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08)
   본문 : 엡 1:11-12
   제목 :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영어나 헬라어에서의 문장은 그 행태가 능동태인가 수동태인가를 분명하게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능동태는 주어가 동작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꽃병을 깼다"라고 하면 주어인 내가 꽃병을 스스로 깰 수 있기 때문에 능동태로 쓰여진 것입니다.

  수동태는 주어 스스로가 할 수 없고 다른 것에 의해서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꽃병이 주어가 된다면 꽃병 스스로 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깨짐을 당해야 합니다.
  "꽃병이 나에 의해서 깨어짐을 당했다"라고 했다면 이것은 수동태라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하는 것은 능동태
  남에게 의해서 당하는 것은 수동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에 관한 동사를 사용할 때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서 하나님 편에서 하실 때는 항상 능동태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편에서 이야기 할 때는 늘 수동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헬라어로 보면 동사로 분류되는 단어가 4개가 나옵니다.
  "역사하신다", "예정을 입다", "기업이 되었다", "(찬송이) 되게 하셨다" 라는 말이 동사입니다.

  이 동사 중에 하나님이 주어가 된 동사 "역사하신다", "(찬송이)되게하신다"는 능동태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어가 된 "예정을 입다" "기업이 되다"는 수동태로 쓰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은 늘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하나님 스스로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은 구원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모든 종교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구원은 인간의 행함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욱이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그 믿음이라는 것이 인간 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에 관한 것은 모두가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능동적으로 인간 편에서는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1.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1)기업(基業)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기업"이란 "중소기업" "대기업" 할 때 쓰는 그 기업이 아닙니다
  회사를 말하는 기업이라는 말을 쓸 때는 "기"자를 "바랄 기(企)"자를 쓴 기업(企業)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기업은 "터 기(基)"자를 쓴 기업(基業)입니다.
  이 기업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재산과 사업."을 말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체가 아닌 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받아서 하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나는 이 일을 어쩔 수 없이 하지만 너만은 내가 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을 하라는 것이 우니 나라 부모님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만 가 보아도 작은 국수집이라고 할지라도 부모님들이 하던 가업을 이어 받아서 대대로 물려받아 하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업이란 이렇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이나 사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이 기업은 클레로스(κληροs)라는 말인데 이 말의 뜻은 좀 더 깊은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이 말의 뜻은 "제비 뽑아 결정하다", "제비 뽑아 얻다", "몫을 받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이 말에서 "상속인" "후사" "계승자" "유업을 받을 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새로 나온 번역 성경에는 이 기업이라는 말을 "상속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은 상속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업이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서 많이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시고 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 후에 이삭과 야곱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께로 대대로 이어 받은 그 가나안 땅을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서 각 지파별로 나눌 때 그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서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업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조상을 통해서 다윗의 후손으로 통해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2)이 기업은 영원한 기업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자신의 생업, 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를 잘 만나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여 많은 것을 이룬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기업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신앙이 좋던 최순영 장로님이 경영하던 신동아 그룹이 다른 회사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장로가 경영하는 기업이 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까 하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기업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 되지 못한다고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지나온 역사 가운데 알렉산더, 징키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등은 정복자로 많은 영
토를 차지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차지하였던 그들의 땅이 영원한 그들의 기업이 되었습니까?

  많은 것을 가지고 있든지,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하였든 세상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세상의 것들은 영원한 우리의 기업이 아닙니다. 


  성경은 세상의 기업을 가리켜 썩어질 것,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
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우리의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질 날이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이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세상의 우리 기업이 무너질 날이 있습니다.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며 살았던 세상의 것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우리들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계획에 따라 우리가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계획대로 되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가 되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계획과 예정에 따라 되어진 일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①상속자가 된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의해서 사람이 우리를 상속자로 정하였다면 그것은 안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일 그것도 이 세상에 살 동안 되어지는 일이라면 권력이 있는 사람이 돈이 있는 사람이 그 권력으로 그 돈으로 그렇게 결정을 했다고 하면 다소 인정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인간이 이렇게 저렇게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혹 있다고 해도 안심을 하고 믿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기에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②변함이 없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 일은 변함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미리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에 의해서 예정을 하시고 창세 전부터 미리 선택을 하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속자가 된 것은 변함이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오다가 가다가 재수 있는 사람은 눈에 띄어서 상속자가 되고 재수없는 사람은 안되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미리 정해진 사실이기 때문에 이 일은 번복이 되지 않고 변함이 없는 일입니다.

