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68)
  본문 : 행 4:32-35   
  제목 :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위대한 믿음 진실한 고백”이라는 책을 볼수록 우리가 가진 믿음이 참 위대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한 백성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것이며 이 믿음은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너무나 위대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믿음을 내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믿음을 진실 되게 고백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만 있으면 만사가 오케이인데 그 믿음이 내게 있고 그 믿음을 진실 되게 고백을 하고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가 매주일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릴 때 사도신경으로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일도 잘 지키고 여러모로 충성도 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도 하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도 삽니다.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 된 고백을 하는 성도들의 삶인지를 정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정도로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진실 되게 그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상시에는 우리의 믿음이 진실 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 구별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은 아주 간단하게 나타납니다.
  학생들이 평소에는 공부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 구별하기 힘들다가 시험을 보면 그 실력이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도 어려움을 당하고 시험을 당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쉽게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세상적으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믿지 않는 사람인지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당시에 가지고 있던 귀한 것들을 다 버려야 했습니다.
  로마 시민권도 버리고 유대인으로서 받는 혜택들도 버리고 재산도 가족도 그동안 쌓아온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겠다고 모인 사람들은 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임이 확실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그 중에는 가끔 형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것 같았는데 그 마음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장빌립 선교사님이 선교하시는 터키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나름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가 참 좋은 줄을 알면서도 개종을 하지 못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개종을 하면 우리나라 주민등록 같은데 종교 란에 기독교인이라고 기록이 되는 순간 그는 그 사회에서 완전히 왕따를 당합니다.
  장사도 안 되고 취직도 못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마저 당하기 때문에 보통 마음을 가지고는 쉽게 개종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참 평화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이 되어 있고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불이익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사탄의 세력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하고 유혹을 하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교회에 다니지 못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입교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시험도 보고 신앙인이 될 만한 사람인가 살펴보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그런 시험도 없고 그냥 교회만 온다면 다 받아주는 세상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참된 신앙인이라고 보기가 힘든 때입니다.

  과거에는 교회의 장로들이 성도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잘못하면 치리도 하고 출교도 시키고 했지만 지금은 조금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심방도 받기 싫어하고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고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지 구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닌다고 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다 진실 되게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내 믿음이 진실한 믿음인지는 스스로 체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 말씀을 잘 듣고 앞서간 성도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체크해야 합니다.
  내가 과연 진짜 신앙인인지 체크를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멘토가 있어야 됩니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자기 평가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남에게 욕을 먹고 사는지도 모르고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나중에는 자신에게도 속아서 믿음도 없으면서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착각하고 살다가 비참한 인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좀 특별한 삶의 모습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시대 시대마다 형편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처럼 똑같이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오늘 본문 말씀에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말하면서 먼저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배우면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외형적인 요인들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한마음과 한 뜻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로마인도 있었고 헬라인도 있었고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당시 이 세 민족은 서로 무시하고 서로 원수로 여기면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섬기는 신도 달랐고 신을 섬기는 방법도 달랐고 문화도 달랐고 살아가는 방법도 달랐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왕족이나 귀족도 있었지만 노예이거나 노예였다가 막 자유인이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사람도 거기 함께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었고 부자도 있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있었고 미련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욕심이 없는 착한 사람도 있었고 욕심이 많은 이기주의적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도저히 한마음과 한 뜻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마음을 이루고 한뜻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마음 한 뜻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가나 사회나 어떤 단체라고 해도 그 단체가 힘을 가지고 나가느냐 분열하느냐는 것은 그들이 한마음 한 뜻을 가지는가, 다른 마음 다른 뜻을 가지는가 하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자연환경도 좋고 사람들도 똑똑하고 경제적인 발전도 이루고 문화적인 혜택도 많이 보고 복지도 아직은 초기이지만 자꾸 좋아져서 밥을 굶는 사람은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생각만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격차가 너무나 커졌기 때문에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의 생각이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의 생각이 다릅니다.
  지역적으로 동쪽과 서쪽 사람들의 생각이 다릅니다.
  국가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모든 일에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기 때문에 한마음 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삽니다.
  
