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58)
  본문 : 행 4:5-10   
  제목 : 하나님이 다시살리신 예수 그리스도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우리나라의 공부는 선생님이 강의를 하고 학생들은 그것을 외우는 암기방식의 공부라고 한다면 유대인의 공부는 함께서 모여 서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고 토론을 하는 공부라고 합니다.
  무조건 가르쳐주는 것만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을 질문하고 그 대답을 가지고 토론을 해서 나의 지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설교를 들으셨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에 대하여 박사가 되지 못한 것은 설교가 대화나 토론식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선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고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깨닫고 아는 것이 좀 늦어진다고 해도 선포라는 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도 때로는 일방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기도 하셨지만 때로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진리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인을 붙잡아 심문을 하고 그 심문에 대답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질문과 대답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같이 질문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들으시고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진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살피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기쁨을 나누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예수님 안에 부활이 있다고 전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 부활을 전파하는 제자들을 붙잡아서 공회 앞에 세우고 심문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 권력자들의 질문

  본문 5-7절에 권력자들의 질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했습니다.

1)질문하는 권력자들 
  바로 앞 1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간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라고 했습니다.

  인물이 바뀐 것은 어제 베드로를 잡아왔던 사람들은 성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오늘 모인 사람들은 유대인 사회 전체에서 군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공식적인 재판기관의 역할을 하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입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빼앗길까봐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을 공적으로 재판을 하고 벌을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관원은 대제사장으로 번역이 될 수 있는 말인데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통치자(ruler)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는 대 제사장이 유대교 최고의 지도자가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로는 한 교회의 장로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자파나 지역을 대표하면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어른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장로들은 대부분 사두개파 사람들로 신앙보다는 정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서기관은 성경을 필사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로 대부분 바리새파 사람들이 서기관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정치나 권력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모인 세 분야의 사람들은 각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계를 대표하는 관원들 즉 제사장들과 행정적인 면에서 백성들을 대표하는 장로들과 교육적인 면에서 학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당시의 최고 사법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로서 여기의 결정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6절에는 그 재판에 참여한 실제적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안나스는 사실 현재 대제사장이 아니고 전직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야바가 현재 대제사장을 맡은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장인과 사위사이입니다.
  뒤에 등장하는 요한과 알렉산더도 대제사장 계열의 고위 종교지도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들은 당시의 제일 큰 권력을 가진 대제사장들이었고 그들은 대를 어이서 대제사장을 하는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습이 합법적인 때이기는 하지만 권력을 세습한 막강한 가문이었습니다.

2) 권력자들의 질문
  7절에 권력자들의 질문 내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했습니다.

  여기 “너희가”라고 하는 말은 우리말처럼 공손한 말이 아닙니다.
  “너희 같은 것들이” 좀 심하면 “너희 같은 조무래기가”라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말입니다.

  여기 모여서 질문하는 우리들은 공식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인데 너희들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모인 우리들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공식적인 기관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였는데 너희들은 이름도 없는 직함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말단이라고 하더라도 제사장이라도 된다든지 서기관이라도 된다든지 공식 직함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는 너희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고 했습니다.
  너희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혹시 너희들 배후에 너희들이 하는 말을 증명해줄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다른 신이 너희 뒤에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우리들의 부활에 관하여 관심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묻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주장하는 부활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듣게 믿을만한 증거를 가지고 설명을 해보라고 했을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왜 부활을 외치고 다니는지 그런 말을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그런 말을 확증할만한 증거는 있는지 그것이 성경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뜻인지를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부활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너희들이 틀렸고 너희들이 하는 말은 근거도 없는 거짓말이고 너희들의 말에는 권위가 없는 쓸데없는 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지금 이 사람들이 이렇게 몰아붙이는 진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무조건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여기 질문하고 있는 권력자의 핵심인물인 가야바와 안나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요 18:13-14)라고 했습니다.
  가야바가 한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 한 사람은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한 사람 때문에 백성들 가운데 분란이 일어나고 시끄럽기 때문에 그런 골치 아픈 일을 없애기 위해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주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그 가문들이 그 들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한 예수님이 부활을 하셨다고 하면 그들에게는 엄청난 치명상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하나님나라의 대표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은 다 그 권력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고 그들 가문 전체가 다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이 사실이 거짓이라고 우기고 그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든지 입을 막든지 무슨 일을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권력을 총 동원해서 부활을 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억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대답

