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90)
   본문 : 롬 16:8-16
   제목 :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본문 말씀 속에는 이름이 직접 기록된 18명의 성도들과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여러 명의 성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내 친척 헤로디온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사랑하는 버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

  이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같이 다 그립고 문안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삶을 우리가 다 알 수 있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기록 외에는 다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행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분들에 대한 공부를 마치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들의 이름 앞에 주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착한 자는 사악한 자가 차등이 없이 이제는 모두 거룩한 무리인 성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빈부나 귀천이나 남자나 여자나 인종간에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전해지고 누구나 차별이 없이 믿음을 가지고 성도가 될 수 있게 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유대인과 이방인
  "헤로디온"이라는 사람은 바울이 친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친척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에서 유대인 동족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버시"라는 이름은 "페르시아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외에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지만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사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짐승취급까지 하면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까지도 죄악시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런 정도의 감정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감정들을 훨씬 초월하는 소중한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2)왕족과 노예들
  "스다구" 라는 이름은 귀족의 이름으로 아마도 황제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되는 사람입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라는 사람도 귀족계층의 이름으로서 귀족집안의 사람임이 틀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의 황족 귀족과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 귀한 자리를 박차고 당시의 사람들이 천시 여기던 예수쟁이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징을 하나 말하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예거나 노예였다가 자유인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르바노, 아리스도블로의 권속, 나깃수의 권속,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 올름바. 이 모든 사람들이 노예 혹은 노예였다가 자유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노예출신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노예출신의 천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였고 외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소중한 역할들을 하게 하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후세대에 우리에게까지 알려 주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출신의 사람들이 당시에 많이 배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한다면 떳떳하게 그들의 이름을 말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인간취급도 하지 않았던 노예들을 이렇게 높여서 치하하고 있는 것은 참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사실은 노예출신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노예가 아니오 자유인이다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사실은 우리 모든 인생이 범죄한 이후로 사탄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이 시키는 대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사탄이 시키는 대로 우상을 섬기고 사탄이 시키는 대로 죄를 지으면서 살았고  사탄이 인도하는 대로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지금도 사탄의 계략에 속아서 돈이 노예가 되고 쾌락의 노예가 되고 욕심이 노예가 된 채로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다가도  다시 욕심의 노예가 되어서 쾌락의 노예가 되어서 이 귀한 진리를 버리고 사탄을 따라갑니다.

  또 노예였다가 자유인이 된 그 감격을 잊지 말 것을 상기시키려고 이렇게 노예들의 이름을 기록해 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당시의 노예출신 성도들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짐승처럼 살았는데 이렇게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그 감격이야 인간의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엄청난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감격을 잊어버리고 그런 지위를 그런 신분을 버리고 다시 노예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며 평생을 그들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은 우리의 과거의 신분을 한번씩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원토록 사탄의 노예가 되어 그들을 위해 예비한 영원한 지옥의 노예로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3)선한 사람과 사악한 사람들
  본문 11절 말씀에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라고 했습니다.
  나깃수라는 사람은 권모 술수에 아주 능하고 극악 무도한 자라고 여러 역사적 정황을 살펴서 주석가들은 말합니다.

  나깃수라는 사람 본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 집안에서 일을 하던 노예들과 그 가족 중 몇몇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온갖 종류의 사악으로 들끓는 나깃수의 집에까지 들어간 것은 의미가 깊은 일이며 놀랍고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누구를 보며 살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본대로 닮아 가기 때문입니다
  나깃수의 가정에서 그 악독한 모습을 보고 살았던 사람들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들 중에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은 복음의 위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의 과거의 모습과 관계가 없이 한마음이 되고 한 형제로서 뜻을 합하여 함께 일을 하고 같은 길을 가는 위대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모습으로 살았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떤 신분으로 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부자이든지 가난한자이든지 잘났든지 못났든지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보혈의 효력은 그런 조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능력으로 우리 모두가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천국 시민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감사 감격하시기를 바랍니다.

2.은혜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내 사랑하는" "우리의 동역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주안에서 수고한" "택하심을 입은"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들은 어느 한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는 말이 아니라 당시의 성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볼 수 있게 하는 구절들 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동일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며 동일한 자세로 주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말입니다. 

1)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자
  바울은 암블리아를 소개하면서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라고 했습니다.
  또 스다구를 소개하면서도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서로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우정을 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관계가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혜를 통해 한 형제가 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으면 우리 모두는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큰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주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워진 교회 안에서 서로 다툼이 있고 서로 미움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끔 아직 설익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나 사탄의 역사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 내에 미움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믿음이 좋고 나는 바르게 하는데 다른 사람이 잘못해서 못살겠다 하는 이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그리스도의 사랑에 젖어 있는 자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우리의 동역자
  바울이 우르바노를 가리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과거에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고, 주의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도와 함께 주의 일을 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구원받은 백성으로 주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동역자가 되어서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자
  10절 말씀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 스스로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으로 만족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볼 때도 이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연단을 통해 많은 시련을 통해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모습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어려움을 통과하면서도 시련을 당하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 때 참된 신앙인이라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좋을 때 잘 될 때 어려움이 없을 때 자기 희생이 없을 때 교회에 다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은 어려울 때 시련을 당할 때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해야 할 때 교회를 중심으로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4)주 안에서 수고한 사람
  본문 12절에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라고 했습니다.
  또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사랑하는 버시"라고 했습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라는 이름의 뜻은 화사하다 우아하다 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이들은 호화롭게 생활을 했던 귀족계층의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귀족적인 풍요로움에 안주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여러 가지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5)택하심을 입은 자
  본문 13절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라고 했습니다.
  루포는 마가복음 15:21에 언급되어 있는 루포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가복음의 루포는 골고다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네레 사람 시몬의 아들입니다.

  이 루포를 택하심을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썼습니다.

  주님의 일에 특별하게 사용을 받을 자로 택함을 받았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고난 당하는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랐던 것처럼 주님의 일을 위해 특별한 사명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의 어머니를 가리켜 바울은 나의 어머니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루포의 어머니가 바울의 친 어머니라는 말이 아니라 바울이 어려움을 당할 때 친자식처럼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생각을 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고
  어머니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는 바울을 친어머니처럼 돌보아 주었습니다
  루포도 부모님을 본받아서 바울의 하는 일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 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특별한 임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고 갈 십자가가 있으며
  우리가 친자식처럼 형제처럼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특별한 임무가 내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동역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임무를 받은 자로서 많이 주님의 일에 많이 수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