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66)
본문 : 롬 15:1-2
제목 :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사람은 인간을 곤충에 비유해서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는 거미형의 사람과, 개미형의 사람과, 꿀벌형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거미형의 사람은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거미는 일도 안하고 잠만 자다가 남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이기주의 인간’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함정을 파고 남의 목숨을 노리는 야비한 인간을 거미에 비유한 것입니다.

둘째로 개미형의 사람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사람’,즉 있으나마나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개미는 부지런하고 단결심도 강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들끼리 잘 뭉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개미와 같은 사람을 ‘개인주의 인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모으지만 남을 위해서는 쓸 줄 모르는 인간을 개미에 비유한 것입니다.

셋째로 꿀벌형의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꿀벌은 조직력도 강하고 부지런합니다.
열심히 꿀을 만들어 자기들도 먹지만 대부분 주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이타주의 인간’이며 사회 곳곳에 이러한 꿀벌형의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5장에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의 말씀에는 우리 각 사람이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 원리가 앞서 말씀을 드린 세 종류의 곤충 중에서 거미나 개미같은 인생이 아니라 꿀벌과 같은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이 말씀은 단순히 남의 기분을 맞추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한 남이 원하는 바를 맹목적으로 좇는 일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타인의 영적 각성에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그 필요를 채워 주라는 의미입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이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천국 복음을 듣게 하여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선한 일은 가장 좋은 일은 영원한 생명을 갖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선한 일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라는 것을 앞서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로 모입니다
이 모임이 부흥하고 확장하고 튼튼히 세워지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연약한 자를 그리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내 자신의 육신적인 기쁨을 위해 쓰지 않고 이 일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1.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
본문 1절 말씀에 "우리 강한 자가...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강한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강한 자라는 뜻입니다. 
율법의 행함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이나 음식을 가려 먹음으로 의롭게 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할 때 나는 그 믿음을 가졌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최고이니까 내가 사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을 해보고 진리를 바로 알고 나면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다는 말속에는 그 삶에 있어서도 진정으로 바른 삶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삶은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실로 내면 속에서 자신의 안일을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원칙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지금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나쁜 이기주의의 습성을 버리고 남을 위해서 사는 이타주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직도 남을 위함이 없는 자기 자신만의 기쁨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교인일지는 몰라도 신앙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자신이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좀 더 행복하기 위해서 좀 더 기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때 이 세상은 지옥 그 자체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도 이 세상에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정도의 아름다운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며 사는 사람들이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을 하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비웃겠지만 사실은 그 바보같은 사람들 때문에 결국은 자신도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어떤 사람들은 단지 자기 자신만의 기쁨을 위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하는 것도 단순히 자기 자신이 축복을 받기 위한 이기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신비한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것도 자신의 귀에 기쁨을 주는 설교만 아멘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4장 3절,4절에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성경 말씀을 바르게 해석을 한 것인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순히 큰 교회의 목사의 말이다 인기가 있는 목사의 말이다 그것만 가지고 또 그 말이 듣기에 좋다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단의 단체에 속했는지 이단의 사상을 가졌는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서 말하는 사람인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라는 것도 때로는 귀에 듣기 거북한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듣기에 좋은 말은 우리를 속이는 말이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충성을 하는 것도 자신이 칭찬을 받고 기뻐하기 위해서 남들이 알아주고 칭찬하는 것을 듣기 좋아해서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신앙인이라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아직 신앙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이타적인 삶은 신앙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기분 나면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신앙인의 삶에 나타나야 할 아주 기본적인 자세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 보다 남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본문 15절 말씀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라고 했습니다.

신앙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자신의 기쁨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줌에 있어서 그 다른 사람의 대상은 먼저 연약한 자가 그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는 예수님께서 여러 잔치들을 예로 들면서 말씀을 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 중에서 사람이 잔치를 배설하고 사람들을 초청할 때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초청하지 말라"(눅 14:12)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도로 너희를 초청하여 그 신세진 것을 갚아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우리를 초청하여 그 신세진 것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 즉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눅14:14)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도와 줄 때나 좋은 일을 할 때 그래도 언젠가는 반대급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도와줍니다.
내가 지금 조금 베풀면 그 사람에게 나중에 내가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도와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그렇게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어 보았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예수님의 표현대로 한다면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원한 천국이 임할 때에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좀 인사를 받고 칭찬을 받는 것보다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는 그것을 받는 것이 얼마나 유리한가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고등학교 동창 중에 참 절친한 친구를 한 사람 가지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가장 어려웠을 때에 고등학교 학비를 내지 못해서 졸업을 할 수 없었을 때에 저의 학비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해 주었던 친구입니다.

저는 지금도 한 청년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청년은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거의 매 주일마다 몇 만 원씩 차비를 대 주었던 사람입니다.
어려웠던 시절에 그 몇 만 원들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힘이 되는 너무나 고마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혹은 이 자리를 떠난 우리 광성교회의 성도들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어렵게 시작한 교회였고 외형적으로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교회지만 열심히 충성을 하고 열심히 헌금들을 해 주어서 교회가 기적적으로 부흥을 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큰 교회가 되면 나도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헌금하겠다는 생각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가 큰 교회가 되고 성도들이 많아지면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하기 때문에 같은 헌금이지만 그렇게 값지게 쓰여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작은 교회일 때 교회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할 때 헌금한다고 교회가 여러분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없을 것 같을 때 여러분 자신도 좀 부족할 때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참으로 값진 참으로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을 충성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큰 교회에서 바치나 작은 교회에서 바치나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동일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렵고 가난한 사람 편에 계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려운 교회 작은 교회를 통하여 바치는 그 헌금은 더 소중하게 여기실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여러 자식을 둔 보무님은 모든 자식이 다 잘되기를 바라겠지만 그 중에서 못난 아들 가난한 아들이 같이 잘 살게 되기를 안타깝게 바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그 부모님의 마음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너무나 복받기 좋은 자리에 와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시는 작은 충성들이 하나님 나라에 큰 상급으로 쌓일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약한 자를 도와주어야 할 또 한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을 할 때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도덕성도 있고 교양도 있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좋은 사람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 내에는 좋은 사람보다 연약하고 나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의 예수님의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천국 잔치에 초청을 한 사람은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눅14:21)라고 하신 것처럼 지금 교회에 부름을 받은 우리도 그와 같이 비교적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하기를 "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26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지만 우리의 원래 모습은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너무나 많은 연약한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이웃을 기쁘게 하라
본문 2절 말씀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대상을 이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미리 대답을 하고 게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만난 자의 이웃은 가장 절실 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나의 도움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내가 도와주어야 할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아내 나의 남편 나의 부모님 나의 자녀가 나의 도움을 가창 필요로 하는 나의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웃을 사랑한답시고 자기 마누라 두고 남의 이웃 마누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웃을 사랑한다고 자선사업은 많이 하는데 자기 자녀들에게는 무관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웃은 사랑하는데 자기 자신의 생명은 돌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은 하나님 나 자신 부부 부모자식 가족 가까이 있는 사람 먼데 있는 사람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진정한 기쁨은 이 세상의 일로 얻는 만족감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서 받는 축복이 참된 기쁨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는 연약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실 연약한 존재입니다
약한 자의 그 연약함을 우리 서로의 강함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부모 나의 자녀 나의 형제가 나의 가족이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여러분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