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2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67)
본문 : 롬 15:3
제목 : 그리스도를 본받아

오늘 본문 말씀에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 자신을 기쁘게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여기에 기록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이 말씀 앞에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이라는 말은 바로 앞 절의 말씀을 받아서 하는 말입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대로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연약한 사람들과 나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하는 이웃을 기쁘게 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는가를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연약한 자와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친히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시편 기자를 통해 예언한 시편 69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가를 살펴보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내 자신의 기쁨보다는 연약한 자들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사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기를 원합니다.

1.예언의 말씀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당하는 고통들은 이미 예언이 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우연히 오셨다가 일이 잘 안되어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구원의 계획을 세우시면서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 계획을 아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의 길을 자처하고 그 고난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 고난의 예언의 말씀들은 구약성경 여기저기에 직접 간접적으로 많이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시편 69편의 말씀도 다윗의 경험과 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삶이 어떠할지를 예언해 주신 말씀입니다.

1)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도 많고(시69:4)
아무런 이유없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해하려고 하는 자들이 수 없이 많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잘못을 한 일이 없으셨습니다.
그들에게 미움을 받을 만한 잘못을 한 일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오셨는데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2)내가 내 형제에게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시69:8).
요한복음 1:11절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복음 7:15절에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의 육신의 형제들에게까지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9).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셨을 때, 그 사건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이 성구를 생각하게 했을 것입니다(요 2:17).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말씀을 전파하셨는데 그 열심히 오히려 비방거리가 되고 훼방거리가 되었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외쳤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비방했습니다.

가장 엄숙하고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 즉 기대를 걸 수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를 조롱했다고 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가장 비천한 자들, 가장 멸시받는 자들, 비류들, 시골의 쓰레기들, "미련한 자의 자식, 비천한 자의 자식"도 그를 조롱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술에 취한 자들도 예수님을 비방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환영받지도 못하고 불신을 당하고 비난을 당할 것을 아시면서도 굳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의 기쁨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을 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셨기 때문에 그 계획에 의해서 그 계획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의 길이 있다고 해도 그 일을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2.예수님의 삶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신 모든 삶이 고난의 삶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자체가 엄청난 비하의 길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인의 몸을 통해 나신 것 말구유 간에 나신 것 목수의 아들로 갈릴리의 촌사람으로 사신 것 죄인들과 연약한 사람들의 친구로 사신 것 광야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사신 것 그 모든 삶이 고난의 삶이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죄인 중에 가장 괴수 죄인이 받는 중형인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고난의 극치이요 그 형벌을 받으시기 전에 심문을 당하고 조롱을 받고 침 뱉음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신 그 모든 고난을 우리가 다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이런 수모를 당하셨을까요
왜 이런 수모를 당하시면서도 끝까지 참고 그 일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쁨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는 그 일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 받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며 우리의 모든 영혼의 상처들이 치유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고난 앞에 도수장에 끌려가는 잠잠히 참고 계셨던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하필 이런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을까요
우주의 주인이신 성부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절대주권자인 성부 하나님께서 왜 이런 방법으로 인간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을까요

