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0)
   본문 : 엡 1:15-16
   제목 : 바울의 감사와 기도

  기도란 우리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 신께 대한 기도가 있습니다.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서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합니다. 

  그 사람들은 무당이 써 주는 부적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더 소중히 여깁니다. 
  그들은 윗도리 안쪽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거나 장농 안에 잘 넣어 두거나 아니면 벽에 부쳐 둡니다. 
  여러분의 성경책과 여러분이 들은 설교를 어디에 그렇게 정성스럽게 간직하고 있습니까?

  미신을 믿는 자들의 기도와 우리 성도들의 기도에는 뚜렷이 차이가 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미신을 믿는 자들의 기도는 어떻게 하든지 신을 조르든지 감동을 시켜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들이 기도하는 기도의 대상의 신이 어떤 분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악한 신이든지 선한 신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소원만 들어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와 같은 기도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졸라서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려보려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지방에 계시는 어떤 목사님이 세미나 참석차 서울에 왔다가 시간이 없어서 서울에서 아니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교회에 가서 수요예배에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그 교회 성도들이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기도하는 모습이 정말로 간절하고 참석하는 사람들이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날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설교와 모인 교인들의 간구의 제목들을 보고 정말로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열심을 가지고 참석하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보니 대부분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생각, 자기의 소원이었습니다.

  목사가 "그것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할 때에 "아멘!"하는 소리가 너무나 우렁찼고  "특별히 여러분들의 곡간이 채워지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니까 더 크게 "아멘"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가르치고 이런 기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많은 성도들이 아니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런 것을 좋아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이 믿고 있던 그 무당신앙 미신을 믿는 믿음이 우리 교회 속에 파고 들어와서 어느새 그런 이상한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의 바울의 감사와 기도는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무엇 때문에 기도하며 어떻게 기도하며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1.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대한 감사
  본문 15절 말씀에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감사하고 기도하는 이유는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주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안에서 그들을 볼 때 믿음이 있다는 것은 바울이 지금까지 설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그들이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고 성령님의 인치심까지 받아서 영원 불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이 예정하시고 선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믿어서 성령님의 인치심과 보증을 받은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출입을 하지만 이런 믿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른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신을 믿는 자들의 눈으로 볼 때 좋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교회에 그저 그런 성도님 한 분이 계셨답니다.
  그 분이 어느날 불치의 병인 암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받고는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성도님의 믿음은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을 합니다.
  복음의 실제적인 내용에서 진리의 말씀에서 조금씩 벗어나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위주로 한 신앙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매사를 기도로만 해결을 하려고 하고 무엇이든지 기도해서 기적적으로 얻으려고만 하고 통상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에게도 자기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받고 치료 불가능한 암이 깨끗이 나았다고 하는데 누가 이 사람의 믿음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을 받자고 하는데 누가 말릴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지금은 제가 전하는 복음을 아멘으로 받고 있으시지만 만약에 저 옆 교회에서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니까 불치병자들이 발딱발딱 일어나고 갑자기 떼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아마 여러분들도 한 사람 두 사람 다 그 교회로 갈 것입니다.

  그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예배 참석하고 충성을 해서 나도 그런 거부가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진리의 말씀 예수님의 복음을 잘 살펴보면 그런 것들이 참된 믿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의 눈으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 신앙이 참으로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런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화로 신앙상담을 해 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잘 합니다.
  목사님 제가 과거에 믿음이 좋을 때는 열심히 새벽기도도 나가고 주일 성수도 잘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교회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앞장을 서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믿음이 식어져서 새벽기도도 못하고 충성도 못합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상담을 해 오면 목사가 뭐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예 집사님 다시 열심을 내서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라고 해야 되겠지요
  교회에 열심을 내고 싶고 충성을 하고 싶다는데 그것을 목사가 말려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예수님"이 중심입니까 "믿는다"가 중심입니까?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믿음을 강조해서 예수님을 믿는 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참된 믿음은 나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그런 연약하고 부족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실천력이 부족해서 늘 새벽기도를 해야 되겠다라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한번도 실천을 하지 못하는데 그런 의리도 용기도 없는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고 하니 너무 감사합니다.  

  욕심 때문에 세상 걱정 때문에 번번히 헌금 생활도 잘 못하는데 그런 나를 한번도 미워하지 않으시고 계속 붙잡고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으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도 못하고 성공도 못하고 빌빌대는 저를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인정해 주신다고 하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맡겨 주신 아내하나 남편하나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품에 주신 선물 자녀 하나 올바로 교육시키지 못하고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께 효도도 제대로 못하는 못난 인생을 하나님께서 내치시지 않으시고 이렇게 사랑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여기 저기서 상처 받고 속임을 당하고 실패하고 낙망하고 좌절하는 부족한 인생을 다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것이 예수님이 중심이 된 참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복된 일이요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성도를 향한 사랑에 대한 감사
  본문 15절 말씀에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라고 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바른 믿음을 가졌고 또 성도를 향한 사랑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셋은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믿음이 있고 믿음이 있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과 사랑은 따로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을 함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게 믿음은 있는데 사랑이 없다고 한다면 그 믿음은 잘못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내게 사랑은 있는데 믿음은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랑은 올바른 사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받음이고, "사랑"은 구원 받은  자가  나타내는 모든 행실을 총괄적으로 가리킨다라고 했습니다. 
  신자의 모든 행실은 사랑을 목적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 없는 것은 선행(善行)이라도 진정한 선이 아니고, 덕행(德行)이라도 진정한 덕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듣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사랑은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1)성도들을 향한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인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는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실천을 설명하시기 위해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찾아가서 기름을 붓고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싸매 주고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려다 주고 돈을 주인에게 건네주면서 치료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을 용서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셨습니다. 
  용서하시기 위하여 비싼 대가를 치루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자기를 못박는 무리를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여 주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성령이 충만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도 실수하고 행동도 어눌하고 뭔가 미움을 사는 일만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베푸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용서가 잘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도 용서를 해야 합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평안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3)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이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나 비슷한 것 같은 데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일들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 "무엇보다 열심히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크고 작은 차이지 모두가 다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서로를 흉보고 없는 일까지 들먹여 중상모략을 하기 쉽습니다. 
  지렁이가 어금니 가는 소리에 잠 한잠 못 잤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남은 꿈도 안 꾸고 생각해 본 일도 없는데 보았다고 중상 모략하는 사람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사랑은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우리의 죄와 허물을 기억도 아니하시고 잊어버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가서7장 6절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죄의 댓가를 떠오르지 못하도록 깊은 바다에 던진다고 했는데 우리가 들추어내야 되겠습니까? 들추어내면 하나님이 들추어내야 합니다.

  사람은 뜨물통(구정물통)과 같다고 합니다. 
  가만히 놓아두면 아주 맑은데 막대기를 가지고 휘휘 저으면 콩나물 대가리, 김치 찌꺼기 등등 별별 지저분한 것이 떠오릅니다. 

  오늘 이 세상에 가장 깨끗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정직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람의 혀를 가지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면 다른 사람도 내 허물을 찾아내서 진흙탕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래서 사람은 뜨물통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를 보나 사회를 보나 가정을 보나 개인들을 보나 사랑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천국이 이루어지지만 사랑이 떠나면 지옥이 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도 믿음도 구제도 아무런 유익이 못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성도들만이라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이며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믿음임을 확인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도들이 성도를 향한 참된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참된 믿음 참된 사랑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믿음과 사랑을 주셨음을 감사 드리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참된 기도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