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1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67)
본문 : 엡 4:17
제목 : 허망하게 살지 말라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각 나라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태리 사람은 옷을 입다 죽고, 불란서 사람은 먹다가 죽고, 독일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다 죽고, 영국 사람들은 집을 고치다 죽는다.” 
이태리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좋은 옷 멋있는 옷을 사 입고 폼을 재고 다니고
불란서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좋은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시켜 먹고
독일 사람들은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 세월을 다 보내고
영국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집을 고치다가 세월 다 보내고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아마 집에 관한 것이 최고의 관심사일 것입니다.
월세 방으로 시작을 해서 전세방으로 가기 위해서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절약하고 절약하고 드디어 전셋집으로 옮기면 그 때부터 내 집 마련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내 집을 마련한 후에는 무엇을 합니까 그 다음에는 평수 늘리기 운동입니다.
20평에서 30평 30평에서 40평...
평생을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아끼고 아껴서 큰 아파트 한 채 장만하면 그 때는 이제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전1:2,3,14) 

오늘 본문 말씀에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허망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지만 우리 성도는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헛된 희망 속에 살다가 허망함을 맛보며 사라지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지만 우리 성도는 참된 소망을 가지고 멋있는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이제 더 이상 허망한 삶에서 벗어나서 참된 삶을 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1.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본문의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허망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는 유난히 "그러므로"혹은 "이러하므로"라는 말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서 설명을 주욱하고 항상 "그러므로 이제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기 그러므로는 직접적으로 바로 앞에서 설명한 말씀들을 가리키는 말이겠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지금까지 에베소서를 통하여 기록한 모든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동안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 성도라는 신분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란 그냥 교회에 다니면서 남 보다 더 착하게 살고 남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살고 사랑을 나누면서 사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고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한번 죽고 나면 끝나는 허무한 인생에서 영원토록 그 생명이 유지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죄의 종으로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영원한 죄인에서 영원한 의인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땀을 흘려 일을 하고 노력을 하고 수고를 하고 열심히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 봐도 결국은 죄인으로 낙인이 찍힐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기가막히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허망한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허망한 삶을 사는 것이 참으로 이상한 일인 것입니다.

저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저들은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저들은 아직도 사탄의 종이 되어서 사탄이 시키는 대로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이미 배운 우리가 왜 그렇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받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은혜를 받고 난 이제부터는 이 후로는 허망한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주안에서 증거하노니
본문에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며 다 진리의 말씀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직접적으로 아주 중요한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면서 그 중요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바울도 중요한 진리를 말할 때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심각하게 말하는 이것은 바울이 사사로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성경의 권위보다 주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철학이나 도덕을 앞세우고 인간의 경험을 앞세워서 설교를 합니다.
보통 성경 본문을 읽기는 하지만 그 본문의 중심 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그런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인기를 얻고 사람들의 환심을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 단순히 도덕적 강좌일 뿐입니다.
쏘크라테스가 아무리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한 인간의 말일 뿐입니다.
공자나 맹자나 석가모니가 아무리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한 인간의 허망한 말일 뿐입니다.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그 말씀이 참으로 위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좀 듣기에는 거북할지 몰라도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참으로 의미가 있는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증거라는 말은 증인으로 소환이 되어서 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사적인 자리에서 사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재판을 해서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용감하게 확실히 말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바울은 지금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잡혀 와서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입니다.
이제 곧 재판을 받게 될 것이고 만약에 바울이 본대로 그대로 증언을 하면 분명히 사형에 처해질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아니다 잘 모르겠다 잘 못 보았다라고 말하면 풀려 나게 될 것이고 과거 그가 누리던 영광을 누릴 수도 있을 그런 처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목숨을 걸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본대로 받은 대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두가 진리입니다.
모두가 우리에게 좋은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특별히 주님께서 주신 말씀 목숨을 걸고 증언하는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뀌고 우리의 처지가 변하고 우리의 삶의 원리가 바뀌는 이런 귀한 말씀을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의 진리
성경의 모든 말씀이 뒷받침하고 말하고자 하는 구원에 관한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3.허망하게 살지 말라
본문 말씀에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1)이방인이
여기 이방인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도 진리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처럼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방인으로 살고 잇습니다.
그들 마음에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진리도 모르고 허망한 세월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삶처럼 목적없이 헛된 것에 욕망을 기울여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마음에 
여기 마음이란 우리의 모든 지식과 생각과 이해력 양심 감정들을 담고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마음에 우리와 다른 가치관 다른 목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의로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참된 삶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 양심이 바라는 대로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허망한 것으로
"허망한 것"은 삶의 목적이 없고 무의미하며 공허한 것, 거짓되고 열매없는 헛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 말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생활의 전반적인 성격을 가리킵니다. 
이방인들은 마음이 허망하여 하나님도 모르고, 삶의 목적도 없고, 방향없고, 소망없이 허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생활은 무의미하고 영원한 열매가 없는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종교도 헛되고, 우상도 헛되며, 하나님을 떠난 학문도, 철학도 헛됩니다. 

골로새서 2: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어느 철학도가 4년 졸업해도 철학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므로 철학교수에게 "과연 철학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철학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철학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철학자에 의하여 인생과 우주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과 많은 의문은 불러일으켰으나 아직까지 인생이 무엇인지, 우주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확실한 해답은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이방사람들과 같이 허망한 세상영광이나, 세상 철학, 세상 것을 따라가고 추구하면 안됩니다. 

4)너희는 행하지 말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찌 먹을 것 걱정 안하고 앞으로 살일 걱정 안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노력을 해서 돈도 벌어야 하고 살길도 찾아야 하고 재미있는 일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우선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잘 산다고 살아 봐도 늙고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살고 나서 제일 허망한 일이 이 세상 좀 잘 살아 보려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그런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허망한 일들을 참 많이 만납니다.
열심히 세워 놓은 회사가 부도나 나서 허망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배반을 당해서 허망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가족에게도 실망을 하고 나 자신의 몸마저도 나를 배반하고 나에게 허망한 꼴을 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할 일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허망한 일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일 때문에
이 세상의 재미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면 허망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지금 진정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건 증인의 심정으로 간절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방사람들처럼 허망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일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을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