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59)
본문 : 엡 4:5
제목 : 세례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고려 공민왕 때 어느 마을에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싸우기만 하는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세 아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자 하루는 아들들에게 회초리 두 개씩을 꺾어 오게 하였습니다.
“자, 너희들 그 회초리를 한 가지씩 꺾어 보아라.”
세 아들은 뽐내며 회초리를 꺾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세 개를 묶어서 꺾어 보아라.”
이번엔 꺾여지지가 않았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형제가 서로 화목하여 뭉치면 그 나뭇단처럼 힘이 있게 되고, 서로 흩어지면 그 나뭇가지처럼 쉽게 부러져 형제가 다 망하는 것이란다".라고 했다는 옛날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도 전도서 4: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서로 마음이 하나가 되고 뜻이 하나가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가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할 때는 국론이 하나가 될 때였습니다.
그러나 국론이 분열될 때 나라는 힘이 없고 퇴보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서가 분열하고 이념이 서로 다르고 수구와 개혁이 각기 제 갈 길로 가려고 할 때 나라가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하나가 되자 서로 화합하자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각자가 가진 목소리가 너무 크고 힘이 있기 때문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분열하고 싸우고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일입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에베소서는 1-3장까지를 교리편이라고 하고 4-6장까지는 실천편이라고 했습니다.
이 실천편에 들어서면서 맨 먼저 말씀하고 있는 것이 이 하나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적 화목"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 화목"에 관한 말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저 대강 적당히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주제들을 반복해서 나열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4:2-6)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야 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시시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가장 중요한 것들이 같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렇게 하나가 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될 때 힘이 생기게 되고 큰일을 할 수 있고 무너지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세례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또 하나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세례도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세례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성례인데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연합됨과 은혜언약의 모든 은혜에 참여함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하는 우리의 서약을 표시하며 인치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소요리문답 제 94문)

세례란 물로 씻는 것이요
세례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것이요
세례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은혜언약의 모든 유익에 참여하는 주님의 사람이 되기를 서약하며 인치기 위해서 행하는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의 정의입니다.


1.세례는 물로 씻는 것입니다.
세례가 가진 의미 중 하나는 우리의 성품이 죄로 더럽게 된 것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의미합니다.

세례라는 말은 헬라어로 밥티스마(βαπτισμα)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대략 세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는 물에 담그거나 가라앉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물을 뿌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물로 씻는다고 할 때도 이 말을 씁니다.

이 세 가지의 의미 중에 세례라고 할 때는 물로 씻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물에 담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례라고 하지 않고 침례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7장 4절에 보면 실제적으로 세례라는 말 외에 이 "밥티스마"라는 말을 썼습니다.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지키던 장로의 유전에 대한 설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물을 뿌리지 않으면"이라는 말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라고 했는데 여기에 뿌린다 와 씻는다는 말이 이 밥티스마에서 온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을 할 때 제밀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죄를 씻는 의식이 세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의 활동상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가 제일 관심 있게 외치는 말은 죄의 회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외쳤고(마3:2)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했습니다.(마3:8)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기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로 미루어 볼 때 세례란 우리가 지은 죄들을 씻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세례 그 자체가 우리의 죄를 씻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죄를 씻어 주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이 세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여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세례라는 말을 침례로 해석을 해서 세례는 물에 잠기게 하는 침례로 행하여야 한다고 해서 침례파 교단이 생겼습니다.

세례가 하나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야 된다고 했는데 오히려 세례 때문에 교파가 생기게 되어 교회가 분열이 된 것입니다.

우리 장로교에서는 세례를 베풀지만 세례와 침례를 다 인정을 합니다.
성경에서 세례를 물에 잠기었다가 나와야 되는지 아니면 물을 뿌리면서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에 세례는 적어도 강물같은 데 들어가서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한꺼번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사건이 사도행전 2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성령님의 오심으로 베드로가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설교를 했는데 하루에 3000명이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날에 베드로가 설교를 한 장소가 예루살렘이라고 했는데 거기 삼천명이 들어 갈만한 호수라도 있어서 그리로 갔다든지 아니면 요단강으로 가서 세례를 베풀었다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세례를 줄 때에는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서 세례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고넬로의 가정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는 물가로 가서 세례를 베풀었다는 그런 언급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을 내리기를 물에 내려가서 물에 잠기게 하든지 물을 가져다가 뿌리든지 결국은 그 형식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물에 잠기게 하든지 물을 찍어 바르든지 물을 뿌리든지 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들은 결국 죄의 사함을 받게 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2.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신 말씀이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부분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라고 한 말씀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2:13절에는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때로는 성령님으로 받는 것인 줄로 생각을 하게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세례 우리가 받는 세례 외에 어떤 능력을 받는 또 하나의 세례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령세례란 성령님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을 받는 이 모든 것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할 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고 하는 모든 일들이 성령세례 즉 성령님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로 세례를 받을 때는 이미 성령님을 받고 회개하고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물로 베푸는 이 세례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 즉 성령님을 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이 성부하나님의 계획과 성자예수님의 구속하심과 성령하나님의 적용하심이 함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세례를 베풀 때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도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의 세례는 회개케 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세례를 많이 베풀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고린도전서 1:15절에 말했습니다.

또 세례 그 자체가 구원의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세례 그 자체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천국에 가고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그 표시로 세례를 베풀 뿐이지 세례 그 자체에 구원의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편 강도는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지만 십자가에서 세례를 받을 수도 없었고 받지도 않았는데도 그 날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례 자체가 확신을 가지게 하거나 어떤 능력을 받거나 하는 도구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세례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데 어떤 사람은 또 성령세례 불세례를 따로 받아서 구원의 확신도 가지게 하고 능력도 행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이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이름으로 받는 세례보다 더 다른 것을 준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례는 죄 사함 곧 구원을 받는 표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세례를 줄 때 중요한 것은 물에 잠기는가 뿌리는가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3.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6:3-5절에 세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2:12절에도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례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연합'이라는 말은 '함께 하다', '하나가 되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내가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1)세례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2천년 전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짊어질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지도록 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삯을 다 갚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입니다. 
이 죽으심이 나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의 연합입니다. 

2)세례는 주님의 장사와 연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곧 그분의 장사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장사란 죽은 사람을 묻는 일입니다. 장사지낸 바 된 사람은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란 내가 완전히 죽었다는 표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으면 아직 좀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으면 이제 나는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것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3)세례는 주님의 부활과도 연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였으면 예수님의 부활과도 연합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사람은 죽었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새 사람이 생깁니다. 그 새 생명을 가진 예수님 안에서의 새 사람, 그 사람이 세례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셨는데, 그 말씀은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된 우리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4)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세례받은 자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란 죄 씻음을 받는 표라고 했습니다.
세례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삼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표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았을 때 죄인인 우리는 이미 죽었고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실 때 새 생명을 이미 얻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산자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더불어 함께 죽은 자 된 성도들은 죄에 종 노릇하던 옛 사람이 죽었으므로 계속 죄에서 종 노릇 하는 신분에 머물려고 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 이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세례증서는 나의 옛 사람의 부고장이며 새로운 세계의 시민등록증과 같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혼증서와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침례니 세례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세례가 먼저니. 불세례가 먼저니 하고 따지고 말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물에 몸을 씻음으로 깨끗해진 것처럼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세례가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 한 세례를 받은 자로서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