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6.2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97)
   본문 : 롬 16:21-23
   제목 : 고린도교회 성도들 

  로마서 16장에는 34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반부에 26명의 명단이 들어 있고 오늘 읽은 본문에 8명의 명단이 들어 있습니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로마교회에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장소가 고린도였고 지금 그 편지를 마감하면서 함께 있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문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모습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한 사람 의미없이 그냥 등장하는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뭔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거나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쉬운 것은 그 사람의 삶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기록된 것을 토대로 이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디모데
  "나의 동역자 디모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은 아닙니다.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협력한 전도자이며 바울의 동역자로 수고한 사람이며 복음전도자로 지금 고린도교회에 바울과 함께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디모데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그의 동역자로 가장 먼저 소개하는 영광을 허락한 것은 그가 믿음의 아들로서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사도와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였음을 암시합니다. 

2)나의 친척 -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교회의 성도들 중에서도 나의 친척이라고 소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도 나의 친척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친척'이라고 하는 말은 일가친척이라는 말 보다는 골육이라는 말로 번역을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동족인 유대인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 성도라 하더라도 아무나 친척이라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단순히 동족 유대인이라기보다는 남달리 바울과 가까운 사람이거나 먼 친척 정도가 아닌가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이 세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가까운 친척이라고 해서 한 일도 없는데 이름을 올려 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성경에 기록은 되지 않았지만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이름을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게 했을 것입니다.

3)더디오와 구아도
  더디오와 구아도는 그 이름에서 특별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더디오는 "셋째"라는 뜻이고 구아도는 "넷째라는 뜻을 가진 로마식 이름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옛날에 자식을 많이 낳아서 지을 이름이 마땅히 않으면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 일중이 이중이 삼중이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첫째 둘째 셋째라고 이름을 지은 사람들은 노예들을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노예들은 이름을 주는 것까지 마땅히 않게 생각을 해서 그냥 첫째 노예 둘째 노예 셋째 노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마도 노예 중에 좀 대우를 받는 노예는 첫째라고 하고 그 다음은 둘째...이렇게 했지 않았나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이 더디오와 구아도는 노예 중에서도 첫째 둘째에도 들지 못하는 셋째 넷째로서 노예 중에서도 참 별 볼일이 없는 천덕꾸러기였을 것입니다.

  그런 출신이었지만 더디오는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눈이 좋지 않아서 보통 서신들을 끝부분을 제외하고 대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필자의 이름을 밝힌 것은 이 로마서의 더디오 밖에 없습니다.
  그가 비록 노예 중에 노예였지만 아주 특별한 글을 자신이 말하는 의도대로 잘 기록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아도는 더디오 보다 더 천한 노예인 넷째라는 이름을 가진 천민이었지만 바울이 그를 호칭할 때 "형제 구아도"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형제라는 말도 육신의 혈육을 나눈 형제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친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형제라는 호칭입니다.
  세상에서는 천대 받는 노에 중에 그것도 넷째인 그를 바울은 우리의 형제 구아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4)가이오
  "교회 식주인 가이오"라고 했습니다.
  이 가이오라는 사람은 사도행전 18장의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과 동일한 인물로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사람은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오는 바울의 고린도 전도 사역에서 첫 번째 회심자 중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를 교회 식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집을 교회의 집회 장소로 내어 주었고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이오는 많은 재산을 소유한 부자였고 그의 재산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5)에라스도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 시의 '재무관'으로 '고린도의 재산 관리인'입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교회는 천한 노예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가이오 같은 부자도 있었고 에라스도 같은 고관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 같이 자기의 신분에 관계 없이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최대한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열심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었고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서 이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하여 지는 일에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 귀한 복음을 받은 자들이 되였습니다.

2.우리에게 주는 교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가장 귀한 것은 그들을 통해 복음이 전하여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 땅에 실현하는데 쓰임을 받은 구속사의 일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입니다.

  그러면서도 고린도교회의 이런 구성원들의 면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있습니다.

