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63)
본문 : 엡 4:13
제목 :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요즘 얼짱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얼짱 신드롬이라고 할만큼 많은 사람들이 얼짱병에 전염이 되어서 얼짱을 열광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은 얼짱이고 몸이 멋있는 사람은 몸짱이고 심지어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은 쌈짱이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짱이라면 좋아합니다.

"짱"이라는 말은 한자어 장(長)에서 유래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옛날에는 "캪(cap)이다"라는 말이 유행을 했었고 따봉(ta bom)이라는 말도 유행을 했습니다.
다 최고다 최고로 좋다라는 뜻을 가진 말들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짱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 등장합니다.
"온전한 사람"이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헬라어에서는 안드라 텔레이온(ανδρα τελιον)이라고 하는데 목표에 도달한 사람, 완전한 사람, 성숙한 사람, 장성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 성장한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이 말을 perfect man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사람, 결점이 없는 사람, 이상적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짱이 되고 캪이 되고 퍼펙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짱은 얼짱이나 몸짱이나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속 사람인 영혼이 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짱이 아니라 신앙적인 면에서 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신조어를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영적인 면에서 완벽한 사람 "영짱", 신앙적인 면에서 완전한 사람 "신짱" 이런 말이 유행이 되고 모두가 영짱, 신짱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모두가 영짱 신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사람 완벽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온전한 사람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떼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1.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우리 성도들은 성장을 해야 합니다.
생명력이 있는 것은 늘 성장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어린아이로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키도 자라고 정신적인 면도 성장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신앙적인 면이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나이는 많이 들었는데 몸이 그 나이만큼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은 성장을 했는데 정신은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저능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생명을 얻었는데 그 영적 생명이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늘 칭얼대며 사랑받기만을 요구하고 남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유아기적인 신앙을 가지고 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물론 의무감에서 키우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이 아이가 사람의 구실을 할 줄로 믿고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공부도 시켜 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을 그런 모습으로 산다고 하면 그 부모가 얼마나 실망을 많이 하겠습니까.
성장을 하지 못한 채로 산다면 그 당사자 자신도 참 불행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무럭무럭 자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이요 우리 자신도 행복해지는 지름길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성장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살다가 간 그 모습이 우리가 도달할 목표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신 삶의 원리는 겸손과 희생이셨습니다.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위해 희생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가 그렇게 될 때까지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겸손하셨다면 별 볼일이 없는 죄인인 우리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로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겸손은 성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버려서 남을 위해 살 수 있을 정도까지 희생정신이 성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목적으로 삼지 않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사셨습니다.
마음만 정하시면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셨지만 그런 일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그 나라에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셨습니다.

성경 속에 그리고 교회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를 위해 살았던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더 나은 성을 바라보면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서 극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 정도는 못하더라도 뭔가 이 세상의 것을 희생하고 포기할 줄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은근히 전도를 합니다.
어떤 녀석이 교회에 다닌다고 약속을 했는데 잘 안 나옵니다.
다음주에는 온다고 하고 또 안 오고 그러다가 어쩌다 한 번 오고는 또 안 옵니다.
하루는 제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 녀석아 목사님은 너를 위해서 일주일에 5일 동안 봉사를 하는데 너는 나를 위해 일주일에 꼴랑 한 시간도 봉사 못하니 그것도 너를 위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신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시기도 하셨는데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 물질 좀 희생하고 시간 좀 희생하는 것 그것 힘이 든다고 마다해서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짱이 되는 것입니다. 퍼펙트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육신 얼굴 예쁘면 얼마나 예쁘고 그 얼굴이 얼마동안이나 예쁘겠습니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러고 했습니다.
열흘 붉게 피어 있는 꽃이 없고 십 년 가는 권세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에 연연해 살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이 세상의 것을 희생할 줄 아는 것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길은 먼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즉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생애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 희생적인 삶이 진정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고 그분이 가신 영원한 나라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없이 그분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이 믿음은 주님을 따르는 일에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예수님 믿으십시오 하면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먹이 어깨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믿을 것은 주먹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런 대가없이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믿고 그래서 점점 자기 위주로 살게 되었습니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악착같이 권세를 손에 넣고 돈과 권세를 하나님 삼아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이 좀 있고 권력이 좀 있고 이 세상에 재미가 좀 붙으면 하나님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삽니다.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에 가는 길도 자기 스스로 개척을 하려고 시도를 합니다.
자선사업 좀 하고 좋은 일 좀 해서 자기가 지은 죄들을 은폐하고 좋은 사람인 것처럼 의인이 된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그 반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죄인임을 날마다 고백을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나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서글픈 인생임을 고백하는 데서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부정이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나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도 없고 의로운 사람으로 살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 사탄이 들끓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을 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죄 많은 나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
오늘 본문에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그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이 지식의 요소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런 것도 모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믿음 속에 이 아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서 이 아는 것 즉 지식을 따로 구별해 놓은 것은 여기 아는 것이란 단순한 지식이 아닌 특별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깊은 의미에서의 지식 즉 삶에서 체험하고 느끼는 경험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 책을 보니 그렇다고 하더라 아 누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렇다고 하더라 이런 간접적인 지식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겪어 보니 내가 직접 살아 보니 그렇더라 라고 하는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할 때 겉으로 보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나이가 몇 살이고 고향이 어디고 학교를 어데 다녔고 성격은 대강 어떻고 하는 것은 남의 이야기를 듣고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부간에 서로 안다고 하는 것은 더 깊은 의미에서의 지식을 말합니다.
함께 살아 보고 이것저것 속속들이 다 경험을 해 본 후에 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야 한다고 할 때는 부부관계처럼 직접 경험하고 아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살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해 보지 않고는 평생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금년에 우리가 진리의 실천편인 에베소서 4장을 시작하면서 금년에는 꼭 진리의 말씀을 우리 삶 속에 실천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그 충만한 삶을 맛보고 살자고 했습니다.
단순히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진리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하면서 살아 보아야 비로소 주님을 바르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설교를 듣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복음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사는 성숙한 신앙인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아멘만 하지 말고 정말로 그렇게 살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요즘 제가 새벽시간에 신명기의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를 읽으면 자꾸 자꾸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가나안 땅에 가거든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법들을 반드시 지키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가나안 복지를 주셨다라고 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들어가는 가나안 땅은 전에 너희가 살던 애굽 같지가 않다
애굽은 물이 좋아서 아무 때나 물을 대고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법규들을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늘 지켜보고 계시다가 비를 내리지 않을 것이고 너희가 말을 잘 들으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히 내려 주실 것이다...

너희 앞에 두 길을 둔다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을 너희 앞에 둔다
말씀을 실천하면 축복이요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저주이다
너희가 저주를 받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이라는 아름다운 땅을 주셨는데 그 아름다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서 저주를 받고 속히 멸망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몰라서 멸망을 하지만 하나님을 알면서 실천을 통해 체험을 통해 깊이 알지 못함을 인해서 멸망을 당하는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되는 축복을 받고 살면서도 이 아름다운 진리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불행하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고 그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해 보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 불행을 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에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