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9.1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37)
   본문 : 엡 3:1
   제목 : 갇힌 자 된 바울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하므로"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이 바로 앞 절의 말씀과 연결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난 몇 시간에 걸쳐서 배운 대로 우리 성도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라로 말하면 정식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며 가정으로 치면 권속이요 자녀이며 건물이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기초가 되시고 우리를 연결해 주시는 그 건물에 하나로 연결이 되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가 되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백성 중에서도 훌륭한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 바울인데 지금 그 신세가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라는 것입니다.

  가끔 허풍떨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자랑을 막합니다.
  자기는 돈도 많고 좋은 학교에 다녔고 직장도 좋은 직장에 다녔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그 몰골을 보면 영락없는 거지 같은 차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 말을 믿겠습니까

  바울이 편지를 쓰다 말고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힌 죄수의 몸으로 이 에베소서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뭐 감옥에 갇혀 있는 죄인인 주제에 주제넘게 뭐 할말이 그리 많은가라고 비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이 성도의 신분이 그렇게 좋다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이 어찌 감옥에나 갇혀 있는 초라한 모습으로 살 수 있겠느냐고 비아냥거릴 것입니다.     

  "이러하므로"는 그것을 해명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내가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오해할 수 있음으로 내가 지금 감옥에 있는 것을 해명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까지 주욱 설명을 하고 그 결론을 13절에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이유를 잘 알고 보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성도들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가끔은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당신들은 맨날 교회에 가서 하나님 하나님 하고 기도하면서 왜 그렇게 지질이도 못사느냐고 하는 일이 잘 안 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교회도 아예 안 다니고 다녀도 나이론 교인들은 잘 사는데 왜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우리는 잘 살지 못하는가 우리가 가진 신앙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목사인 저도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왜 다 같은 하나님의 교회인데 특별히 당신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다 이웃을 도와준다 선교사를 보낸다 찬양을 잘한다 자랑을 하면서 당신이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는 오히려 더 잘만 되는데 당신의 교회는 왜 부흥이 안 되느냐 라고 비웃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조소와 비웃음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하는 귀한 말씀이 오늘 본문과 이어지는 말씀들 속에 진지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잘 들으시고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귀한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바 된 바울
  바울이 자신의 갇힌 상태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주일학교에서 불리던 노래 중에 "예수님 때문에"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형제를 사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매를 사랑합니다..."라는 가사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어떤 목사님은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마치 예수님께서 무엇을 잘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기 싫은 일을 시키셨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잘 못 이해를 하면 예수님을 원망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는 말입니다. 
  내가 뭘 잘 못해서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시킨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이렇게 감옥에 갇힌 것이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전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로운 일들로 인하여 감옥에 갇힌 것이기 때문에 수치스럽게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일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머리 속에 그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신 일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감옥에 온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 오히려 의인이기 때문에 감옥에 온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바울이 예수님의 일이라고 할 때 생각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일 것입니다.
  원래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도상에서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가 만난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영광스런 예수님이었습니다.

  과거에 초라하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힘도 없이 사람들에게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 끌려 다니시던 그 모습이 아니셨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하늘 보좌에 만 왕의 왕으로 전지 전능하신 모습으로 계시던 그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만났고 그 주님의 약속을 받았고 그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나라를 이미 상속 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이나 설령 감옥에서 사형을 당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의 최후의 심판 예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는 이 일로 그 예수님을 믿고 전하는 일로 감옥에 왔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병든 자들의 편에 서서 저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좋은 말씀들을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범죄한 자 연약한 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은 그러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하는 이 예수님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만약에 부자가 되게 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었다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만약 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을 믿었다면 우리가 아픈 것은 챙피한 일이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만일 우리에게 육신의 복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렇게 실패자가 된 것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그 예수님의 일은 십자가의 일이요 부활의 일이요 천국에서 영생의 일이라고 할 때 우리의 가난함이나 우리의 아픔이나 병들고 늙어짐이 실패와 좌절이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바 된 바울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이 감옥에 갇힌 이유를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원래 유대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바리새인이요 열심당원이요 유대교에 충성을 다하던 장래가 기대되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유대교를 떠나 기독교인이 된 것만 해도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인데 더 나아가서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똑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더 화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결사대를 조직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고 결국은 붙잡아서 감옥에 가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2장에서 살펴본 바대로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똑 같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이 이방인들에게 더욱 큰 확신을 심어 주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장난삼아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간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장사 속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감수하면서 사형을 당할 것을 각오하면서 이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것은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조금도 거짓이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 그것도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렇게 고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자기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라고 하십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나는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의 말을 믿어 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을 나누어주면서 우리의 삶을 희생하면서 목숨을 걸고 순교자의 정신으로 복음을 전할 때에 그것이 참된 복음의 전파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나누기를 하고 무료급식을 하고 무료 방가후 학교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우리의 물질과 시간을 희생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우리의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진을 위해서 삽니다.
  남을 위해서 남을 배려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이런 상태로 1-20년만 더 계속 세월이 흐른다면 우리 나라도 참으로 삭막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바울의 희생정신은 정말 우리가 본 받을 만한 일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모든 교육을 포기하고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남을 도와주는 교육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공부만 잘 한다고 뽑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뽑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공부시켜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도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점수로 주는 학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수가 입시에 영향을 주게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 봉사가 진정으로 남을 위한 정신이 아니라 점수따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자꾸 남을 괴롭힙니다.
  남을 괴롭히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제가 심각하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계속해서 남을 괴롭히고 남을 괴롭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 나는 너희들을 가르치지 않겠다 남을 괴롭히는 녀석이 공부를 잘해서 우리마을 동장이 된다면 우리마을은 남을 괴롭히는 마을이 되고 말 것이며 남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 공부만 잘해서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나라는 나쁜 나라가 되고 말 것인데 왜 내가 그런 사람을 가르치겠느냐 라고 하면서 혼을 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 주시면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나쁜 사람들이 모인 나라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우리를 그대로 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마감하게 될 때 우리의 평가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얼마나 희생했는가로 평가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물질 시간 등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무릎을 꿇고 비노니
  오늘 본문 말씀에 "이러하므로"라는 접속사와 "나 바울은"이라는 주어만 있고 동사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동사는 15절에 있는 "무릎을 꿇고 비오니"가 된다고 주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예수의 일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감옥에 갇힌 바울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가 하니 한마디로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로이드존스 목사의 에베소서 강해는 이 3장을 "영적 충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충만함과 풍성함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라는 것이 3장의 주제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조금도 비굴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오히려 "그것이 너희의 영광이니라" 라고 외치는 모습에서 우리도 영적인 충만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한마디도 불평을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았는데 복을 주시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싸늘한 감옥에 죄수신세가 되게 하십니까 이렇게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는 어렵고 힘들지만 참고 견디고 이겨야 되겠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기쁘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어렵게 하실까 하고 원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받는 고난이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예수님의 일을 위한 것이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당하는 것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고난을 자처하는 그런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일이 무엇인지를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날 위해 대속의 제물로 죽어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나라를 예비하신 그 예수님의 일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일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그 복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일이 주님 안에 있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일임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도 그 일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