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35)

  본문 : 행 2:42   

  제목 : 서로 교제하기를 힘쓰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우리는 금년 들어서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우리 교회의 본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그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이 제일먼저 무엇을 했는가를 말씀하는 중요한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이 이미 성령님의 임하심으로 나타난 기적들을 체험한 사람들이고 성령 충만하여 외치는 사도들의 설교를 들었고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고 회개도 했고 세례도 받아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헌신적으로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중생한 영혼 즉 거듭난 영혼을 가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갓난아이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성하면 단단한 것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성도들에게 영의 양식으로 계속해서 말씀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도는 계속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서로 교제하고”라고 하신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설교를 하면서 여러 주석들을 참고하지만 최근에  칼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칼빈이야말로 정말로 바른 교회로 개혁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고 정확한 성경해석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칼빈의 주석에 의하면 여기 “서로 교제하고”라고 하는 말씀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하나는 이 “교제”가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성찬예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뒤에 나오는 “떡을 떼며”하는 말 속에 성찬이 들어 있고 교제는 성찬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교제가 신자들 간의 친교, 구제, 신자 공동체와 관련된 어떤 다른 의무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교제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의 열매 혹은 결과로서 거기로부터 따라 나오는 것들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이 그 가르침에서 배운 것을 삶에 실천하는 것이 서로 교제를 힘쓰게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알아야 면장을 하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뭘 모르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는 것으로 끝나면 그 아는 것이 별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을 배워서 아는 것은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지 아는 것 자체가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중에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이나 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사람은 그 책임이 더 클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서 배우는 것을 되게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배운 것을 잘 써먹으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배운 것 자체만 가지고 많이 배웠다고 자랑이나 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데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르침 받기를 힘쓰고 그 배운 것을 실천하여야 하는데 그 실천의 첫째가 모여서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에클레시아(ἐκκλσία)라고 합니다.

  그 뜻은 집회, 회합, 모임, 모인 무리 등의 뜻으로 해석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내어서 따로 모이게 한 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말에는 이 모임을 가르칠 교(敎)자와 모일 회(會)자를 써서 교회(敎會)라고 합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한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 하면 가르치는 곳 설교를 통해 성경공부를 통해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귈 교(交)자와 모일 회(會)자를 써서 교회(交會)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귀고, 교제하고 하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교제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도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꾸 모이고 모여서 서로 교제를 나누었던 것은 그들의 신분이 특별한 신분이었고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고 서로 축하하고 서로 기뻐하고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세상에서 교제하는 모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학교 동창회도 있고 고향 사람들이 모이는 향우회도 있고 같은 조상을 가진 종친회도 있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동호회도 있고 여러 가지 모임들이 있습니다.

  뭔가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가지고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라는 모임에 함께 모이는 것은 여기 모인 우리는 특별한 신분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가진 신분은 동창이나 동향이나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함께 모입니다.

 

  마음 같으면 아예 이 세상을 등지고 산골에 가서 우리끼리 함께 살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서 살라고 하시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이라도 이렇게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의 신분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다른가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엄청나게 달라진 신분에 대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기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세상에 나가서 재미있게 살지 못하는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모임에 오기를 싫어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세상 사람들과 만나서 재미있게 놀려고만 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수시로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하지만 그 달라진 신분에 대해서 감격하고 감사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듣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곧 죽고 없어지고 영원히 멸망을 당할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거듭나서 저들과 다른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라보고 제 마음대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미워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상을 받고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두려워하고 슬피 울면서 이를 갈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기뻐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를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탄의 지시를 받아서 망할 짓만 골라서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게 보람되게 사는 멋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많은 것들 중에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대목은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창세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동창회를 가끔 가는데 마지막 헤어질 때 부르는 노래는 노사연의 ‘만남’을 꼭 부릅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운명 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라는 노래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의 만남은 진짜로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섭리가운데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우리가 만난 특별한 만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모임보다 우리의 모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매주일 매일 이렇게 만나고 또 만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교제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모여 있다가 누가 고발을 하면 잡혀가서 감옥에 가기도 하고 사자 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함께 모이기를 좋아했습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분명 그리스도인 같은데 함부로 물어볼 수가 없어서 땅에다가 물고기 한 마리를 그려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잡은 물고기는 익뒤스(ἰχθύς)라고 하는데 그 철자들을 첫 자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원자가 되신다는 뜻이 있어서 물고기가 성도들의 암호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한 마리 그려놓고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기뻐서 껴안고 인사를 하고 기뻐하는 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다가 들키면 목숨을 잃기 때문에 저 공동묘지나 동굴 같은 척박한 곳에 숨어서라도 함께 모여서 살던 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니다.

 

  오늘날은 누가 모여도 시비하는 사람도 없고 또 함께 모여서 마음껏 교제하고 마음껏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이기를 꺼려하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모르거나 아예 하나님께 선택을 받지 못해서 신분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영원히 죽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귀한 신분이 되어서 이렇게 큰 복을 누리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해서 모이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설교나 하고 잔소리나 해서 사람을 괴롭히는 곳이 아닙니다.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그 기쁨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가는 길이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시골에 학교나 시장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거나 학교를 갈 때는 늘 함께 모여서 같이 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우리 어려서 학교에 가는 모습은 함께 모여서 줄을 서서 같이 갔습니다.