  가족이 한 자리에 앉았는데 거기 할아버지 아버지 자녀들 간에 생각이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의 생각이 다르고 서로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한마음 한 뜻이 되지 못해서 가정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 억지로 함께 사는 지옥 같은 가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나 단체나 가정이나 다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한 뜻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세상의 어떤 단체보다 중요한 단체입니다.
  국가나 사회나 직장이나 가정보다도 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한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예수님께서 장차 세워질 교회를 생각하시면서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너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태동이 되고 그럼에도 복음이 온 세상으로 전파가 되어야 하는데 제자들을 보면 너무나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 연약한 사람들이 힘을 내서 성공적으로 일을 수행하려면 가장 먼저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면 아무리 연약해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에서 그 하나 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3-6)
 
  성경은 아주 확실하고 뚜렷하게 우리가 믿는 믿음을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삼위 하나님이 동일하고 교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고 소망도 하나이고 모든 것이 동일하고 유일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똑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 안에서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교회 안에 많은 신앙의 특징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해도 다 같은 믿음을 가진 교회가 아닙니다.
  한 가지 신앙을 가진 교회는 너무나 귀한 교회입니다.

  저는 그동안 계속해서 우리 교회가 정말로 똑바른 신앙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서신서와 복음서의 강해설교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제가 계속 공부를 하고 또 책을 출판하고 하니까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돈도 없고 어려운데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 정말로 그렇습니다. 돈이 없습니다. 저도 돈이 없고 교회도 항상 돈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사실 우리노회에서 중국으로 목회자 부부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해마다 하는 행사인데 저는 몇 년차 참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 때문에 강의 때문에 못 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돈이 아까워서 가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다못해 양말 한 켤레도 제 손으로 사지 못합니다.
  돈을 쓰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성도들의 신앙을 위하는 일에 있어서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더 많이 배우고 연구하고 더 많이 이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성경을 볼 때 이신칭의의 진리가 나무나 확실하고 너무나 중요한 것인데 사람들이 이 중요한 복음을 외면하고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하고 확인을 해보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진리를 잘 못 알아서 여러분에게 엉뚱한 것을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나서야 그것이 아차 틀렸구나. 라고 생각이 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래서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또 배우고 또 배우고 또 기도 하고 또 기도하고 또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저와 한마음 한 뜻이 되신다면 이런 일에 대해서 저의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저의 좋은 면을 생각하고 같은 편이 되어서 힘을 함께 모으는 것입니다.
  나쁜 면을 보고 비웃고 비난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이 부흥하고 교회가 부흥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의 핵심인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그 위대함을 알리는 일에 저와 마음을 같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귀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하는 일에 저와 마음을 같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본문 33절에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라고 했습니다.

  믿는 무리들이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하는 행동을 본문은 두 가지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때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시간관계상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때 무리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도들이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의 부활만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겠지만 거기에는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 믿음에 관한 모든 것 복음에 관한 모든 것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증언을 했는데 거기에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 큰 권능 혹은 큰 능력이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대강 적당이 전하는 것이 아니라 큰 능력으로 전했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증거를 할 때 그냥 힘없이 대강 적당히 오가는 말로 전하면 되겠습니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충분하게 알고 믿을 수 있도록 자신 있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좋은 것이 많고 세상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보통으로 말을 해서 사람들이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얼마나 싫어하는데 보통으로 설교를 해서 듣겠습니까?

  사도들처럼 큰 권능으로 담대하게 외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뜻있는 사람이라면 뭔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공부를 자꾸 하고 그것도 한국교회가 인정하는 개혁주의 학교에서 학위를 받으면서 공부를 하는 이유는 제가 전하는 복음에 능력이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한 설교를 출판사를 통해서 책으로 출판하는 이유는 제가 한 복음에 능력이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 성도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마음이 하나 될 때 받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외칠 때 성도들이 맨날 예수님의 부활만 외치느냐고 생각을 했으면 은혜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 함께한 교회의 성도들도 같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사도들의 설교가 은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을 아는 사람은 제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렇게 진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왕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우리가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알고 보면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함께 가는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탄 배가 침몰하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 까지 도착하게 하기 위해서 함께한 우리가 한마음 한 뜻을 가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귀한 것으로 여기는 일에 하나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한마음 한 뜻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전할 때 은혜를 받으시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