하나님 그 주님 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들의 꿈에 주의 사자가 현몽을 하였습니다.
또 천사들이 나타나서 증거를 하기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02:11)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태몽을 꾸고 아이를 낳기도 합니다.
보통 방법이 아닌 특별한 방법으로 태어났다고 주장을 하는 아이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아닌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서 짐승을 사람으로 만들어서 아들을 낳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참 신이신 우리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이 이상하다고 해서 그분을 주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세상에도 이상한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100일을 금식을 해도 사는 사람도 있고 신비한 이적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저히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다 주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만이 하나님으로 이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주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주님
사도행전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사역자로서 유일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 한 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존경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을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은 참 존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엘리야도 선지자로서 소임을 다하고 죽기 않고 하늘로 올라가신 분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 가족을 살아 남게 했던 노아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참으로 부러운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서 가나안 당에서 자유민이 되어 살게 한 모세와 여호수아도 참 존경스러운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윗왕이나 솔로몬이나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 그리고 바울 같은 인물들도 존경을 받을 만한 훌륭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예수님이 구주가 되게하는 일에 부분적으로 쓰여졌을 뿐입니다.
석가모니 같은 사람도 어떤 의미에서는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공자 같은 사람도 우리같은 사람이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는 훌륭한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배우고 존경하고 따르는 일에 우리가 좋다 나쁘다라고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지도 않았고 그럴 자격도 없는 우리와 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불교나 유교같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참 편협하기 짝이 없는 옹졸한 사람들이라고 비웃습니다.
자기들은 우리 기독교를 인정하고 좋게 보는데 왜 당신들만 유독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당신들만 잘난 체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 우리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불교인이었고 유교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때는 진리를 알지 못해서 아 고행을 하고 선행을 하고 예의 범절을 지키고 모든 신들을 섬기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님을 알고 나서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알고 나서는 그런 종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종교들 가운데 우리 주님 같은 분이 없으며 우리 주님같은 일을 행한 사람이 없으며 우리를 죄에서 죽음에서 멸망에서 구원해준다는 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고 부활 승천하셨고 누구든지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믿는 사람은 그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게 되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이런 확실한 구원을 가진 종교는 이 세상에 우리 기독교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0:9절 말씀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이라도 이렇게 세밀하게 자세하게 구원에 대한 기록을 가진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만이 이 구원의 진리를 너무나 확실하게 너무나 이치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진리에 의해서 선포하고 있는 참된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만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언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우리 있을 곳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데리러 재림하실 유일한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그 주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받는 신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다 똑같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편이 나뉠 수 없는 한 주인을 섬기는 사람이요 그 주님과 한 몸을 이룬 성도들이라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우리 모두는 주님의 종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때 우리 모두가 한 분 주님을 모시고 살 때 우리 모두는 그 주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것은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4: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 분 주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분의 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고 할 때 자유도 없는 한심스러운 노예를 연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됨으로 오히려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자신을 소개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신 있게 소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사탄의 종으로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사탄에게 매여서 사탄이 시키는 대로하면서 사탄이 가야할 영원한 지옥으로 함께 달려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탄이 주는 가치관을 따라서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명예와 쾌락에 노예가 되어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사탄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이 되어서 그런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종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평생 돈의 노예가 되어서 내돈 내돈 하면서 좋은 일 한번 못 해보고 살다가 죽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은 우리를 만족시켜주지 못합니다
늘 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 욕심을 돈으로 채우려면 끝이 없고 한이 없습니다.
그것을 초월해 버리는 것이 참 자유를 누리는 길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노릇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내 인생은 내 스스로 개척을 하고 모든 문제는 내 자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서글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을 때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이끌고 나아가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내인생의 선장이 되셔서 직접 나를 이끌고 이 험한 바다를 지나 천국까지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가진 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살만하면 자기가 주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자기 스스로 잘 할 수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다른 주인을 모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경험하고 세상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경험하면 얼른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 버리는 것입니다.
이 상처 밖에 없는 인생 실패와 좌절을 얼마나 많이 맛보아야 끝이 날 이 인생을 뭐 좋다고 끝까지 자기가 주인노릇 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 지금부터 주님께서 저 인생의 주인되십니다.
다 주님께 맡기고 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셨는데 우리가 겁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걱정하고 염려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다 주님께 맡기시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대로 생각대로 욕심대로 하지 마시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성도님들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편이요 똑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섬김의 도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신 일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5)라고 하셨습니다.

선생이요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종들의 발을 씻기셨다고 한다면 종들인 우리가 서로 발을 씻어 주면서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같은 한 주님을 모시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주님은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 하나님이시오 오직 예수님만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종이 되어 사탄의 종에서 나 자신의 종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같이 모시고 섬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서로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로의 발을 씻어 주며 서로 섬기면서 사는 것이 종 된 우리의 본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