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8.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32)
   본문 : 엡 2:1 9
   제목 : 외인처럼 사십니까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오늘날 설교자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도 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설교를 들어도 늘 변함이 없이 한결같은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목사와 성도들이 같이 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목사들은 설교를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설교는 "너 죽고 싶니 죽어 볼래..."라는 하나님의 강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강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는 그저 형편이 좀 나아지고 가려운 귀나 좀 긁어 주고 농담 비슷하게 웃기는 이야기들로 대강 적당히 넘어가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심각하게 십자가 앞에서 변화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것이요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 장난이나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많은 목사들의 설교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영원한 멸망이나 천국에서 영생복락이냐 하는 심각한 판결 앞에 서게 될 것인데 그 때에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심각한 이야기 하면 싫어하고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진실된 목사들의 설교는 듣기 싫어하고 재미있고 웃기는 이야기나 좋아했던 책임이 성도들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각한 이야기를 들어도 소돔과 고모라의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기고 조금도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설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인사는 잘 하는데 전혀 은혜 받지 않은 사람처럼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에서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우리 동기 목사 한 분은 7여년 동안 열심히 목회를 하고 열심히 설교를 했는데 도무지 성도들이 변화되지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이단들이 모이는 곳에 가 봤더니 변화된 사람들만 모였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뜨겁게 서로 사랑하든지 그만 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그만 두고 아예 거기로 가 버렸습니다.

  저는 요즘 에베소서를 강해설교하면서 성경진리의 핵심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데 대한 자부심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사도를 특별히 준비하시고 전한 그 복음, 칼빈이나 루터가 붙잡고 교회를 개혁했던 그 복음, 스펄전이나 로이드존스 같은 명설교가가 핵심적으로 전한 그 복음을 같은 심정으로 전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작은 교회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목사가 전한다고 해서 대강 적당히 넘기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에 넘치는 은혜로운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어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성도들의 변화된 신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외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나그네나 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왜 외인처럼 손님처럼 사시려고 하느냐고 반문을 해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새 사람으로 새로운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창조 해 주셨는데 왜 아직도 옛 사람처럼 사시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 진실된 마음으로 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1.그러므로 이제부터 
  오늘 본문 말씀을 "그러므로 이제부터..."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과거의 우리의 신분과 지금 변화된 우리의 신분을 비교하여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의 모습은 12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 때에 너희는(과거에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메시야 언약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데 과거에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는 외인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나라로 부르시고 그 나라 백성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 나라와 그 언약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했습니다.
  절망적이고 허무한 이 세상에 살면서 내세의 소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먹고 마시고 살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던 너무나 어리석었던 것이 과거의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13절)

  우리가 유대인과는 달리 짐승과 같은 존재요 하나님의 언약 밖에서 아무런 소망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보면 못나고 못 배우고 가진 것도 없는 별 볼일이 없는 존재였는데 
  그런 우리를 특별히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그런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신분의 변화를 주셨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무일 없는 것처럼 평소대로 사는 이유는 그 의미를 잘 몰라서나 알지만 실감을 느끼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십자가의 복음은 너무나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땀을 흘리며 노력을 해야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그런 노력들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이요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가지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복음입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들을 때는 아멘 하는데 돌아서면 다시 원위치 해서 십자가를 믿는 믿음보다, 그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기 보다 자신이 고행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고 다닙니다.

  우리가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예 재창조 하셔서 우리를 의로운 신분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라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태어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신분을 주셨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나는 못났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 같은 주제가 뭘... 이런 말을 하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이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별 볼일이 없는 존재였고 사망으로 멸망으로 달려가던 형편없는 존재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왜 외인처럼 사십니까
  본문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외인도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여기 '외인'의 헬라어 '크세노이'(ξενοι)는 '외국인'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신정국가인 이스라엘 나라 사람도 아니었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이제 외국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미국에 가서 시민권을 얻기란 참 힘이 든다고 합니다.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갖춰지면 미국을 위해 충성을 하겠다는 선서식을 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서 감옥살이를 하다가 최근에 가택연금으로, 그리고 가택연금이 해제 되어서 자유의 몸이 된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분도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 건너가서 미국 시민이 된 사람입니다.
  이 분이 그렇게 중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북한 잠수함에 대한 정보를 한국 대사관에 전해 준 정도였는데 징역 9년 보호감찰 3년이란 중형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중죄 선고를 받았느냐 하면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을 위해 충성하겠다’는 선서를 등진데 대한 ‘괘씸죄 판결’이 아니냐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제는 한국 사람이 아니고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고 미국을 위해서 충성을 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정보를 한국에 주었다는 것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늘에 별 따기 보다 힘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하겠다는 맹세를 하고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충성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외인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 1장 18-19절에서 바울은 마음의 간절한 소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받는 그 혜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그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때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교인들이 내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마지 못해서 억지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지 아 자랑스럽다 아 대단하다 아 영광스럽다 라고 외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 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 크게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남들 봐주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사람처럼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님으로 나에게 주어진 축복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달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자부심을 가지고 교회에 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면 스스로는 절대로 올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외인처럼 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즐거워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도덕의 법 질서의 법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법들을 알고 질서를 알고 가장 먼저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들도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의 법은 철저하게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 법을 지킴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혜택이 돌아오는 법입니다.
  그 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이익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이익이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외인처럼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아끼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확장이 되고 교회가 힘을 얻고 교회가 잘 되는 일에 충성을 달하는 것이 외인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훌륭한 목사 훌륭한 성도는 없습니다.
  다만 얼마나 충성스럽게 일을 했는가 하는 충성스러운 목사 충성스러운 성도만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신분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고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법에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3.손처럼 사시겠습니까
  '손'의 헬라어 '파로이코이'(παροικοι)는 '자원해서 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권리가 없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살기는 살되 아무런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런 권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며, 많은 봉사를 하고 선한 일을 하였으나 거기에 대한 아무런 영적인 특혜도 받을 수 없는 그런 불행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 모르는 사람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선행을 많이 쌓았다고 해도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누리는 어떠한 영적인 특권도, 권리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 많은 사람들이 잘 산다는 미국 카나다 호주 등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영주권을 얻어 그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 비자를 가지고 들어가 영주권을 얻지 못한 채 그냥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조선족을 비롯하여 동남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불법 체류하고 있습니다. 
  불법 체류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합당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습니다. 
  싼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 붙잡혀 강제 출국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외국인들은 이렇게 서러움 속에서 생활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식 시민권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마치 불법체류자처럼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쫒기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이 말은 "집안에 당당히 사는 사람"이  아니고, "집 주변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당신이 주인공이고 집 주인이라고 해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주변에서 손님처럼 서성이면서 주인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작은 땅 한두 평이라도 땅 주인이 되어야 하고 작은 아파트라도 아파트 주인 하라면 몰라도 이까짓 교회 주인노릇 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주임이 됨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영적인 축복을 울리가 다 알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대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보다 수천 평 수만 평의 땅 주인이 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닙니다.
  불법 체류자도 아니고 집 주변에서 사성대야 하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그 나라오 교회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