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8.1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57)
본문 : 롬 14:10
제목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원동연 박사가 지은 DY학습법이라는 책을 보면 "고공의 법칙"이라는 학습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떤 과목을 공부할 때 먼저 높은 공중에 올라가서 하늘에서 전체를 한눈에 보는 것처럼 공부할 내용 전체를 먼저 한눈에 보고 각 부분으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이 고공의 법칙을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내 일평생 살아갈 길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를 그려서 전체를 알고 그 계획의 일정표를 따라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함에 있어서도 이 고공의 법칙이 적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설경전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고 로마서를 공부할 때는 로마서 전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먼저 안 다음에 한 구절 한 구절을 살펴보며 그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말씀 드리기 전에 우리가 배우고 있는 로마서의 전체의 내용을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로마서의 전체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성경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시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로마서는 1장에서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 무엇이냐고 할 때 복된 소식이라는 것은 알지만 무엇이 복된 소식인지는 잘 말하지 못합니다.

로마서에는 정확하게 무엇을 복음이라고 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오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16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7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복된 소식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알기는 율법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고 절기들을 지켜서 선을 행하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계속해서 인간이 구원을 받아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2-3장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죄인이요 하나님 앞에 범죄한자는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10-18)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인간들을 깨우쳐서 자신의 본분을 알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에서 구원을 받아 멸망 길에서 돌아서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할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계획에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이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10계명을 위시해서 여러 가지 규칙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오해를 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인생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그 율법을 지켜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율법 앞에서 스스로 그 율법들을 다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겉으로는 그 율법들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행세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19-20)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그 율법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우리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6-8)

이 죄에서의 구원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8장에 가면 우리가 이 믿음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으며 그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선택을 하시고 불러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9-3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불러주신 자만 이 믿음을 갖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3-39)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인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미리 아시고 구원받을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믿음을 갖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들이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자들이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자들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우리를 이 구원의 길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들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존재였으며 지금은 어떤 신분을 가진 자들이며 어떻게 이렇게 변화되었는가를 생각하고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오늘 본문 말씀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라고 했습니다.

1)"네가"라고 했습니다.
여기 "네가"라는 말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인 너 자신이 누구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잘남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사실 남을 판단할만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2)"네 형제를"이라고 했습니다.
네가 판단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라는 말입니다
네가 판단을 하는 그 사람도 네 형제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었는데 네가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3)'판단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리와 근거로 그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인데 어찌 너희가 자격이 없는 너희가 내가 사랑하여 내 자녀로 삼은 사람을 판단하려 드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아직도 율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고 선의 잣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율법을 두고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율법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서 잘 사나 못 사나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이 율법에 비추어 보아서 바르게 사는 사람인지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판단을 할 때 우리 자신도 그와 같은 형편이 되면 똑같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판단하려는 그 사람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그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을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우리의 형제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판단력은 그렇게 양호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자신의 경험과 내 자신의 지식 그리고 내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다른 생각과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똑같은 위치에 서 보지 못하고 상상으로만 판단을 합니다
그 사람과 똑 같은 위치에 서 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보모님 품안에서 자란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사람들의 그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끼니를 굶는 사람의 그 서글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가족과 사별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가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에게 배반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배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도가 나고 사업이 망하고 사고가 나서 불구가 되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고 연약하여 범죄를 한 다양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다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얇은 지식과 적은 경험으로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형편을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본문 말씀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라고 했습니다. 
"업신여기느뇨"라는 말은 강자가 약자를 멸시하는 태도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네가 업신여기는 그 사람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나의 백성 나의 자녀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인 나도 당연히 그를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는 나도 그를 정죄하지 않고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데 그런 자격도 없는 네가 왜 그를 업신여기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고 먹지 않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못지키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행하지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잘나고 못나고 똑똑하고 똑똑하지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시고 하나님께서 소중한 존재로 삼아 주셨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다가 못생긴 아이를 만났다고 아 그 녀석 되게 못났네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그의 부모님이 듣게 된다면 큰 일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내 자식은 사랑스럽기 때문에 말을 잘못했다가는 큰 일이 날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귀하고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이 교회 안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도 그와 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한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나의 판단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도 나처럼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을 받고 그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어 이 땅에 온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본문 말씀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를 함부로 판단을 하거나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믿는 자에게 심판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다르기 때문에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느냐 천국으로 가느냐 하는 그런 심판은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여러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심판이라고 할 때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살아가는 인생들이 잘못을 범했을 때 그 때 그 잘못을 심판하여 벌을 주시기도 합니다.
또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들과 사탄들을 지옥으로 몰아 넣는 최후의 심판도 하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심판은 그런 심판의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잘못을 따져서 지옥에 넣거나 천국에 보내는 그런 심판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생명을 얻었고 이미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심판이라는 말은 재판석에 앉아서 쓰는 용어로 사용이 되었기 때문에 그 심판들은 정죄의 심판이요 피고석에서 죄인으로 받는 심판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쓰인 심판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베마티(βηματι)라는 말로 이 말은 재판석이 아닌 운동경기장에서 심판이 서 있는 자리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즉 죄인이 아닌 운동경기를 하는 자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잘 못하면 바르게 하게하고 경기가 끝이 나면 그 거둔 성적대로 상을 주는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판석에 피고로 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점검을 받고 그 행한 대로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죄인으로 피고석에 서서 그들이 이 땅에 살 때 바르게 살지 못했음에 대하여 낱낱이 정죄를 받고 영원한 형벌로 끌려가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 앞에 서서 우리의 아주 작은 선행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준 일가지도 그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 복음을 바로 알고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멸시하고 때로는 나 자신도 내가 믿는 이 복음이 참 별 볼일이 없는 것처럼 생각이 되었고 많은 것들이 나를 유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의 이 믿음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소중한 믿음을 주신 우리 주님께 충성을 다하지 못했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행한 대로 상을 주시는 그 심판대 앞에서 내가 행한 것에 비해 분에 넘치는 상을 받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주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오늘 말씀에 기록된 대로 형제를 비판하고 형제를 업신여기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이 시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서로 일깨우며 우리 서로가 다 자랑스럽게 용기 있게 능력있게 살게 되는 그런 교회의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