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7.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98)
   본문 : 롬 16:25-27
   제목 : 나의 복음은 

  옛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거나 반가운 소식이 올 것이라고 믿고 아침에 까치가 울면 은근히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살아가는 재미가 별로 없었을 시절에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며 살던 옛날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군 생활할 때 제일 기다려지는 것이 편지였습니다
  아침에 까치가 우는 소리를 듣는 날은 쓸데없는 일일 줄 알면서도 은근히 반가운 소식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뭔가 특별한 반가운 소식이 없나 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이미 다 들으셔서 새삼 반갑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다시 한번 우리가 가진 이 복된 소식 즉 복음이 얼마나 우리에게 반갑고 기쁘고 복된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긴 로마서를 다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야기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그 복되고 기쁜 소식을 "나의 복음"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일마다 여러분에게 전하는 복음이 바로 바울이 말한 "나의 복음"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자신 있게 그리고 아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진리의 말씀의 핵심이 바울이 말한 그 "나의 복음"입니다.

1.비밀(복음은 비밀입니다)  
  오늘 본문 25,26절 말씀에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나신 바 되었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복음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내려오다가 때가 되어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알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민족인 유대인이라고 해도 잘 모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한 예로 그들이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면서도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아 하나님이라는 신은 짐승의 피를 좋아하시나 보다 그래서 짐승만 잡아다가 잔뜩 드리고 그 제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디서 듣고 제사를 드리기는 했는데 그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물론 그 제사를 드리는 대상까지 엉뚱한 대상으로 바꾸어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바르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수없이 흘린 짐승의 피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죽어야 할 우리 자신이 흘려야 할 피를 상징하는 것이요 
  결국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 뿐만 아니라 아주 가장 근본적인 문제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으며 왜 병들고 왜 늙고 왜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고로 죽는 사람 병으로 죽는 사람 늙어서 죽는 사람...이런 저런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우리 자신도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친구도 떠나고 가족도 떠나고 젊음도 청춘도 다 나를 비웃는 듯이 떠납니다. 심지어 나 자신의 몸뚱이까지도 나를 배반하고 떠납니다
  이빨도 떠나고 머리카락도 떠나고 윤기 있던 피부도 없어지고 시력도 청력도 기력도 다 나를 배반하고 떠나 버리고 앙상한 육신 희미한 정신만 남아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암이나 불치의 병으로 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침해로 온갖 추한 모습을 다 보이면서 가족들 못할 일 많이 시키면서 자신도 고통 속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운동을 안 해서 그럽니까-운동을 밥 먹듯이 하던 운동 선수들도 죽고요
  약을 안 먹어서 죽습니까-약사도 의사도 그렇게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돈이 없어서 권력이 없어서 죽습니까- 이병철씨도 정주영씨도 박정희도 김일성이도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자신은 안 죽고 영원토록 살 것처럼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라는 사람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의 어렸을 때 이름은 싯달타였고 왕궁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밖에 나가서 하루는 늙은 노인을 보았고 하루는 병들어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보았고 하루는 죽어서 장사를 지내는 장례 행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그렇게 병이 들기도 하고 늙어서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어리석다 누구나 병에 걸리기 마련인데도 병든 자를 보면 싫어하고
  누구나가 다 늙기 마련인데도 늙은 사람을 보면 싫어하고 언제까지 젊을 줄 알고 살아가니 얼마나 어리석은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출가(가출)를 하고 나름대로 고행과 수도를 통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가 깨달은 가장 큰 비밀은 인생의 마음속에 있는 그 욕심 때문에 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욕심을 버리고 자아를 무아 지경을 만들면 부처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80이 되어서 죽었습니다(열반에 들었습니다)

  평생 고행을 하고 깨달음을 위해 몸부림을 친 것이 겨우 성경 구절 한 구절 깨닫고 죽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성경은 그의 평생 깨달음을 간단히 한 마디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복음이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어떻게 태어났으며 왜 병들게 되고 왜 늙게 되고 왜 죽게 되는지 그리고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를 아주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출가를 하거나 가출을 해서 열반에 들거나 죽을 정도로 수도를 하지 않아도 한글만 읽을 수준이 되면 누구나가 쉽게 그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한글로 내용을 읽고 이해할 정도만 되면 누구나가 아주 쉽게 그 심오한 진리를 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누구나가 알 수 있는 것을 비밀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나 다 그렇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을 설명하시면서 비유로 설명을 하셨습니다.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은 천국은 직접 설명을 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의 이유는 어떤 사람에게는 잘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어떤 사람에게는 잘 알 수 없는 비밀로 하시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도다"(마13:11)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쉽게 듣고 배우는 이 복음은 아무나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물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붙여진 것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을 우리들에게만 주신 참된 진리요 복된 소식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이 복음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의의 기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비밀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만을 아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인생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길인가 하는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인가를 알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우리의 욕심 때문에 범죄 타락함으로 말미암아서 죄인이 되었고 그 죄 때문에 죽게 되었고 그 죄 때문에 형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는 의롭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의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복음" 즉 우리의 복음에는 그 의의 기준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에 의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들어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시험을 보거나 취직을 하기 위해서 시험을 보거나 결혼을 하기 위해서 맞선을 보거나 어떤 자격을 얻기 위해서 시험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시험관이 출제하는 경향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험을 출제하는 사람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도 아주 교만스럽게 자기들의 의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렇게 하면서 스스로 의인이라고 평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세우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면서 살고 자연을 보호하고 또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 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세운 의의 기준이요 하나님께서 세운 의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에 "호라티우스 보나르"목사님의 책을 두어 권 사서 읽고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스펄젼 목사님과 함께 활동하시던 분인데 우리 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신 분이지만 복음의 열정으로는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쓴 책 "복음의 진수로 나아가라"라는 책에 보면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을 직시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선은 부풀리고 악은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악한 모습은 핑계와 변명으로 축소하여 작게 만들고 선한 모습은 굉장히 부풀려서 크게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인이라는 자격증을 스스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충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형여 그것으로 자신을 의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모습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나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고난당하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나는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히는 의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못 박고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자신을 보는 시각을 달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세운 의의 기준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교회를 바라보면서 비판을 합니다.
  왜 저것들은 맨 날 모여서 믿습니다 믿습니다만 외치면서 도무지 세상에 대해서 좋은 일을 하지 않느냐고 비판을 합니다.

  물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그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교회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로서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그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자선 사업이나 구제 사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그 기초를 세우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끝나는 인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그분의 기준에 의해서 심판을 하신다고 한다면 
  우리가 필히 알아야 할 것은 그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의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필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3.이신칭의(以信稱義)
  "나의 복음" 즉 우리가 가진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는 의의 기준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의의 기준을 한 마디로 한다면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의 기준이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하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의인이요 그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기준에 의해서요?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입니다
  사람들이야 뭐라고 지껄이건 말건 우리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의 기준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사를 제쳐놓고 이렇게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10절 말씀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제 의인이 되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이 우리들이 생각할 때 무슨 대수로운 것이 되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의의 기준으로 삼으신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셔서 일 것입니다.
  그 중에 첫째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의심을 하고 사탄의 꾀임에 빠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인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 관계나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나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무너질 때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바울이 말한 "나의 복음"에 대해서 다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강 그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복음에는 우리 인생들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너무나 쉽고 간단한 구원의 길이 들어 있습니다.
  이 복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통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고 구원 받은 백성이 되어 영생복락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