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2.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29)

본문 : 골 3:20-21

제목 : 자녀들아.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 모든 것이 다 완벽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다 말씀대로 살게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왜 이 세상에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가 이렇게 못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도 우리나라에 이렇게 교회들이 많은데 왜 사람들이 부도덕하게 사는가? 라고 교회를 은근히 비난했다고 합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교회를 오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잘살게 해 주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 잘 살게 하실 의무가 없으시며 교회에 다니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고통을 당하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가 아무리 진리를 잘 알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완벽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그렇게 원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육신이 이미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또 세상이 그렇게 바르게 살도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면서 그 죄 사함에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고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노력을 하면서 살 뿐입니다.

 

이렇게 부부관계와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말씀을 강하게 외칠수록 우리 성도님들은 주눅이 들고 죄책감에 들게 될 것 같습니다.

 

목사는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하고 죄 사함을 선포하여 마음의 평화를 이루면서 살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마음의 근심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아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며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을 통하여 이미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 주셨고 영원한 나라를 주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제가 드리고 있는 이 인간관계의 교훈은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 서로가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법이라도 알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이라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는 절대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구원받게 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서로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서로가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서로의 사랑이 결정이 되는 상대적인 사랑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남편이 아내를 전적으로 사랑할 때 아내는 남편에게 전적으로 복종을 하게 됩니다.

아내가 전적으로 복종할 때 남편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서로간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무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노엽게 하지 않고 기를 죽이지 않고 바르게 교육을 했을 때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자녀들아

오늘 본문 말씀에 “자녀들아”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고 자녀가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부모님이 다 세상을 떠났거나 곁에 계시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서 사는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부모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부모님만이 내편이 되어주시는데 그런 부모님이 없이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정말로 큰 불행입니다.

 

여러분이 부모가 되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아이 곁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아이를 두고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하게 살고 죽지도 말아야 합니다.

혼자 울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이 계시기는 하지만 안 계시는 것과 같거나 안 계신 것보다 못한 부모님을 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다 부모님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지병 때문에 어떤 사람은 삶의 실패로 인해서 부모님 노릇을 잘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자녀에게는 부모님이 계시고 그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낳아주신 것만 해도 감사를 받으실 분입니다.

자녀들은 자신의 보무님이 어떤 형편이든지 부모님께서 날 낳아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형편으로 부모의 노릇을 잘 못했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이 없이는 내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순종을 하라고 하기 이전에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내가 부모라고 말할 수 있도록 부모로서의 책임일 다 해야 할 것입니다.

낳아준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고 굶기지 않고 키워준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부모로서의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잘 몰라서 못했고 또 알아도 형편이 없어서 못해주었다고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한 것 좀 해주고 생색을 내는 것을 자녀들이 싫어합니다.

널 내가 낳았고 널 내가 키웠고 너에게 이것저것 해 준 게 많은데 너는 나에게 왜 효도 안하니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준 것은 당연하게 해 준 것이지 자랑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 방식을 따르라는 것 싫어합니다.

옛날에는 뭐가 없어서 과학이 발달되지 못해서 옛날 방식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옛날과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이 좋은 세상에서 좋은 것 누리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들이 신 세대를 배워야 합니다.

세월을 따라 문화 생활하는 것을 배우고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새롭게 변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따라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들 방식으로 생각하고 그들 방식으로 신앙생활도 해야 합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그 진리를 따라 사는 법은 늘 바뀌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악기가 없어서 무악기로 예배를 드렸는데 이렇게 좋은 악기가 많은 세상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고집하면 안 됩니다.

시를 쓸 줄 모르고 작곡을 하지 못해서 옛날 사람이 부르던 찬송을 불렀는데 지금은 다들 시도 쓰고 작곡도 하는데 왜 옛날 사람이 부르던 찬송만 고집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정서가 엄청나게 바뀌었는데 옛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그대로 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효도를 받을 수 있는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에 무엇이든지 순종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앞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그들에게 순종할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라고 하면 우리 스스로가 아이들을 불효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2.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본문 말씀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라고 했습니다.