1)교회의 구성원은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일꾼들이 어떤 사람은 부자 어떤 사람은 권력가 어떤 사람은 종 어떤 사람은 그저 보통 사람 이렇게 다양한 구성원들로 되어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의 식구들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중에 돈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금은 없어도 나중에는 고관들도 나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나 우리의 어떤 조건을 보시지 아니하시고 누구든지 주님을 믿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교회 내에서는 빈부나 귀천의 차이가 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부자가 권력자가 비천한 종을 노예를 형제라고 불러주는 곳 그 곳이 교회입니다.

  야고보서 1장 9=10절 말씀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교회에는 낮은 형제 즉 가난하거나 못났거나 부족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부자거나 잘났거나 똑똑하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그 가난이 자랑거리입니다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 5:3)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8)라고 했습니다.

  낮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낮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겸손한 자가 낮은 자요 낮은 자는 하나님께 의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낮다는 것은 소유가 없으므로 남에게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교만하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낮다는 것은 명령에 순종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는 높은 자에게 순종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낮은 자만이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므로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낮은 자들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쉽게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믿고 따름으로서 이렇게 귀한 새 생명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부와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것을 가졌음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부요한 자는 낮아짐이 자랑거리입니다
  부요하다는 것은 충만하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서 부자라는 말입니다.
  우선 부한 자는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첫째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교만한 자입니다.
  둘째로, 세상의 명예와 권세가 높은 자들을 말합니다.
  셋째로, 물질로 부요한 자입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물질이 풍요로운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보다 쉽다고 하신 바로 그 부자입니다. 물질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자라고 해서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부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의 소유를 자랑한 곳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닌 소유로 인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도 부자였었고, 욥도 부자였습니다. 
  신약에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도 부자였습니다. 
  또한 바울과 함께 전도를 한 바나바도 구부로의 부자였습니다. 
  빌레몬서의 수신자인 빌레몬도 역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소유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의 소유가 진정한 자기 것으로 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소유보다 하나님 안에서 낮아짐을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귀하게 들어 쓰신 것입니다.

  스스로 부하다고 생각이 들면 하나님 안에서 낮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한 자는 자신이 이 세상의 부자 보다 더 귀한 것을 가졌음을 자랑하고
  부자는 스스로 낮아짐으로 이 귀한 은혜를 받았음을 자랑함으로 서로를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주 안에서 서로가 한 형제임을 인정하고 사랑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각자에게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었습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고관은 고관대로 노예는 노예대로 보통 사람은 보통사람으로 모두가 다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 아무 쓸모없이 구원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각자에게 달란트가 있고 그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여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교회에 성도들이 오면 그 성도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살펴봅니다
  그 사람의 달란트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유심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일을 맡깁니다.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요 자신도 삶에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내가 어떤 사명을 받았을까를 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3)각자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그런 신분상의 격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형제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받은 은혜가 너무 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새 생명 새 하늘과 새땅 새로운 신분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이렇다저렇다 비교해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의 다툼들을 보면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좀 나아야지 복도 더 받고 일도 더 많이 하고 지위도 좀 높은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깁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는 조금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다같이 너무나 좋은 것 너무나 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지만 이해를 보기 위해서 돈으로 한번 환산을 해 보겠습니다.

  얼마나 될까요 요즘은 천만원도 없으면서 억억거리니까 감각이 둔해졌습니다
  그래서 좀 많이 불러야 실감이 납니다. 한 천억쯤으로 해 보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천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좀 더 가진 사람은 일천 10억 못 가졌다 해도 일천 억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비교하고 자랑하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없는 사람들은 없는 것을 감추고 잘난 척 하기 위해서 겉치장을 많이 했습니다.
  멋있는 옷을 입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 보면 판자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겉치레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입고 다녀도 조금도 기가 죽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실 부자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을 가졌습니다
  서로를 비교하며 자랑하거나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소중한 것을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멋있게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