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46)
   본문 : 엡 3:14-15
   제목 : 무릎을 꿇고 비노니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릅을 끓고 비노니"

  기도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한두 번은 기도의 응답을 받고 기뻐하거나 아니면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 같아서 기도에 관해서 회의를 가지신 적도 있으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만큼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매사에 기도해야 하고 수시로 쉬지 말고 해야 하고 기도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 아주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렇게나 아무 것이나 기도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해야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한다면 어차피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니까 구태여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1절까지 바울의 간절한 기도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기도에 대해서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를 보여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바울이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있는데 사탄의 세력들이 비록 바울을 결박하여 복음이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을 막고 있지만 기도하는 것만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당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은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기도는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복음만 전하고 진리만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기도 바쁜 지금 이렇게 기도하는 내용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기도하는 이유와 기도의 대상과 기도의 자세 그리고 기도의 내용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은 기도하는 이유와 대상과 자세를 살펴보고 기도의 내용은 다음 시간부터 몇 시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이러하므로(기도의 이유)
  오늘 본문 말씀도 "이러하므로"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3장을 시작하면서 살펴보았듯이 1절의 말씀도 "이러하므로"로 시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서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바 된 나 바울은..."이라고 했는데 그 말과 연결이 되는 말이 오늘 본문의 "무릎을 꿇고 비노니"입니다.
  "이러하므로 ..나 바울은...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문장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기도하는 이유를 3:1절의 "이러하므로"가 가리키고 있는 2장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에는 우리의 변화된 신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죽었던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살려 주셨다고 했습니다.
  살려 주신 것만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높은 신분을 부여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9-22)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신분 변화로 인하여 기도도 할 수 있고 기도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아무 사람이나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된 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장 싫어 하시고 죄지은 자를 만나면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지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감히 나와서 기도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의인들입니다.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들을 이미 다 용서 받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의인된 특권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된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 그 기도를 들어 주실 줄을 믿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앞서서 그 믿음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날 대신 죽어주신 그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를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 십자가의 대속함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만이 특별히 드릴 수 있는 귀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의로운 사람이라고 그 의로움만 가지고 기도를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정직하고 바르다고 내가 모든 죄를 다 사함 받았다고 모든 빚을 다 갚았다고 하나님께 무조건 또 무엇을 달라고 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무엇을 달라고 할만한 그런 관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관계를 가진 지위를 부여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권속이여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아버지 나와는 관계없는 분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께 아들의 자격으로 그 특권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죄스러워서 염치가 없어서 어떻게 기도를 하느냐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셨기 때문에 이러하므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이러하므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담대하게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여러분들의 소원을 아뢰시기 바랍니다. 

2.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기도의 대상)
  오늘 본문 말씀에 기도의 대상을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을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말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각 만물들에게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름으로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고기로 새는 새로 짐승은 짐승으로 원숭이는 원숭이로 사람은 사람으로 그렇게 지음을 받고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참 어리석게 살았습니다.
  맨날 찬물을 떠놓고 비면서도 그 기도 드리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기도를 했습니다.
  오래된 고목나무 보고도 빌고 태양이나 달같은 피조물들을 보고 신인줄 알고 빌었습니다.
  호랑이나 심지어 오래된 뱀 같은 것들도 신으로 섬겼습니다.
  산에 가면 산신령 바당 가면 용왕 이런저런 잡신들을 정말 신으로 알고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서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우리가 기도하는 그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각각에게 이름을 주신 그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과 관계가 되는 말씀입니다.
  여기 모든 족속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권속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모든  피조물들이 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람들만 기도를 할 수 있는데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권속이 된 사람들만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족속이라는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며 시작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광의 왕이시요, 만군의 주시요, 여호와 하나님이시여,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분이시여...라고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런 칭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들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이런 호칭은 하나님을 무시무시한 우리가 감히 접근해서 말씀도 드릴 수 없는 분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시여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한없으신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는 칭호입니다.
  우리 아버지라는 칭호는 우리가 가까이 접근을 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쉽게 말씀드릴 수 있는 친근한 분으로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만 왕의 왕이시여라고 부르라고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대통령에게 나가서 뭘 청원을 한다 해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막상 가게되었다고 해도 많은 예를 갖추어서 조심스럽게 가야 할 것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하나님이시여 라는 말을 쓰시는 분이 있는데 불꽃같은 눈으로 보신다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을 환히 다 아시고 그 죄를 지옥 불로 벌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죄가 하나도 없어서 하나님 앞에 떳떳하신 분은 그 칭호를 쓰셔도 됩니다만 그러나 좀 찝찝한 사람은 그 말보다 "아무리 주홍같은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흰 눈처럼 깨끗이 씻어 주시는 하나님이시여"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대상을 이렇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신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완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이땅 위의 아버지들은 약점이 많습니다. 모든 면에 불완전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모든 면에 있어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부족한 것이나 잘못된 것이 없는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장 지혜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장 많은 사랑을 가지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부모 사랑은 식을 때가 있고 그 크기도 작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그 자녀가 되어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무릎을 꿇고 비노니(기도의 자세)
  오늘 본문에 바울은 기도하면서 그 기도의 자세를 "아버지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옛날에는 마루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옛날 교회는 대부분 오늘날처럼 의자를 놓지 않고 나무로 마루를 깔고 거기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는 그래도 좀 경건한 자세요 겸손한 자세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의자를 놓고 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니까 좀 교만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옛날에 부산의 어떤 오래된 교회가 있었는데 오래된 교회당 건물을 뜯어내고 아주 새 건물로 교회당을 잘 지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들이 옛날에 마루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드릴 때는 좋았는데 새로지은 건물은 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그런 눈에 보이는 기도의 자세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마음 속에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기도를 드리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라고 했는데 이 "앞에"라는 말은 "마주 대하고", "정면으로"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기도란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마주대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정면으로 얼굴을 맞대기 위해서 무릎을 끓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면으로 마주 대한다는 것은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담대함과 당당함으로 나올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지만 그 권한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떨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정면으로 마주보고 섰을 때 "화로다...나는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것도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그 위대한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우리는 한 없이 작아지고 부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너무나 겸손한 자세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그 위대하심과 그 은혜로우심이 넘치는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너무나 위대하신 우리 하나님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된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