③누구든지 시비할 수 없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이 어떤 규칙이나 번에 의해서 된 것이라면 또 나 자신이 어떤 자격 규정에 합당하다고 인정을 해서 상속자가 되었다면 시비를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반대되는 법조문이나 규칙을 들고 나와서 우리가 상속인이 된 것이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보기 싫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유난히 미워하기도 합니다.
  나와는 원수가 되어서 어떻게 하든지 내가 잘 되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를 보고 저런 인간이 천국에 간다는 것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신 일이라고 할 때 어느 인간이 어느 세력이 시비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④나의 잘남이나 못남과 상관이 없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면 우리 같은 사람이 감히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 좋은 일하면서 사는 양심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잘난 사람들 앞에서면 우리 스스로가 메뚜기 같고 쭉정이 같고 인간도 아닌 것 같은 비굴한 마음이 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우리가 영원한 나라 완전한 나라 황금보석으로 만들어진 나라 슬픔과 눈물이나 죽는 것이나 헤어짐이나 고통스러움이 없는 나라의 상속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무식하고 못나고 별볼 일이 없는 것 같은 존재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인정하시고 나를 선택하시고 나에게 이 귀한 선물을 주셨기 때문에 나의 잘남과 못남과 상관이 없이 이 귀한 것을 받았습니다.


2.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 12절 말씀에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하나님의 목적 속에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로 삼아 주시는 목적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영광이라는 말이나 찬송이라는 말의 어원은 좋게 생각하고 좋게 말하는 것에서 왔습니다.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알고 좋아하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이 여왕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 피조물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범죄 타락함으로 그 본분의 자세를 버리고 떠나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 중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절하시고 그들을 죄 가운데 불러내셔서 구원을 하시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속자로 삼아 주셔서 다시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의 우리의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저 대강 남는 시간에 찬송을 한다거나 내가 볼일 다 보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영광과 찬송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혁하던 개혁자들이 목적으로 삼은 것도 결국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람들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뜯어고쳐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성경의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스스로에게 영광을 돌리던 잘못된 생각들을 버리고 오직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개혁자들의 목적이었습니다.

  교황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유명한 목사 훌륭한 목사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어느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만약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서 함께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밖에 나가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어떤 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 되고 어떤 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면서 그 명예에 먹칠을 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됩니다.

  옛날에 아이가 어디에 나가서 나쁜 일을 하다가 동네 어른 들에게 발각이 되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너희 아버지 이름이 뭐냐 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아들이기에 이런 짓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훌륭한 일을 할 때도 어느 집안 자녀냐고 먼저 묻는 것입니다.
  아 그래 그 집안 자녀이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아들이 나왔지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상속자라고 하면서 이 세상의 것에 너무 욕심을 내고 이 세상의 쾌락에만 마음을 빼앗기면서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됩니다.

  인간인지라 세월이 흐르는 것이 아깝고 늙어 가는 것이 서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그것을 서러워하고 무정세월 한탄하기만 한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고 맙니다.

  세월이 갈수록 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갈 일이 가까워졌구나
  이제 상속자로서 상속 받을 날이 바로 앞에 왔구나 하면서 오히려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안 떠나려고 몸부림을 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됩니다.  
  주후 2세기 경 요한 크리소스톰이 황제 앞에 붙들려 나와 그의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받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말하기를, "네가 만일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내가 너를 추방시킬 것이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태연히 미소를 띄우며 "폐하께서는 결단코 나를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결단코 나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사43:)"라고 말하였습니다.

  황제는 노하여 호통쳤습니다. "그래 좋다,그러면 내가 너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여 버리겠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그것도 쉽게 안될 것입니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쌓아 두었기 때문에 폐하께선 그것에 손도 대지 못할 것입니다(마6:21)"

  황제는 노발대발하여 소리쳤습니다.[내가 네 놈을 죽여 버리겠다]
  그는 더욱 태연한 자세로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지난 40년 동안 죽어 왔었습니다. 나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감추었기 때문에 폐하께서는 더더욱 그것을 만지지도 못할 것입니다(갈2:20)"
  이러한 자세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공을 돌리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자가 되게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영광의 찬송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