  시장에 가는 것도 장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갔습니다.

 

  혹시 혼자서 길을 나갔다가도 동행을 만나면 함께 갑니다.

  산길을 가면 산짐승도 나타나고 귀신도 나타나고 산적들도 나타났기 때문에 함께 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모여서 같이 가면 힘도 덜 들고 서로에게 의지도 되고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줄어들기 때문에 함께 가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끔 보면 어떤 사람은 나는 예수님은 믿는데 교회는 안 가 예수님만 믿으면 되지 교회는 뭐 하러 가는 거야. 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그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우리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하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우리가 가야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배워서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길인가를 점검해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와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배우면서 본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험한 세상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기가 편한 좋은 세상이 된 것 같지만 신앙인으로 살기에는 점점 더 어려운 것이 이 세상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처음에는 핍박으로 고난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방해했지만 지금은 작전을 바꿨습니다.

  아주 편안하게 아주 행복하게 사는 길을 마련해주고 우리가 거기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돈으로 명예로 이성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시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어버립니다.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 버립니다.

 

  텔레비전에 자주 재방송이 되는 ‘데이큰’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어린 딸이 친구와 함께 외국에 여행을 간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어린 딸을 보호자도 없이 외국에 보내는 것이 걱정이 되어서 안 보내려고 했지만 엄마와 딸이 너무나 조르는 바람에 허락을 하고 맙니다.

  그런데 염려했던 대로 딸이 아주 악한 악당들에게 끌려가서 비참한 신세가 된 것을 알고 아버지가 마침 정보부에 있던 사람이라 혼자 달려가서 악당을 무찌르고 딸을 구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세상에 혼자 빠져버리면 보통 사람들은 그 아이를 구해오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런 위험한 길을 혼자가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모여서 우리끼리 교제를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탄은 반드시 혼자 있는 사람을 유혹합니다.

  혼자 있으면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뭘 혼자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 함께 의논을 하십시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하면 꼭 사기를 당하고 꼭 혼자 하다가 사고를 칩니다.

  같은 길을 가는 성도들과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서로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요 그것이 성도들이 함께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 달에 한번쯤은 기관별로 교제를 가지려고 하고 멘토링 활동을 하는 것은 함께 모여서 함께 세상을 사는 것을 배우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공부를 하는 것 보다는 그 배운 것을 삶속에서 함께 실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아이들을 혼자 있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들 혼자 세상에 나가도록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혼자 있지 마시고 혼자 세상에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며 섬겨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지만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다들 사랑만 받으려고 하면 누가 사랑을 해 줍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것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사랑만 받아야 하고 섬김만 받아야 하는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 동안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서로를 섬기지 않으면 우리를 사랑하거나 섬겨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사랑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섬김을 받기도 하고 섬기면서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오래 산 사람들은 특별히 험한 세상 경쟁의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많이 해 분 사람은 눈치가 늘어서 남을 섬기지 않습니다.

  남을 섬기는 것만큼 손해를 보는 것이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면서 살아야지 주기만 하는 사람은 손해만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도 깍쟁이처럼 살려고 합니다.

  최소한의 의무만 하고 대강 적당히 편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머리가 좋고 깍쟁이 같은 사람 곁에 있으면 얻어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섬기거나 봉사를 하면 나만 손해만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섬기거나 봉사를 하기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세상은 섬기는 일을 하지 않고 다 자기 욕심만 채우는 곳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여기 교회는 세상과 다른 곳입니다.

  사랑하고 섬기고 살면 더욱 행복해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할수록 섬길수록 행복해지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키워보면 그 짐승들이 사람들과 달리 얼마나 말을 잘 듣고 얼마나 주인에게 잘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먹을 것 조금만 줘도 꼬리를 흔들고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내 자식이라고 해도 잘해주다가 어쩌다가 성질한번 내면 금방 토라져 버리고 그동안 잘 해 준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성질한번 낸 것 말 한마디 잘못 한 것 가지고 평생 원수처럼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애완동물들은 끝까지 변함없이 믿고 좋아하고 따릅니다.  

 

  그래서 애완동물을 키워보면 사람들이 싫어집니다.

  사람이 애완동물만도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실망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싫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다가 보면 점점 사람들을 대하기가 싫어지고 누군가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화가 나고 참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화가 나는 말을 해도 참고 들어줄 줄줄도 알고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 사람들과도 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이 세상을 살면 결국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곁에 사람이 없어집니다. 혼자 외톨이가 됩니다.

  자기 고집만 세우고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화를 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이해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배반하고 잔소리 하고 짜증내고 이기주의적인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그 어느 곳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사랑을 하고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누구와도 사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교회에 오면 어떻게 하든지 사랑을 베풀고 섬기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교회에 오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는 대상이 다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가르침을 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함께 모여서 교제를 나누는 곳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같이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서 같은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섬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늘 함께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사랑하고 성기기를 힘씀으로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