그냥 어느 날 천둥같은 소리로 너희 인간들아 그 동안 너희들이 지은 죄를 다 용서할 터이니 이제부터 다시는 범죄하지 말고 살아라 그리하면 천국에도 들어올 수 있게 해 주겠다라고 말씀으로만 선포를 하셔도 누가 시비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필 이런 고통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셨느냐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미스터리 비밀입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할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이런 고통들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남을 위한 그 고통과는 원인도 다르고 고통도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삶에도 고통이라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 때로는 사업이 망해서 알거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못쓸 병에 걸려서 신음을 하기도 하고
사고를 당해서 가족이 죽기도 하는 이런 고통이 우리 앞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잘못을 해서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의 잘못과 전혀 관계도 없는 억울한 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통은 감수를 하겠는데 왜 나의 잘못도 없이 고통을 당하게 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필립 얀시라는 분이 쓴 "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필이면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필이면 왜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려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이런 고통을 제거해주시지 않으시냐는 것입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런 원망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필립 얀시라는 분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환자 촌에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 가니까 그 곳이 고통이 없는 곳이더랍니다.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이 문둥병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발이 작을 줄 모르고 신어서 발가락이 잘려 나갔고 어떤 사람은 마포걸레 자루를 얼마나 세게 잡아야 되는 모르고 꼭 잡는 바람에 손목뼈가 부러졌고 뜨거운 모르고 손에 불을 넣고 있어서 손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언제 깜박거려야 될지를 알지 못해서 장님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망치질을 못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껏 망치질을 하지만 하다가 손이 아플 지경이 되면 그 아픔을 감지하고 힘을 적당히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환자들은 아무리 힘껏 쳐도 손에 무리가 가도 느끼지 못하고 힘을 주니까 손목이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아 우리의 삶에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참으로 큰 축복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할 수 있는 것도 이 고통을 감지하는 세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 이상이 있을 때 이 세포가 신호를 보내서 아프게 하고 그 아픈 곳을 치료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고통들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가게 하고 더욱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도 이런 하나님의 법칙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법칙은 이런 고난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비밀이 있을 것이며 그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신 삶이 우리의 구원과 관계가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모범을 보이신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런 고난들을 달게 받고 사는 것이 유익할 것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3.우리가 당하는 고통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우리의 인생 길에도 각자에게 주어진 고난과 십자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고난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피해가려고만 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축복의 통로로 삼고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들이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참으로 큰 복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통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비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무런 아픔이나 고통이 없이 살면 좋다고 생각이 되겠지만 고통이 없는 세상은 나환자들의 세상이요 바보들의 세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통이 있기에 우리가 기쁨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우리의 쾌락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것도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엄청난 모욕과 멸시와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기쁨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통들을 참고 견딜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스스로 고난을 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수고를 통해 우리의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이웃돕기를 하는 것이고 그 이웃돕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고 우리가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서 또 하나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서로가 돕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게 되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필립 얀시라는 사람은 그의 책에서 사람들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되는가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미국에 마리아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답니다
26의 처녀였는데 그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루게릭이라는 병에 걸리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여러분도 처음 들어보신 병일 것입니다
이 병은 신경의 통제력을 파괴하는 병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처음에는 손과 발을 놀릴 수 없게 만들고 나중에는 호흡을 하는 것까지도 못하게 되어 주게 되는 병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전상적인 몸이었지만 한 달 후에는 팔을 못쓰고 또 한 달 후에는 다리도 쓸 수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대소변을 보는 것이나 심지어 눈물 콧물을 흘리는 것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비참한 몸이 되고 마는 그런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그런 병에 걸린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이나 은혜에 대해서 설명도 할 수 없었고 이야기 해 보았지만 조소만 보내 오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원망과 불평만 했습니다.

이제 의사는 더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가지 소원을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자기 집에 가서 2주 동안만 보내다가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2주 동안 병원이 아닌 집에서 그녀가 살기란 돈도 많이 드는 일이고 수행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야 되는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기독교 단체에서 그 일을 해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필요한 돈을 그들이 부담하고 그들 중 16명의 부인들이 조를 짜고 24시간 그의 곁에서 간호를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2주동안 그들은 그녀의 대소변을 받아 내고 필요한 조치를 하면서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정성을 다해서 간호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기 사람들 그 기독교인들의 정성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한 예배에서 세례를 받고 기쁘게 하나님 나라로 갔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함으로서 우리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고난이라는 고통이라는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고통이라는 것이 참으로 유익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 서로가 고통을 나누고 희생을 감수하면서 서로 도울 때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고통을 참고 견디며 오히려 그 고통에 동참함으로 그 고통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어려운 사람 약한 사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