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3.2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38)
본문 : 롬 12:15-16
제목 : 함께 서로 같이.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나이가 자기가 앉아 있는 배의 바닥에 구멍을 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라 아우성치자 그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이 자리는 내 것이므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마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 지나서 그 배는 가라앉아 버렸고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은 다 같이 함께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자신들을 모두 같이 한 배에 타고 가는 사람들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누구든지 잘 못을 저지르면 자신들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은 그들 모두가 잘 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서 서로 돕고 사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사는 유대인들이 서로 서로 도우면서 함께 같이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쓴 책이 나오면 전 세계에 사는 유대인들이 그 책을 사 주고 유대인들이 만든 물건을 전 세게 사람들이 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크고 작은 배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한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가족이라고 합니다.
또 교회라는 한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나라라는 한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요즈음은 지구촌이라고 하여서 우리 모두가 이 지구라는 한 배를 타고 이 우주라는 한 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 한 사람만 잘하면 된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서로 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함께"라는 말과 "서로 같이"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고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해져서 나 밖에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함께, 서로, 같이"라는 이 말씀은 참으로 귀한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1.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오늘 본문 15절 말씀 중에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라고 하셨습니다

최성수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이분을 잘 모르지만 조용한 노래를 부드럽게 잘 불러서 좋아합니다.
이 분이 부른 노래 중에 "동행"이라는 노래를 아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가사 중에 이 대목을 좋아합니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누가 나와 함께 같이 울어 줄 사람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이런 요구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요구에 하나님께서 미리 답을 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 주고 기뻐하는 자들로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리는 참으로 이상합니다.
보통으로 생각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잘 되면 기분이 좋고 다른 사람이 잘 못되면 가슴이 아프고 그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생들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될 때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오히려 배가 아파 오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극도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병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려면 다른 사람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다른 사람이 눈물을 흘릴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은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들 여러 가지 사고들 내 뜻대로 할 수 없어서 당하는 마음의 고생들 인간관계에 있어서 얽히고 설긴 고통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과 고통을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비웃고 고소해 하지 말고 정말로 그 아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상처를 싸매 주고 그 고통을 덜어 주고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을 기억한다면 이 우는 자들이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을 당해서 우는 것이 아닌 우리 성도들만이 가질 수 있는 슬픔이 있을 것입니다.

1)죄 때문에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사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고통들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 인류의 죄가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같이 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인류가 지은 죄 그리고 우리 조상이 지은 죄 나 자신이 지은 죄를 안타까워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한국교회의 부흥은 회개운동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는 늘 죄 때문에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 사람들은 무슨 죄가 저렇게 많기에 교회만 가면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는가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회개하고 우는 사람의 모습을 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옛날 사람들처럼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오늘날은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짓지만 회개하지 않고 안 그런 척하고 바르게 사는 척하고 가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양심들이 이제 무디어져서 웬만한 잘못에는 별로 가슴이 아프지 않고 눈물이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나 혼자 울기도 뭣하고 나 혼자 울면 아이고 좀 바르게 살지 뭔 죄는 그렇게 많이 지어가지고 그 난리를 해 하고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있기도 할 것입니다.

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우는 사람이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같은 마음을 하고 서로 자신의 죄를 우리 모두의 죄를 생각하면서 울어 줄 사람이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2)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사실 우리의 죄 문제가 심각한 문제이지만 진리를 알고 나면 우리의 모든 죄가 주홍같이 붉은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울 때 단순히 죄책감에 대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흉한 우리의 죄를 간단하게 용서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우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면 감격하여 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은혜에 감격하여 울 때 함께 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함께 울어 주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울고 우리 모두의 죄 때문에 우는 사람이 많아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많이 받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함께 우는 자들이 많아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라
역시 본문 15절 말씀에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구조가 다른 사람이 즐거워할 때 같이 즐거워 할 수가 없는 그런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경쟁의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 되면 나는 잘못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사는 것 때문에 내가 비교적인 가난을 느껴야 하는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구조 때문에 남들이 잘 되면 배가 아파 오고 상대적으로 나는 서글퍼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겉으로는 잘했다고 축하한다고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하는 것이 오늘날을 사는 인생들의 마음입니다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친형제처럼 친 부모자식처럼 진심으로 사랑할 때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즐거움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즐거움이 아니라 특별한 즐거움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즐거워하는 일에 덩달아서 즐거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야 이리와서 한잔 해 봐 기분이 좋아 그리고 한잔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춤을 춰 봐 참 기분이 좋아 이런 말에 함께 동조해서 술 마시고 춤추고 탈선하고 하는 그런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진리를 아는 즐거움에 함께 즐거워하라
무엇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이나 배우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상식을 많이 아는 것도 참 즐거운 일입니다
상식을 자세히 설명하는 과학을 아는 것은 더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으로도 설명을 할 수 없는 이치를 설명하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상식으로 과학으로 철학으로 설명을 할 수 없는 이 우주의 이치나 인생의 근본을 알게 하는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대단한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아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교회에 와서 이 진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도 말해주지 못하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 복음의 진리를 우리는 배우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2)하나님을 섬기고 다를 사람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자들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가 이 우주의 주인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섬긴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 의미를 모르고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니까 힘이 드는 것이지 진실을 알면 하나님을 섬기는 이 일은 너무나 즐거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도 사실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봉사의 기쁨은 봉사를 한 사람만이 압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난 다음의 기쁨은 참된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모르고 억지로 하니까 노동이 되지만 남을 위해 봉사하는 그 기쁨을 알면 그것이 우리에게 참으로 큰 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3)천국의 소망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자들로 함께 기뻐하라
천국의 소망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기쁨입니다
내가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그 기쁨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의 일들에 너무 급급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좀 돈을 더 벌고 덜 벌고 이 세상에서 출세를 좀 더하고 덜하고 이 세상에서 좀 더 즐기고 못 즐기고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이야기하면서 기뻐하는 자들로 함께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3.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겸손하라
본문 16절 말씀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겸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않는 것이 겸손의 지름길입니다

겸손은 서로 같이 함께 하여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겸손 하려고 하는데 상대방도 같이 겸손해 하면 참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겸손 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상대방이 폼을 잡으면 겸손이 계속되어지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자세를 낮추면 나도 함께 겸손해 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하도 험하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큰소리를 먼저 쳐야 합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일단은 먼저 큰소리를 쳐 놔야 된대요
좀 말을 좋게 하면 얕잡아 보고 바가지를 씌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큰소리를 뻥 뻥치고 없어도 있는 것처럼 해야 사람들이 고분고분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스스로 낮은 데 처할 때 바른 세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단순히 겸손을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기보다는 앞 절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씀을 하신 것으로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는 자들로 함께 울기 위해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우월하다는 마음을 가지면 다른 사람이 잘될 때 진정으로 즐거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선하다고 생각을 한다면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진정으로 함께 울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세를 낮추고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못하다고 생각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진정으로 박수를 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할 대 진정으로 함께 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즐거워해줄 진정한 친구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서로의 자세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울 때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그런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