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65)
본문 : 롬 14:22-23
제목 : 믿음으로 아니한 죄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성경은 수없이 강조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렇게 당연한 진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면 아 자격이 없는 나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셨기에 내가 이렇게 큰 복을 받았구나 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자라고 하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입니다.
인간들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려면 내 자신이 별볼 일 없는 존재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공짜로 뭘 받을 만큼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치사하게 뭘 믿고 의지하고 그래서 구원을 받기 싫다는 것입니다
나도 떳떳하게 공로를 세우고 선하게 살아서 인정을 받아 보겠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일수록 사람이 교만하게 될수록 이런 생각은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교만했을 때 이 은혜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거부를 당하고 잘못된 율법주의나 잘못된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성행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켜야만 했던 중세시대의 교회는 이 인간의 교만이 극치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은혜의 교리를 거부하고 경건하게 거룩하게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감추고 위선적인 삶을 살기 시작을 했고 겉은 화려했으나 속은 냄새가 나게 썩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성경의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 교회를 개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만 때문에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을 해서 이만큼 잘 살수 있는데 무슨 구원이 필요하고 무슨 은혜가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은혜받기를 거부하고 은혜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 교만 때문에 인생들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 길러 본 부모님들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 그 핏덩어리에 불과한 존재를 그냥 버려 두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를 닦아 주고 씻어 주고 젖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똥오줌 가려 주고 해서 키워 놓고 네가 이렇게 자란 것은 부모님의 은혜다라고 하면 그 은혜 감사합니다 하면 될 것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다 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효자들이 되어 다 부모님을 섬기기를 거부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나 자신이 부족한 존재라는 것만 인정을 하면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만 인정을 하면 모두에게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잘났다는 그 교만 때문에 그 자존심 때문에 서로 다투고 싸우고 잘난 척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어 놓고도 이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성경의 엄연한 진리를 거부하고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엉터리 사이비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은혜의 교리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이 교리 때문에 교인들이 선을 행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게 되었다고 불평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바르게 살아야 구원을 받고 선을 행해야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면 그래도 사람들이 좀 정신을 차리고 살 것인데 은혜로 믿음으로 이러니까 사는 것은 엉망으로 살면서 말만 믿습니다 믿습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의롭게 해주신 하나님의 참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백분의 일만이라도 이해를 바르게 한다면 그 은혜 앞에서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을 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흉칙한 죄인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내가 죽을 대신 내가 형벌을 받을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아무렇게나 살면서 또 죄를 반복하여 짓고 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은 이 믿음이 강한 자와 이 믿음이 약한 자가 교회 내에서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 노력하여 이 믿음을 세워 나갈 것을 당부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강조를 하고 있는 말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은 죄니라"라고 했습니다.

1.이 믿음을 가진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다
본문 22절 말씀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라고 했습니다.

로마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대대로 음식을 가려 먹는 전통이 있어 왔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음식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시대로부터 내려오던 전통을 따라 모든 음식을 가려 먹었습니다. 
특히 목매 죽은 것이나 돼지고기 또 동물의 피같은 것은 절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은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유대인들과 예수 믿는 이방인들 사이에 큰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이방인들을 향하여 경건치 못한 자들이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율법적이고 바리새적인 사람들이라고 지적하며 서로 판단하고 비난했습니다. 

22절의 말씀은 이방인들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이 사람들을 믿음이 강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할 때 믿음이 강한 사람은 성경에 금한 음식을 먹지 않고 율법을 잘 지킨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4장은 오히려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들을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선한 일을 하고 아무리 경건하게 바르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인간의 행위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비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우리의 선행을 강조하지만 잘못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을 사람의 선행과 비교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고 그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밖에 없다고 믿는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고 그 믿음으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너희도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먹어라 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음식도 가려 먹고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사는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아는 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면서 나 자신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22절 하반절에는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자기의 옳다 하는 바"란 바로 앞의 네게 있는 믿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말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무엇을 먹던 무엇을 마시던 자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강한 믿음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의로운 사람이요 천국에 가는 확실한 보장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땅에서도 율법에 얽매여서 정죄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 명의 대학생들이 아파트의 24층에 세를 들어 함께 지냈습니다.
어느 주일에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마침 정전으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갈 도리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말하기를, 슬슬 이야기나 하면서 올라가면 쉽게 갈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과목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층계를 올라왔을 때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이 깔깔거리고 웃는 사이에 어느새 24층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현관 앞에 섰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도 경비실에 맡겨 놓았던 현관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미루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일평생 천국을 향해 계단을 오르듯이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믿음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결단코 천국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천국 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선행이나 고행이나 성공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그 무엇도 천국 문은 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얼마나 복이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죄이다
본문 23절 말씀에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준 교훈으로서 22절에 묘사된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과 대조를 이룹니다.

강한 형제가 가진 그 특별한 내적 자유를 누리지 못한 자들이 따라서 자기 행동의 정당성에 대하여 의심하는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심정으로 고기를 먹는다면 정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심하고'라는 말은 진리의 말씀에 의한 확신이 없어 갈팡질팡하면서 갈등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가 정죄된 이유는 고기를 먹을 내적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 다시 말해 그의 믿음이 그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허락한다는 완벽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먹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먹으니까 먹기는 먹으면서 복음의 참된 진리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확신이 없으면서도 꺼림칙한 마음으로 먹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복음의 진리를 알고 강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확신이 없으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위선적인 행동을 한 안디옥에서의 베드로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갈2:11-14).

베드로가 안디옥에 갔을 때 이방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식사가 무엇이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아마도 이방인들이 먹는 식탁이었으니까 성경에 금한 음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유대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의 비판이 무서워서 도망을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도 따라 했고 또 바나바도 그 외식하는 것에 유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대 선배인 베드로를 책망을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따라 살려면 거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떳떳하게 행동을 해야지 그런 확신이 없이 슬그머니 옛날 유대인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존경하면서 따르는데 지도자가 그런 확신이 없이 처신을 하니까 다 따라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야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것은 모두 죄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하든지 목표와 목적이 주님을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먹는 문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먹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먹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시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헌금을 해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찬양을 해도 믿음으로 드려야 하며,
여러 가지 봉사를 해도 믿음 가운데 해야 합니다.
구제를 해도 믿음으로 해야 하며,
전도를 해도 믿음의 확신 가운데 해야 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대접할 때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31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믿음을 좇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 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최고의 것이요 그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화려한 것이라고 해도 죄라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