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45)
   본문 : 엡 3:13
   제목 : 환난과 영광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종교개혁자 칼빈은 오늘 본문을 설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그토록 많은 방법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는 이러저러한 것들로 방해를 받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전혀 변명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가장 작은 변명의 구실도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노력은 결국 하나님을 피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핑계들을 댑니다.
  교회에 갔더니 목사가 어떻고 장로가 어떻고 집사라는 사람이 그 모양이라서 나는 교회에 안 간다라고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내가 뭐 아쉬운 것이 있다고 교회에 다니겠어라고 빈정댑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돈을 벌어야지 교회에 간다고 돈 생기나 라고 하면서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여러 가지 핑계와 변명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쁘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고 그럴듯한 이유들이 다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러나 실상은 그런 것들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믿음이 부족하거나 하나님 나라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지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게 하는 정당한 이유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이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그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하나님께 원망을 하면서 복음이고 뭐고 때려치우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잘 먹고 잘 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렇게 고생 고생했는데 복은 주시지 못할망정 이렇게 감옥에나 갇히게 하고 고생만 시키시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면서 원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도 그런 기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을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보고 낙심하고 실망할 것 같아서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너희의 영광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하나님을 피해 보려고 애를 쓰면서 변명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을 자처하고 그 고난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만큼 복음의 비밀을, 진리를 더 잘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있는 위대한 축복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담긴 뜻을 잘 살펴보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환난들에 대하여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그러므로"는 1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의 결론으로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대하여 설명을 하다가 문득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처지를 살펴보면서 사람들이 그러면 그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렇게 좋은 복음을 전하면서 당신은 왜 그 꼴을 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소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잠시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럴수록 이 복음은 너무나 위대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이 1-12절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라는 말은 환난이 우리의 영광이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1절에서 12절까지에 나와 있는 위대한 복음의 자랑거리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대강 살펴보면서 바울이 당하는 환난 또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환난들이 우리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1)하나님의 계시로 알게 된 복음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은 사람이 만들었거나 사람에게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알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나 계획 등을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 인간에게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철저히 이 계시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많은 철학이나 종교들은 인간의 사색에 의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심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한계가 있고 불완전하고 늘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의 진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계시로 알려 주신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고 변함이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2)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의 복음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알게 하시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늘나라의 비밀입니다.
  수십 년 동안 면벽을 하면서 깨달으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세상의 상식이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그 모든 지식들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그 비밀이 복음 속에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3)이방인들도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복음
  당시만 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에게만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우리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후사로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4)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있는 복음
  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받는 축복과 혜택들은 우리의 생각으로 도저히 헤아릴 수도 없는 너무나 엄청난 충만함이 있는 것입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축복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5)하나님께 담대함과 당당함으로 나갈 수 있는 복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가 보면 못 다한 일들이 많아서 누구에게 당당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당당하게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복음에는 그 담대한과 당당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랑거리들이 많이 있는 것이 우리가 가진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음 때문에 이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 자랑스럽게 오히려 더 영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2.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본문 말씀 중에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 자신의 환난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였고 또 많은 환난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3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환난들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수없이 얻어맞았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25장 3절에 보면 재판관이 재판을 해서 악한 사람에게 태형을 가할 일이 있으면 40대 이상은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39대씩 다섯 번을 때리더라는 것입니다.

  세 번은 태장으로 맞았다고 했습니다.
  태장은 채찍으로 때리는 로마식 형벌을 말하는데 그 채찍 끝에다가 납이나 뼈 조각을 달아가지고 살점이 찍히고 피가 나게 때리는 것입니다.
  또 한번은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이 돌을 들고 던져서 거의 다 죽게 되었는데 겨우 도망쳐서 살아난 일도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위험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전도 여행을 하다가 보면 강이나 여러 도시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위험한 일을 당하기도 했고요
  동족을 만나면 동족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해서 위험하고 그렇다고 이방인들은 잘 대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만나면 죽이려고 위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으로 가장한 거짓형제들에게서도 위협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라는 말을 잘 합니다.
  사는데 있어서 먹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하면서 수고하고 애를 쓰는데도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해서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어야 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 열이면 열사사람이 다 이렇게 살라고 하면 목회 안 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이렇게 고난을 당하면서 신앙생활 하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자기가 잘 못해서 사업이 부도가 나고 자기가 잘못해서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원망하면서 교회를 따나는데 전적으로 주의일 하다가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치우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아무리 큰 환난을 당한다고 해도 그것 가지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이런 환난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낙심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은 어차피 그 누구도 한평생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평안하게 잘 먹고 잘 살다가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풍파를 겪고 어려움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 어려움을 당할 때 신앙에 대한 회의도 오게 되고 낙심하기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이 우리가 바라는 소망이 세상일 좀 망했다고 해서 낙심하고 후회할만한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설사 죽음이 우리 육신의 생명을 앗아 간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의 일 때문에 신앙을 파는 사람입니다.
  사랑 때문에 신앙을 팝니다 처녀 총각 때 열심히 교회에 다니다가도 좀 멋있는 총각이 나타나고 좀 예쁘장한 처녀가 나타나면 그만 눈이 멀어서 신앙이고 뭐고 포기하고 애인 따라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 때문에 돈벌이가 되는 장사 때문에 직장 때문에 신앙을 파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모르고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라면 영생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그것을 쟁취하려고 할 것입니다.

  요즘 경기들이 너무나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여러 모양으로 어려운 사람을 사십니다.
  그러나 그런 환난 때문에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이 신앙 이 소망은 그런 일로 낙심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딜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본문 말씀에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당하는 환난이 에베소 교인의 영광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환난이 크면 클수록 그 복음을 통해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받는 영광이 더 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매를 맞아 가면서 이토록 위험을 무릎 쓰고 이토록 헐벗고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여 굶주리면서 이토록 감옥에 갇혀서 사형을 당할 각오를 하면서 전하는 이 복음이 별 볼일 없는 그런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목숨을 걸만하고 청춘을 걸만하고 세상의 어떤 즐거움도 포기할만한 그런 가치 있는 일이기에 이런 환난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는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정정당당하게 바르게 의롭게 살려고 하면 못살게 되고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이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잘살고 부자가 되고 행복하고 형통한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바르게 사는 우리 성도들을 왜 떼 부자로 만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새롭게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나라가 시작이 되면 아마 그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세상 정직한 사람들이 오히려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이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로마서 8장 17-18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고난은 싫어하고 영광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음으로 영광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 그것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합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여러 가지 환난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우리가 받을 영광이 더 커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잃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힘있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