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1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70)
본문 : 롬 15:7-9
제목 : 서로 받으라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쪽발이라고 부르고 그들과 시합을 하면 무엇이든지 이겨야만 식성이 풀립니다
과거에 그들이 우리 나라 주권을 침해하고 우리 나라에 와서 저질렀던 만행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북 사람들이 지금도 미국하면 이를 갈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6.25전쟁 때 미군들이 이북에다가 엄청난 폭탄을 퍼부어서 도시들이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피해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하면 이를 갈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랍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알라라는 종교적 분쟁 때문에 조금도 서로 양보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힘을 가지고 밀어 붙이면 테러를 통해 보복을 하고 테러를 하면 그것을 빌미로 전쟁을 선포하고 나라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이런 과거의 전쟁과의 관계로 또는 종교 관계로 그리고 경제적 이익 관계로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이런 갈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헬라 사람들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을 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로마제국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에 로마 사람들과 아주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신들을 섬기는 로마 사람들과 헬라인들을 이방인이라고 하여 야만인 취급을 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당시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힘으로 밀어 붙이며 지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유대인들과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의 관계는 앙숙일 수 밖에 없었고 서로 증오하며 갈등과 대립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 있는 사람들이 한 교회 내에 모였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청난 갈들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함께 모였지만 교회 내에 작은 충돌은 서로 있었지만 교회를 분열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 헬라인과 로마인, 흑인과 백인, 가난한 사람과 부자 등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사람들을 받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세리나 창녀들까지도 아무런 조건이 없이 받아 주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도 서로를 받아 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교회 내에서 서로 반목하고 서로 다른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분열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서로 서로를 받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다 받아 주셨던 것처럼 우리 서로도 아무런 조건이 없이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단일 민족이요 단일 언어를 쓰고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불신하고 반목할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분열될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가진 철학이나 자기가 경험한 환경 속에서의 각각 다른 인생관과 가치관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를 받아 주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어떻게 모든 사람을 받아 주신 것과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받아 주어야 할 것인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서로가 반목하지 않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받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영 죽을 인생을, 영원히 멸망당해야 마땅할 우리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8절 9절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받으셨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과 그리고 이방인들을 차별하시지 않으시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1)유대인들을 받으신 예수님
8절 말씀에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인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이며 인으로 받게 한 것입니다.
이방인과 구별되어 선택받은 선민의 상징으로 실시되어온 할례는 유대인의 약속과 특권의 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태어나셨고 또 친히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계약인 할례의 법에까지 순종하셨을 뿐 아니라 언약을 맺은 계약 백성 중의 하나가 되셔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수종자' 곧 '봉사자'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특히 '수종자'란 말이 가리키는 의미는 '종' 또는 '섬기는 자'란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종으로서 낮게 되시기까지 하여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친히 수행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행했던 죄악들을 생각하면 그들을 당연히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하고 조롱하고 끝내 붙잡아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던 그 유대인들을 예수님께서 받아 주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박수를 치고 좋아하면서 이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라고 외쳤던 그들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죄가 된다면 자신들과 자신의 자손들이 달게 받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그들입니다.

그런 원수같은 유대인들을 예수님께서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그들을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이 신실하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2)이방인들을 받으신 예수님
본문 9절 말씀에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께서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받으셨지만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면서 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없었다면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무리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받으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고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2.우리 자신을 받아 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저 유대인들과 당시의 이방인들만 받아 주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면 뭔가 자격이 있거나 뭔가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함으로 그 공로를 인정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질렀던 저 유대인이나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던 로마 병정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멀쩡하게 차려 입고 여기 앉아 있지만 우리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추하고 더러운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어느 한 사람 하나님 앞에 나오기에 떳떳함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여기 이 거룩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참 당당하고 교만스럽게 옵니다
하도 사람들이 교회에 가자 우리 교회에 와라 우리 교회에 오면 뭘 해주고 뭐가 좋고 잔뜩 꼬아 놓으니까 아주 뭔가 자신이 뭐나 된 사람처럼 뻐기면서 옵니다.

어떤 사람이 30년을 하나님의 품을 떠났다가 교회에 온다고 왔습니다
자신은 그래도 30년 전에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떻니 교회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 주느니 라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30년 전에 교회에 왔던 사람이라면 30년 동안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그 삶에 대하여 몸부림을 치면서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몰랐으면 몰라도 하나님을 알면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제 멋대로 살던 사람이 어찌 고개를 들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교회에 올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받아 주시기는 합니다
30년 아니라 그 보다 더 못한 사람이라고 불쌍히 여기며 받아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은 그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다시 받아 주심에 대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감격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늘 용서해 주시고 늘 참아 주시니까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보응을 하신다면 우리 모두는 벌써 벼락을 맞아도 맞았고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비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감격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직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미안 하지만 아직 진리를 모르고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 모습 이 대로를 받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에 그 사랑에 감격하시기를 바랍니다
3.서로 받으라
본문 7절 말씀에 "너희도 서로 받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을 용서하시고 받으신 것 같이 
예수님께서 이방인들도 용서하시고 받으신 것같이 
예수님께서 우리같이 못나고 지저분한 사람도 받아 주신 것 같이 
너희들 서로도 서로 받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는 서로를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으로 부르셨습니다. 
나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아서 나와 너를 만드시고, 우리가 같이 살도록 하셨습니다. 

1)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하라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기억할 때 사소한 문제로 서로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은 한마디로 무엇을 먹고 안 먹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는 말입니다. 
안식일이나 주일을 다른 날보다 더 중요한 날로 여기 건 모든 날을 다 꼭 같이 여기 건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오 그분이 날 대신 죽으셨다는 것이요
그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이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교회가 이 중요한 것을 바르게 가르치느냐 엉뚱한 것을 가르치느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찬송을 어떻게 하느냐 분위기가 어떻느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 기도를 시끄럽게 하느냐 조용히 하느냐 목사가 잘났느냐 못났느냐 이런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사는 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교회에 와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무엇인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가
성경에서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가
예수 믿고 천국가자는 이 복음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계시는가
이런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서로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라. 
우리가 사실 잘못 이해하는 말 중에 하나가 한마음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같은 의견, 동일한 생각을 갖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하루아침에 벗어 던지고, 꼭 같은 생각으로 획일화 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꼭 같은 생각을 갖도록 강요하거나 획일화를 지향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독재국가나 이단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바울은 오히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22) 라고 말합니다. 
꼭 먹어야 된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조용히 먹고, 꼭 안식일을 다른 날보다 특별히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버리거나 고칠 필요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분명 동일하게 고백하고 믿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다르면 그는 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문제들은 동일한 생각으로 획일화 할 필요도 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됩니다. 
그저 각자 자신이 더 중요하다, 옳다고 여기는 바를 스스로 갖고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옳다고 여기고 행하는 바가 상대방에게 시험거리가 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는 것입니다. 
지혜 없이 지엽적인 문제로 자꾸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3)내가 변하려고 노력하라
다른 사람을 나와 같게 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먼저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고치면 너무나 쉽습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이 고쳐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 생각 내가 배운 것 내 경험이 가장 옳은 줄로 알고 살기 때문에 누구도 남을 변화 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내 스스로가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고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참으로 부족한데도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 서로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가 부족하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