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7.2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200)
   본문 : 롬 16:25-27
   제목 : 나의 복음은 3(믿음과 순종)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선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
  좋은 일 많이 해야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
  이런 말들을 수없이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나 모든 종교들이 그리고 우리의 양심이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주 몰상식한 나쁜 사람으로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하나님께서 착하고 선한 기준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그 중심이 되는 것으로 인간에게 있어야 할 바르고 선한 일들의 기준을 법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모든 나라의 법이나 모든 양심들이나 규범들이 다 이 하나님의 법의 원리에 속해 있습니다.

  이 법을 다 지키려고 애를 써야 하고 이 법의 기준에 의해서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과연 이 기준에 의해서 모든 법을 잘 지키고 모든 일에 선하게 행동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선하다 잘했다 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선한 척하고 착한 사람인 것처럼 하고 좋은 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마음의 생각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도 과연 그렇게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좀 나은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기준에 합격을 할만하게 평생을 바르게 사는 사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다른 한 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가 죽을 죄 대신 형벌을 받게 하시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과거에 어떤 흉악한 죄를 지었든지 또 지금도 수시로 죄를 짓고 있든지 앞으로 어떤 죄를 또 짓는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기만 하면 의인으로 인정을 해 주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슈바이처 박사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의사라는 귀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밀림으로 들어가서 불쌍한 인디언들을 평생 치료해 주면서 보냈던 위대한 슈바이처 박사! 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인류에 큰 공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아주 건방지고 나쁜 놈이 되고 맙니다
  좋은 일 좀 한답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건방진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의 공로로 의로운 사람이 되겠노라고 객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만 그렇게 하면 될 텐데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많은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거기에서 종교개혁을 해서 개신교가 되었지만 개신교 내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나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생각할 나의 복음은 "믿어 순종케 하는"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에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모든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도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일에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에 나타나 있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순종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믿음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믿음인데 막상 그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라는 절대 진리를 그들의 핵심 교리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믿음이 "활기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종교개혁 기간에 그들이 주장한 믿음의 삼중적 정의가 등장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반드시 있어야 구원을 받는 바른 믿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삼중적 믿음의 요소 즉,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구성요소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지식(노티티아, notitia)
  아는 것이 곧 믿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이 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미신이라고 해서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겨 왔습니다.
  그 신이 누구인지 그 신이 무엇을 하는 신인지 그 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면서 그저 마음에 좀 느껴지는 것 그것 가지고 그것들을 신으로 섬겨 왔던 것입니다.

  때로는 달을 보면서 때로는 이상한 돌이나 나무를 보면서 때로는 호랑이나 뱀같은 것들을 보면서 신이 아닐까 하고 섬겨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그런 미신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믿음이든지 진실한 믿음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를 믿든지 공자를 믿든지 진실한 믿음을 가진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중이나 신부나 원불교나 여러 종교들이 모여서 서로의 믿음을 인정하고 서로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믿는가 누구를 믿는가 그 대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믿음의 진실성보다는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믿고 코끼리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신앙의 대상인 호랑이와 코끼리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보다 더 진실하고 더 열렬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믿는 종교가 참된 종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끔 등산을 가시다가 절에 들리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절에 있는 중들의 모습을 보면 머리가 숙여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결혼도 가정도 가지지 않고 머리를 빡빡 깎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불경을 외우는 모습에서 아 이 사람들이 참된 종교인이다 라고 생각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고행을 하면서 신을 섬기는데 우리 교회 목사는 너무 편하게 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중은 존경 할만 하고 목사는 사꾸라 같다 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내 자신이 어떻게 진실 된가 하는 것보다는 그 대상이 진실한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가짜 신 잘 알지도 못하는 신을 목숨을 바쳐 섬긴다고 해도 그것은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통치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고백을 했던 것처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다시 오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한다면 그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 무엇을 하는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전혀 모르고서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고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몰라도 돼 무조건 믿으면 돼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바른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성령님에 대하여 많이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우리가 믿는 진리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더 큰 믿음과 더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2)이론적 동의(아센수스, assensus)
  믿음의 두번째 요소는 지적 동의입니다
  지적동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지식이 참되다고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주어 들어서 알기는 많이 알고 있는데 알고 있는 그 사실이 참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이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실이 정말 확실한 진리라고 인정을 하는 것이 있어야 참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 그런 확신이 없다는 것은 진리를 아직 잘 알지 못했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의 생각들 때문에 의심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신이 아직 없다고 해도 그렇게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믿음이 크고 작은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믿음이 크면 좋겠지만 작은 믿음이라도 구원을 받는 데는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표가 가득 들어 있는 지갑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지갑을 놓칠세라 꽉 붙들고 벌벌 떠는 사람이 있고요
  어떤 사람은 아무런 감각 없이 그냥 주머니에 넣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갑에 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꽉 움켜 쥐고 흥분을 하든지 그렇지 않고 약간 소홀히 여기든지 하는 것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지갑에 진짜 수표가 있느냐 가짜 수표나 부도난 수표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지식이 필요하고 그 지식에 대한 확실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정말 참된 진리 위에 세워진 믿음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모르고 다소 확신이 부족하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정도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왕에 신앙생활을 하시려면 그 믿음이 무엇인지 열심히 공부를 하시고 그 아는 지식을 확실히 인정을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신앙적, 실제적 동의(피두키아, fiducia)
  믿음의 요소는 아는 것과 지식적으로 동의하는 것 그리고 실제적으로 동의하는 것 이 세가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알고 인정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렇게 인식을 하고 그런 의지를 가지고 변화된 양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예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사탄도 예수님을 알고 그 지식이 참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요소인 이 실제적 동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알고 인정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사랑하거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대항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인정을 한다고 해도 막상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하는 의지가 없다고 한다면 아직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설교가 좀 이론적이고 좀 어려울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믿는 것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지식을 그렇게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르려는 의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2.순종
  오늘 본문 말씀에 "믿어 순종케 하려고"라고 했습니다.
  믿음에는 순종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느냐 믿음으로 구원을 받느냐 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교회와 개신교도들 사이에 큰 논쟁거리였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와 일부 개신교 교회들은 구원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여야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주의교회는 의롭게 되는 데에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믿음 행함 칭의 이 세 가지는 신교나 구교나 다 같이 핵심적으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서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고 그 차이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천주교는 믿음과 행함이 있을 때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는(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믿음이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행함이 따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함이 의로운 사람이 되는 조건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는 믿음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들 사이에도 제일 만나기 싫고 교제하기 힘든 사람은 자기의 고집대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큰 일에는 자신이 세운 목표대로 남의 말에 기를 기울이지 않고 굳세게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소한 일들은 자기의 생각과 좀 다르다고 할지라도 양보를 하고 상대방의 뜻을 따라 줄줄 아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은 그대로 두고 남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며 곁에 있는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신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값없이 의롭게 해 주었더니 배은망덕하다고 생각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나의 복음"이라고 했을 때 
  복음은 "비밀"이요 
  복음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요 
  복음은 "이신칭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명령의 주제가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게 들어 있는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너무나 귀한 것이며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믿어 순종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다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