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51)
  본문 : 행 3:17-18   
  제목 :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어떻게 하든지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을 통하여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최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을 살다가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것이 도덕적이든지 비도덕적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남을 속이고 남에게 많은 피해를 입혀가면서도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교회도 장사 속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처럼 교회도 진리가 아닌 거짓으로 속여서 복음 아닌 이상한 잡동사니를 팔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보다 돈이 되는 세상 복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물질주의에 속한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나 신학 사상이 정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속한 것인지 복음에 속한 것인지 점검을 하지 않고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목회자가 있는 상술적인 교회에는 꼭 있어야 할 진리 꼭 있어야 할 십자가의 복음이 없거나 무시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기독교의 교회인데 거기에 예수님은 안 계십니다. 
  교회당 건물에 십자가는 높이 올라가 있는데 그 안에 십자가의 복음은 없습니다.  
  성경은 읽으라고 하고 성경을 보고 설교는 하는데 성경의 핵심 진리는 선포되지 않습니다.

  교회도 교회를 운영하고 구제나 선교를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른 진리가 선포되어야 하고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 최선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이런 세속적인 교회를 따르지 않고 바른 진리를 선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교회에 다니면서 꼭 얻어야 하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어쩔 수 없이 때로는 속기도 하고 사기도 당하고 배반도 당하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진리의 말씀에는 사기를 당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일에 속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고생으로 끝이 나지만 진리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사기를 당하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좌우되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알지 못하여 실수를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잘못된 지도자들에게 잘못 배운 것 때문에 잘 알지 못하여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바르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여러분의 마음이 진리를 바르게 받아드리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본문 말씀에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이 되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많이 알면서도 성경의 핵심인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이후에 그 죄의 형벌로 인하여 죽게 되고 멸망당할 인간들 중에서 얼마만큼은 구원을 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구원계획을 이 세상에서 이루어나가셨습니다.

  구역성경의 역사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역사의 중심이었습니다.
   
  그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을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노아시대에 온 세상 사람들이 죄로 인해서 홍수로 인해 물에 빠져 죽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해 주시면서 그 구원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종노릇 할 때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탈출시켜 가나안 땅에서 살게 해 주시면서 구원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선지자들을 보내주셔서 그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메시야가 어느 가문을 통해서 오시며 어디서 어떻게 나시며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 역사 속에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산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 중요한 핵심을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중요한 핵심인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겉모양만 알고 그 핵심내용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 강하게 불어 닥친 바람이 성경공부입니다.
  지금도 제자훈련이니 양육이니 해서 성경공부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배워서 많이 알겠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반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은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잠깐이면 배웁니다. 한 시간이면 다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 간단하고 쉬운 것을 몇 년 동안 배우게 하니까 핵심은 놓치고 오히려 엉뚱한 것을 배워서 엉뚱한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또 머리로만 알고 행동이 없으니까 죽은 믿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주 설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서 실천하려고 해야 하는데 다 안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신 말씀을 놓치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제 그만 연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사시면 됩니다.
  날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다면 다른 것을 더 알고 말고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여서 그렇게 행한 일은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고 선동하고 데모를 한 일입니다.
  심지어는 그 죄를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큰 소리까지 친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것을 모르니까 자연스럽게 그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반드시 알아야 했던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은 대부분 잘 모르면 약간의 잘못된 길로 갑니다.
  법을 잘 모르면 법을 조금 어기게 되고 예의를 잘 모르면 실례를 조금 하고 그런 정도로 행동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 핵심인 예수님을 모르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그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잘 모르면 신앙생활을 좀 못하는 그런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16절의 말씀에 있는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믿음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받는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가지게 되는 믿음은 예수님 이름 안에 있는 구원을 받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교회에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엉뚱한 일을 행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애써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받지 않는 교만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하심 아래 놓이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자, 선한 일을 많이 하자, 착하게 살자, 다 좋은 말이고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왜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지 왜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그렇게 살아서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면 자신이 의롭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십자가를 반대하는 엉뚱한 일을 행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 끔찍한 일을 하게 한 것은 그들의 지도자들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에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너희들이 먼저 그렇게 하고 지도자들이 그렇게 따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희들이 지도자들처럼 그렇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선동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잘 모르고 바르게 배우지 못해서 그런 악한 일을 저질렀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앙에 있어서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 온유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는 욕을 하면서 꾸짖으시고 화를 내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셨는데 우리말로 하면 “개자식들아”라는 정도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서 권력에 눈이 어두워서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짐승을 가져와서 제사를 드리게 하고 돈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고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받들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했던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바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도 바르게살기가 힘이 드는데 엉터리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엉터리로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좋은 지도자들을 만나서 바른 믿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바르게 받아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사람들입니다.
  칼빈이나 루터 같은 지도자들의 개혁주의 사상을 바르게 이어받아서 바른 믿음의 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이단들 수많은 거짓선생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알도록 해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진리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본문 18절 말씀에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잘 못 알고 엉뚱하게 행동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 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실 일은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것이 예정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예정 된 일에 악역을 담당한 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선한 역을 감당해야 할 그들이 오히려 악역을 담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서 미리 알려주신 일입니다.
  시편이나 이사야를 비롯한 선지서에서 우리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것을 미리 예언했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은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그 현장에서 기록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만물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드는 사람 몇몇 사람 불러서 죄를 용서한다고 선언해주시고 나머지는 다 지옥 불에 쓸어 넣으시든지 없애버리시든지 하시면 될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하셔야만 했는지 우리는 그 뜻을 잘 모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런 무지비한 행동을 하는 악한 신이 아니시며 공의를 행하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차원 높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대속의 죽음이 필요하고 그것도 아무나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대신 십자가를 져야 하는 그런 특별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는 최고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했다면 우리도 그 십자가의 사랑을 최고의 사랑으로 받고 그 십자가의 고난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바르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그들이 했으니까 그들을 나무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그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들이 안 된다고 반대를 하고 못하도록 방해를 해도 그 일은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을 위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서 해야 될 일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악한 일을 왜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인생의 의미도 모른 채로 살다가 죽고 멸망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는 일 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만 하고 벌 받을 일만 저주 받을 일만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바르게 잘 알지 못해서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처럼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진리를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위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쓰고 주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진리를 바로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평안하게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사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 만족할 만큼 우리가 받은 은혜가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고난의 삶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참된 평안을 누리고 참된 행복을 누리고 살지만 
세상 사람들이 가치관으로 볼 때 우리가 가는 길은 좁은 길이고 우리가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이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의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제가 목회 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내가 채워야 할 고난이 아직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있고 내가 감당해야 할 희생과 헌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평안과 행복은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해야 할 일들이 다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악한 역을 맡은 사람이 아니라 선한 일을 맡은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일을 맡았으면서도 그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 선한 일을 멋있게 깔끔하게 아주 잘 감당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제들아

  “이스라엘 사람들아” 라고 부르면서 설교를 시작하며 그들의 잘못을 설명하던 베드로가 그 호칭을 “형제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형제들로 호칭을 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별한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 형제들아 라고 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에게는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는 너희가 잘 알지 못하여 그랬다고 동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것이 형제 된 우리가 즉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누리는 참되고 거룩한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길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로 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사람들은 진리의 길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이 좁은 길이고 십자가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기쁘게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른 진리를 알고 바른 믿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진리의 길 십자가의 길을 기쁘게 행복하게 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