  이런 권력자들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답변에 8-10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 연약해 보이나 더 큰 힘을 가진 사도들
  당시의 권력자들이 볼 때 사도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고 힘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 모인 권력자들이 가진 힘으로 오늘이라도 사형을 선고하면 변호해줄 사람도 없고 막아줄 사람도 없이 힘없이 사형을 당해야 하는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저 갈릴리에서 고기나 잡던 어부들이었고 특별히 신학을 공부하거나 말단 관직에라도 오른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막강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라 다니며 하신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현장에서 목격을 한 산 증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고 그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막강한 힘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우리들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볼일이 없는 연약한 사람들처럼 보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뭐 큰 교회 건물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큰일을 할 만한 재물이 있습니까?
  우리 중에 무슨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중에 세상적으로 성공하거나 칭찬을 받을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가장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부활에 이르고 영생에 이른다는 예수님을 알고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 영생의 복음을 알고 믿는 엄청난 무기가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있는 또 하나의 큰 힘은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막강한 권력 앞에서 대답을 할 때 정말로 떨렸을 것입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바로 처형을 당해야 하는 위기인데 무슨 말이 나오겠습니까?

  불과 얼마 전에 예수님께서 잡혀가셨을 때만 해도 연약한 여자가 하는 질문에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경력이 있는 베드로인데 지금은 더 험악한 분위기인데 어떻게 바른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보문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가 대답을 할 때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아주 충만하게 역사하심으로 담대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변호해주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에게 힘이 되어주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를 변호하고 그에게 힘을 주고 그가 할 말을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역사하셨던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도 계십니다.
  물론 사도들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큰 역사를 일으키시지는 않습니다.
  그 때처럼 기적을 일으키거나 신비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하는 그 역사는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알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고 바른 길로 가게하고 약할 때 힘을 주시는 그 능력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역사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변호하시고 끝까지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 능력은 우리에게도 역사하십니다.

2)사도들의 답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의 권세로 이런 일을 한다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10절에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이라고 대답했는데 이 대답 속에 그들이 질문한 대답이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막연한 질문을 구체적으로 다시 명시하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냐고 질문을 한다면”(9절)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바로 하면 그 증거가 어디 있느냐 조작된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여 달라는 등 별별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바로 전에 된 사실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또 그 증인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일을 가지고 질문에 응답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40이 되도록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앉은뱅이를 일으킨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현대권력자들의 질문과 우리의 답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권력자들이 누구일까요
  오늘날에도 정치나 경제나 학문이나 종교계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뒤에는 국민이라는 더 큰 권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권력이라도 다수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그 권력은 권력이 되지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큰 권력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큰 권력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사람들이 위대해보입니다. 그 많이 모인 사람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그들의 생각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간섭을 받기 싫어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도 싫어합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많은 지식을 가진 자가 큰 권력자가 됩니다.
  연구를 많이 한 과학자들이나 여러 분야의 박사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그들의 주장을 인정합니다. 
  그런 지식인들은 자기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믿지를 않습니다.
  부활이니 영생이니 이런 말을 근거 없는 말이라고 무시합니다.

  심지어 성경을 연구한다는 신학자들도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이해되는 것만 인정을 합니다.
  자기의 연구를 성경말씀보다 더 우위에 둡니다.
  이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신신학자들은 부활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들이 가진 돈이나 권력이나 거대한 단체나 지식을 이용해서 성경의 핵심진리인 부활이나 영생을 부인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도 부인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되고 인간의 노력으로 뭐든지 해야 된다고 주장하여 은혜의 복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바르게 잘 살고 성공해야 된다고 주장하여 부활이나 영생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의 권력자들을 향해서 우리는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최고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을 통해 주신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권력자들이 자기들이 가진 권세를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과 그 부활을 믿는 우리의 부활이 거짓이라고 우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