아내들에게는 복종하라고 했고 자녀들에게는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둘 다 때로는 순종으로 때로는 복종으로 번역이 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복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탓소(ὑποτάσσω)라는 단어는 탓소(τάσσω)라는 단어 즉 순서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휘포((ὑπο)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순서가 먼저인 것을 인정하고 그 아래에 자신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순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휘파쿠오(ὑπακούω)라는 단어는 아쿠오(ακούω)라는 단어 즉 듣다 청취하다 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아래 자신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라는 말은 부모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그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복종이라는 말과 다르게 무슨 말이든 무조건 순종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부모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그 말씀이 바른 말씀인가 잘 판단을 해서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는 복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설사 이해가 좀 안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좋은 말씀이고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말씀은 때로는 우리가 따라서는 안 되는 말씀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지혜나 지식에 있어서 한계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옳지 않은 말을 했을 때 따르지 않아야 될 말씀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자녀들에게 부모님께 순종하라고 하시면서 “주 안에서”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이 주 안에서 합당한 말씀일 때 그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로새서에서는 “주 안에서” 대신에 “모든 일에”라고 하셔서 좀 혼란스럽습니다.

두 말씀이 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신 말씀인데 하나는 “모든 일에” 하나는 “주 안에서”라고 다르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말씀 중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은 “주 안에서”일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먼저 그것이 주안에서 즉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올바른 말씀인지를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가 장성하지 못해서 아직 그것이 주 안에서 하는 말씀인지 주님 밖에서 하시는 말씀인지 구별이 안 될 때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구별이 될 때는 그 말씀이 주 안에서 하시는 말씀일 때만 순종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지 못하게 하거나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말씀이 비록 부모님의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일에”라는 말씀은 그 말씀이 주 안에서 하시는 말씀일 때 비록 그 말씀이 나에게 불리한 것 같고 실천하기 싫고 힘 드는 말씀이라고 해도 그 말씀에 순종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일 하기 쉬운 일에만 순종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일 즉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그 말씀을 잘 듣고 순종을 해야 합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주 안에서 모든 일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주 안에 있을 때 모든 일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3.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기쁘게 하는 것인지 본문은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이나 새번역 성경은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까요?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계명이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 1에서 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고 5계명부터는 인간들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인간들 사이에 지켜야 할 가장 첫 번째인 5계명이 부모님께 대한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에베소서 6장에서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라고 하시고 바로 뒤에 십계명과 관련된 말씀을 추가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다른 계명에는 금지령만 있고 잘 지켰을 때 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의 경우에만 상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고 다른 우상을 만들지도 않고 하나님만 섬기는 자에게는 수천대가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에게는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수천 대에 이르도록 은혜를 받고 싶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장수하시고 싶으신 분은 부모님을 공경하면 됩니다.

 

제가 잘 아는 분이 정말 부모님을 효성스럽게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장수는 하지 못하고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도 믿지 못하겠다고 불평을 하십니다.

남자 평균연령이 70이라고 하면 효도하는 사람은 80이나 90은 살아야 되는데 평균연령도 못 채우고 돌아가셔서 마음이 섭섭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이 진행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는 사람도 불행해지기도 하고 선한 일 좋은 일 많이 해도 잘 못 사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신바람 박사 황수관 박사 같으신 분은 건강전문가라서 정말 오래사실 것 같았는데 뜻 밖에 대비하지 못한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특별한 경우도 있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효도는 잘 했지만 일찍 하나님나라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고 효도하지 않았으면 더 일찍 돌아가실 수도 있었지만 효도 때문에 그 때까지 사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비교적 더 잘 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시고 싶으시면 부모님을 더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상급을 떠나서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 부모님의 부모님이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부모님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사시는 분들이라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도 좋아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잘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함께 사는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계명이며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특별한 상급까지 언급된 계명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